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북북부지역은 예장 통합 소속 교회가 약 90% 이상을 차지할 만큼 많은 교회들이 노회를 중심으로 사역해 가고 있다. 2019년에는 삼일독립운동 100주년, 2020년은 경안신학교 100주년, 2021년은 기독청년면려회 100주년이 되기까지 사역의 많은 부분들이 예장통합 노회에 속한 교회들을 중심으로 오늘까지 발전 해왔다. 

긴 역사를 가진 만큼 그 사료들 역시 많을 터인데, 다행히 경북북부지역에는 그 사료를 보존하고 발굴하며 또 새롭게 쓰여지는 역사를 기록해가고 있는 이들이 곳곳에서 사역하고 있다. 오늘 만나볼 주인공은 경안노회 역사지킴이자, 경안노회 증경회장인 안동교회 임만조 원로장로이다. 안동교회의 역사기록을 시작으로 역사와의 달콤한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30여년 전 처음 편찬 했던 안동교회 80년사 책을 들어보이고 있는 안동교회 임만조 원로장로
30여년 전 처음 편찬 했던 안동교회 80년사 책을 들어보이고 있는 안동교회 임만조 원로장로

ㅣ삶의 시선

"아버지가 삼일만세운동을 하시다가 내가 3살 때 돌아가셨다"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정말 밥 한끼 먹기도 어려웠다"

Q. 역사 속에는 많은 굴곡이 있다. 장로님의 삶의 굴곡이었던 어려웠던 시간은 언제인가?

다행히 내 인생의 역사는 순탄한 길로 왔다고 생각한다. 아내가 위암수술 받았지만 지난 30년간 건강하게 지냈고 직장으로 인해 안동에 살면서 경안노회와 예장통합 총회를 섬길 수 있었던 게 나에게는 기쁜 순간들이었다. 2004년도에 경안노회 장로노회장을 감당하고 총회에서는 헌법위원장을 섬겼는데, 나름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순간들이었다.

동 나이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어린시절이 나에게는 가장 힘든 인생의 시간이었다.  아버지가 삼일만세운동을 하시다가 내가 3살 때 돌아가셨다. 내가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우리가정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았다. 6.25때는 맏형님이 전사하셨는데.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정말 밥 한끼 먹기도 어려웠다. 

Q. 하나님의 첫사랑을 경험한 순간이 있다면?

내 고향이 경북 영덕군 영덕읍인데, 당시 유일하게 있었던 교회가 영덕읍교회이다. 다행히 집 주위에 교인들이 많아서 그 분위기 속에 처음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하나님의 첫사랑은 주위에 좋은 하나님의 사람에 둘러 쌓여 살도록 하신 것이다.  당시 영덕읍교회 장로님들이 특히 많이 사랑해 주셨는데, 그 중에 주병호 장로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분이 하시던 일이 신문을 배포하는 일이어서 당시 우리 가정의 어려운 사정을 아시고 형제들 모두를 장로님이 경영하던 신문지국의 배달원으로 채용해 주셨다. 가난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그 분들의 사랑에 힘입어 어린 시절 교회를 떠나지 않은 것이 내게는 가장 큰 축복이었다.     

Q. 최근 삶에 변화를 이끄는 것이 있나?

학교에서 교사로, 교감, 교장으로 오랜 시간을 일해 왔다. 은퇴 이후에는 주로 교계활동에만 전념해 왔는데,  노회 내에 100주년 맞는 교회들이 몇 해 전부터 꾸준히 생겨났다. 얼마 전 부터는 지역 내 교회들이 100주년 행사와 예배를 드릴 때면 나에게 축사를 부탁하는 경우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곳에서 조선예수교사기를 바탕으로 교회가 전파된 유래, 교회설립에 관한 역사를 바탕으로 축사내용을 참석자들에게 전한다. 그러면 다들 처음 듣는 이야기에 놀라는 경우도 상당하다. 최근에는 예안교회 100주년 축사. 녹전교회 100주년 축사, 지내교회 107주년 축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경안노회 내 교회들의 역사편찬작업을 돕기 시작한 일이다. 심지어는 의성지역 교회들의 역사작업도 돕고 있다.    

ㅣ사역의 시선 

"사진은 시간이 지나면
역사로 남는 가장 큰 자산"

100주년 기념관건축위원장 맡아 사진 남기기 시작해

Q. 당신의 달란트를 PR한다면?

올해 내 나이가 84세인데, 무언가를 기록하고 사진을 찍는 식지 않는 열정이 아닌가 싶다. 영덕을 떠나 경안학원의 선생으로 안동 땅에 정착한 후, 1972년에 안동교회 장로가 됐는데. 1979년부터는 당회서기로 봉사했다. 통합 총회장을 지내신 故 김기수 목사님과는 무려 24년간 함께 사역했다. 25년간 당회 서기를 연속으로 맡아 감당했었는데 아마 내가 당회서기를 전국에서 가장 오래 했을 것이다. 

서기를 하다보니 안동교회 역사에 가장 깊은 조예를 갖게 됐고 1986년에 안동교회 80년사를 편찬하게 되는 책임을 맡게 됐다. 편찬위원장을 맡아 그때 만든 안동교회 80년사는 안동지역 최초로 기독교역사를 상세히 기록한 역사책인데, 안동의 기독교역사를 내 손으로 기록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가지고 있다. 그렇게 누구보다 지역 기독교역사에 일찍 접근했고 1999년에는 안동교회 90년사까지 10여년에 내용을 추가해 또 한번 편찬했다.

