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복을 받고 삶이 편해지자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오늘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을 말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약속하시면 반드시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그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의 제단들을 헐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오히려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의 신들에게 제단에서 제사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셔서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즉 그들이 쫓아내지 아니한 “가나안 사람들이 옆구리의 가시가 되고 가나안의 신들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리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신실하신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면 내 삶을 찌르는 가시가 돋아나고, 올무가 우리를 얽어매게 되어 통곡하는 날이 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사자가 전해준 말씀을 듣고 소리를 높여 울었으며, 자신들이 통곡했던 곳을 “보김”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우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맺은 언약을 반드시 지켜주시는데, 우리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잘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형편이 나아진 후 오히려 하나님께 더 많은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 생전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던 백성들이 사사시대에 이르러서 타락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구세대, 곧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자신들만 하나님을 섬기다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즉 가나안에서 태어난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잘 시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다음세대를 준비하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구세대만 탓할 게 아닙니다. 가나안에서 태어난 신세대들 역시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힘써 알려고 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하신 이스라엘의 역사도 배우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빨리 하나님을 떠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그들처럼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음세대의 주인공이되어 살아갈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예배와 주일성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청지기의 삶을 살도록 십일조 생활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위해 기도생활,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삶, 주님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는 것 등 신앙생활의 기초와 사회생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도록 잘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다음 세대가 우리와 다른 세대가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면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있습니다.

 사사기 전체의 요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죄를 짓고 타락하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을 받습니다. 벌을 받아 삶이 고통스러우면 회개하고, 부르짖어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셔서 회복시켜 주십니다. 회복되어 평안해지면 또 범죄하고, 그러다가 또 맞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는데 소위 ‘죄악의 악순환’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습니다. 가나안 종교의 특징은 다신론으로써 형상을 만들어 섬기고, 비도덕적이며, 인격적 관계성이 없는 기복종교였습니다. 가나안의 대표적 우상은 바알과 아스다롯인데, 바알(‘주인’이란 뜻)은 엘과 아세라의 아들로써, 비를 내리는 신, 폭풍우의 신, 풍요의 신, 농업을 주관하는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이 바다의 신에게 잡혀서 죽어갈 때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이런 바알을 돕기 위해 남녀가 신전에 모여 집단적으로 음란한 성행위를 했습니다. 그러면 바알이 자극을 받아 힘이 생겨 바다의 신을 이겨내고 정액을 뿌리는데 그것이 비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스다롯은 바알의 아내로 풍요와 사랑과 전쟁의 여신으로 신봉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이런 우상들을 섬기게 되었습니까? 한 마디로, 육신의 쾌락과 물질적 풍요로움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물과 농산물이 넘쳐났고 그 곳 사람들은 모든 것이 풍요로웠는데, 바알과 이스다롯이 그들에게 이런 풍요로움을 준다고 믿고, 자신들도 물질적 풍요를 얻고자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사람의 부요함을 너무 동경해서 하나님을 멀리 한다거나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기독교의 본질은 구원이며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죄를 지으면 징계가 반드시 따라옵니다. 그들은 이 같은 징계 앞에서 슬피 부르짖어 회개했고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사사를 보내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사사가 죽으면 더욱 타락했고 하나님은 다시 진노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사기에 나타난 이스라엘 사람들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 천국을 받고서도 감사하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 받은 우리는 죄악의 악순환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죄악을 철저히 회개하고 늘 경건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부지런히 되돌아보면서 말입니다.

목포주안교회 모상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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