Photo by Chris Lawt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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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것은 무엇이든지 그냥 어이 없이, 이유 없이 일어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보험회사의 직원이 자신의 직업을 통해서 얻는 것을 통계로 나타나 보이는 것을 “하인리히 법칙” 이라고 한다. 그는 수많은 사고를 구분하여 통계를 작성해 보니 놀랄 만한 사실을 알게 됐다. 큰 사고가 나는 경우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전에 수많은 조짐과 징후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누적되어 한꺼번에 크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큰 사고는 먼저 내 자신의 주위에 먼저 많은 작고, 큰 사고들의 징후가 나타나며, 그것이 자주 일어나면 반드시 큰 사고가 발생하고야 만다는 것이다. 

이같은 통계 정의는 1930년대 미국의 보험회사의 관리자였던 하인리히가 고객 분석을 통해 ‘1대 29대 300법칙’을 보고서에서 말하였던 것이다. 즉, 1번의 대형사고가 났다면 이전에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고, 아울러 300번 이상의 징후가 감지되었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우리나라의 교통사고에 대비해도 신기하게 맞아 떨어진다. 최근 10년간의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1번의 대형 사고에는 평균 30번 가량의 중소형 사고가 발생했고 300번의 교통법규 위반 사례가 있었다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한 상품에서 치명적 결함이 발견되었다면, 그것은 그 이전에 약 29회 가량의 고객 불만이 접수되었으며, 직원들도 역시 300번 가량 ‘뭔가 이상하다.’ 라는 느낌을 받는데 나중에 보면 커다란 사고는 바로 자신들이 감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이전에 수많은 조짐과 징후가 보이다가 그것이 누적되어서 한꺼번에 크게 터지고야 만다. 

우리들이 지금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보면 어느 때는 뉴스를 보다가도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욕이 저절로 나온다. 뉴스는 늘상 부정적인 보고만을 쏟아낸다. 그런데 그 보고를 보면서 처음에는 정말 그럴까? 의심의 마음으로 보다가도 곧 그 일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연히 기대하는 마음은 금물이다. 즉 아무리 어려워도 곧 ‘좋아지겠지’ 하는 믿음은 적중률 100%의 인디언 기우제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과거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냈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에게 기우제는 100%의 적중률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현실에서 지금까지의 위기들은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빠져나가곤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기대가 맞는다면 그것은 다행인 것이다. 이같은 생각은 부정적인데서 오는 생각이 아니다. 지금의 경제 위기나 사회 현실의 곁길로 가는 통계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기대보다는 오히려 더 두려움만 증폭시키고 있다. 신종 코로나는 사회 곳곳의 부정적인 현상들, 그리고 그 현상들을 보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여전히 요행이나 남이 해 주기만을 바라고 자신은 잘못이 없는데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하면서 책임회피주의가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다.

이제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겨울이 지나면 어김없이 봄이 찾아온다. 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확신 할 수 없다. 과연 이 추위가 물러갈 것인가? 그래서 우리들이 사는 이 현실의 세계에서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경제위기니 아니면 전반적인 사회의 현상이니 하면서 안일하게 기다리면서 지켜만 본다면 우리들의 현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깊이 생각해 볼 시간이다.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막연히 기다림이나 기대감으로 시간을 보내어서는 안 된다. 진정 우리들이 앞서서 어떻게 하면 이 거대하게 밀려오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지금의 시간을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맞서서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두려움의 문제들을 보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찾아야 한다. 전반적인 해법은 이제 모든 것의 총체적인 “변화의 시작”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더 두렵게 만드는 것은 앞으로 닥쳐오는 그 변화는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 귀결될지를 전혀 예상 할 수가 없다는데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 변화는 시작되었고 우리 앞에 웅크리고 서 있다. 이 변화에 요구에 또 다시 밀린다면 우리들은 살아남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변화의 시간에 우리 스스로가 변화를 추구하면서 당당하게 맞서서 변화를 통한 성장을 기다리면서 두려움 없이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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