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JuniperPhot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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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 사이의 갈등이 한국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지요. 그런데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다 지내신 분이 게십니다. K 전 장관이십니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내신 이 분의 이야기가 몇 년 전 모 일간지에 전면 인터뷰 기사로 실린 적이 있습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감옥을 다녀오신 경험을 통해 깨우치신 것을 진솔하게 인터뷰로 담아내셔습니다. 가장 제게 와닿은 내용은 이 분께서 감옥에 들어가신 첫날 회개한 기도 내용이었습니다. 감옥 바닥에 엎드려 새벽기도 다니면서 빨리 출세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을 가장 처음 회개하셨다는 내용입니다. 검찰총장과 장관이 되어도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어야 하는데 그 기도를 드리지 못하고 빨리 총장되고 장관되게 해달라고 새벽마다 떼쓰듯 기도한 것이 너무도 후회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은 출소해서 가난한 이들의 변론을 맡으시는 변호사로 활동한다는 훈훈한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이분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의지하던 것을 잃고나서 이런 교훈을 깨닫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의지했던 것들을 거두어가실때가 있지요. 욥기에 보면 욥이 모든 걸 잃어버립니다. 그것도 하루 아침에. 재산도, 자녀도, 건강도 그리고 친구들 앞에 자존심 마저도 여지없이 벗겨져 나갑니다. 그리고 자기를 비난하는 아내를 향하여 “내가 적신 (알몸) 에서 나왔은즉 적신 (알몸) 으로 돌아감이 마땅치 않은가“ 어려운 신앙고백을 합니다 (욥 1:21). 성도들의 인생에 적신 현상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실직, 명예의 추락, 직위 상실같은 안타까운 일들이 성도들에게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코로나 19 로 실직하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연일 실업률이 올라가고 있으니 말이지요. 그 중에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을 것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이럴 때 성도들은 어떻게 이 매서운 겨울을 이겨나가야 하는 걸까요?

성경은 인간을 두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겉사람과 속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와지도다“ (고후 4:16) 겉사람은 어느 회사 사장, 교수, 목사 장로같은 직함을 말하거나 어느 대학출신, 누구집안 자손같은 껍데기를 말합니다. 반면 속사람은 우리의 속, 내면, 영혼의 상태를 말하지요. 마음에 숨은 사람이라고도 성경은 말합니다 (벧전 3:4) 성경은 속사람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고후 4:18).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십니다 (삼상 16:7) 그런데 우리는 겉사람을 더욱 중요시하는 경향이 잇습니다. 내가 지금 잘나가고 그럴듯한 지위가 있으면 속사람도 괞찮다고 생각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엄청난 돈을 쓰지만 자기 영혼을 위해서는 신앙서적 한권 사서 읽는 법이 없는 분들도 많습니다. 자녀 대학입시를 위해서 빚을 내서라도 학원에 보내지만 자녀가 기도하는지, 성경을 읽고 있는지 관심조차 없는 분들도 많습니다. 목회자들도 겉사람에 속을 경우가 많습니다. 종종 좋은 직장 다니거나 일류대학을 나온 분들이 교회에 오면 그분들에게 쉽게 교회 직분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그들에게 상처를 입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요. 겉사람만 보고 속사람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외형상으로는 세계에서 뒤쳐지지 않는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조롱받는 이유도 속사람이 어두워서 그런겁니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잇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눅 11:35). 우리 속을 들여다보고 새롭게 해야할 때입니다. 겉모양에 열중하던 한국교회가 코로나를 계기로 교회 스스로를 돌아보고 본질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제 우리는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을 돌봐야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게 멈춰버린 지금같은 시기엔 더욱 더 그렇습니다. 바쁜 일상이 전 세계적으로 멈춰버린 지금 우리는 그동안 겉사람만 보고 괜찮은 줄 알았던 나의 영혼의 상태,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명함을 갖지 못하게 되면 명함 뒷면을 채워야 할 시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가정적으로도 돈버는 일과 아이들 성적에만 목맬게 아니라 우리 가정의 영적 상태는 어떠한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코로나19는 더 나은 도약을 위해서 잠시 멈추어 속을 들여다보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경고가 아닐까 합니다.

어떻게 속사람을 단장해야 할까요? 우리 중심을 보시는 주님께서 우리 속에 우리 속사람을 다듬으시려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고 영원히 함께 하시도록 하셨습니다. “또 새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겔 36:26-7) 성령님은 우리 속에 게시면서 우리 속사람을 치유 변화 성장 시키십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성경 말씀이 우리 손에 쥐어져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 4:12) 성경 말씀은 우리의 속사람을 수술하고 드러내고 교정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과 성경을 통해 속사람을 단장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로 인해 가정에서 영상 예배를 드리면서 가족들의 영적 상테를 점검하게 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잘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너무 급하게 아무 겉사람이나 급하게 입으면 안됩니다. 한국인들은 빨리빨리 기질이 있어 신앙생활에도 빨리빨리 성향이 강합니다. 하나님께서 겉사람을 벗겨버리시고 속사람을 돌아보기를 원하시는데, 급한 마음에 아무 직함이나 아무 자리나 가서 겉사람을 입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면 안됩니다.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속사람을 단장하고 돌아보면 하나님의 때가 되면 가장 잘 어울리는 겉사람을 입혀주십니다. 아버지가 입혀주신 채색 옷을 입고 형들 앞에서 특별대우를 받던 요셉도 채색옷이 찟겨지고 노예복을 입고 지나던 어려운 기간이 있었지요. 술관원의 꿈을 해몽해준 후에 곧 풀려날 줄 알았던 요셉은 잊혀진 채로 2년을 더 감옥에서 보냅니다. 그런데 그 기간 더욱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지혜로워진 요셉은 애굽이 위기 가운데 있을 때에 바로의 꿈을 해석해주고 국가 정책 방향도 제시해줌으로 바로의 입에서 “너와같이 성령이 충만한자가 어디있는가” 감탄의 말을 듣고 국무총리의 세마포를 입게됩니다. 만약 2년 전 특사로 풀려났다면 어쩌면 이런 좋은 날이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속사람을 충실히 돌봐야 합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라" (벧전 3:3-4) 칼빈은 열 처녀 비유를 주해하면서 등의 기름은 신앙의 내면 상태를 상징한다고 했지요. 지혜로운 성도는 신앙의 외적인 것만 아니라 내면의 상태도 늘 점검해야 주님 오실때 부끄러움 당하지 않는다는 말이겠지요. 주님이 오시면 우리 모두는 죽지않고 병들지 아니하는 육신의 몸으로 홀연히 변화되어 주님이 예비하신 겉옷을 입고 영생을 살게됩니다. 코로나 19 로 인해 주님 오실 날을 생각하게 되는 요즈음 우리는 이 말을 되새기면서, 그동안 바빠서 돌아보지 못한 나의 속사람을 지혜롭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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