임만조 장로가 두번째로 편찬한 안동교회 90년사 책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임만조 장로가 두번째로 편찬한 안동교회 90년사 책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두 번의 역사책을 편찬하고 나서는 마지막에는 안동교회 100주년 기념관 건축위원장을 맡게 됐다. 큰 중책을 또 한번 맡게되어 부담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행사 때마다 사진을 찍어 사람들에게 나눠주는데, 그 출발이 100주년 기념관을 맡으면서부터다. 교회 주변의 많은 집들을 철거하면서, 당시 모습을 기록해 두기 위해 교회 주변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 사진은 시간이 지나면 역사로 남는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해 요즘도 크고 작은 행사에 사진기를 들고 간다. 노회행사를 비롯해 참석하는 행사마다 꼭 사진을 찍는다. 대부분 사진을 찍어도 자기만 간직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경우에는 1,000장이 넘어도 다 인화해서 찍힌 사람에게 선물로 전해준다. 그러면 다들 감사해 하는데, 그게 나에게는 기쁨이다. 

노회적으로는 언젠가 역사 자료로 남기를 기대하면서 크고 작은 교회 위임식과 임직식 사진도 찍어서 앨범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노회에서 재작년에는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사적지개발과 사진기록(?)에 따른 공로패가 아닌가 싶다.

임만조의 장로가 손에서 놓지 않는 카메라와 인화한 사진들
임만조의 장로가 손에서 놓지 않는 카메라와 인화한 사진들
교계행사에 참석해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임만조 장로
교계행사에 참석해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임만조 장로

Q. 특별히 더 계발하고 싶은 모습이 있나?

개인적인 계발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작업 중에, 역사인물의 사진들을 백방으로 노력해 찾고 있는데, 비어 있는 역대 노회장 사진을 정리해 보고픈 소망이 있다. 그리고 고향 영덕 출신의 경안노회 인물 중 하나인, 김세영 목사님에 대해 다뤄보고 싶다. 장로로 목사로 두 번의 노회장을 맡으신 분이다. 상당히 연구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Q. 왕성히 활동하시는 것이 젊은 사람 못지 않다. 혹시 지쳤을 때 에너지충전요법이 따로 있나?

나는 나이가 들었으니 모든 일이 힘들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특별히 의식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거다. 젊을 때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 설교를 딱 한번 들은 적이 있는데, 다른 거는 다 잊었는데, 한가지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무슨 이야기나면 우리 인생이 연세가 높으신 분은 아주 건강해도 젊은 사람들이 몸살, 감기 걸린 수준인 상태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노인으로서는 그게 정상이니 걱정 말고 평상시처럼 활동을 이어가라 이야기였다. 전국 원로장로회 회장도 도맡으며, 계속 역사를 정리해 나가는 일이 나에게는 가장 큰 에너지충전요법 활력이 아닌가 싶다.

ㅣ생각의 시선

상식,공식,원리,법칙을 기본적인 삶의 원리로 삼아온 임만조 장로
"안동교회 당회는 신뢰관계 속에 의논하는 문화가 있다"

Q.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기준으로 삼으시는 부분이 있다면?

나는 공학도라 그런지 어릴 때부터 과학과 수학을 좋아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상식,공식,원리,법칙을 기본적인 삶의 원리로 삼아왔다. 교회생활 중에도 감정적으로 한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게 아니라 모든 이들의 중론을 모아왔다. 총회에서 교회법연구회 활동 중에 토론회를 한 적이 있는데, 안동교회 당회 사례를 발표한 적이 있다.. 어려움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면, 먼저 신뢰관계 있는 사람들과 미리 잘 의논하는 문화가 안동교회에 있다. 안동교회 당회활동을 통해서 젊을 때부터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말하지 않고 상식을 지키며 분쟁을 생기지 않도록 했는데, 지금까진 그 기준을 잘 잡아온 것 같다.  

경안노회 노회장으로 섬기던 당시 임원들과 함께 @출처=안동교회
경안노회 노회장으로 섬기던 당시 임원들과 함께 @출처=안동교회

Q. 나에 대해 책을 쓴다면 머리말에 남길 말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에 대해 남기고 싶다. 나의 모토는 성실과 정직 바탕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 기준으로 교직생활을 하면서 교장, 교감을 23년을 한다는 것은 그 동안에 문제없이 살았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 책을 많이 탐독하고 있다. 그분 서적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데, 거기에도 성질과 정직을 강조하는 내용들이 많다.  

Q. 잠들기 전에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주시는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매일의 고백은 하나님 오라하실 때 기쁨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맏아들이 서울에서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자녀들을 위한 생각과 기도를 잠들기 전에 가장 많이 하는 것 같다. 

ㅣ세상의 시선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안동을 예수마을로 바꾸고 싶다"

Q. 80년이 넘는 시간을 살면서 장로님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어떤가?

아내와 가끔 이야기를 할 때, 한참 젊을 때 우리 부부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아주 미개한 생활환경 속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시대가 너무 발전했다. 과거와 비교해 경험의 양으로 따지면 우리는 백년을 사는 게 아니라, 천년도 더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더 발전할 텐데, 거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축복과 행복을 주실 것이 많을 것이니,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더 많이 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Q. 마지막으로 딱 한가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나?

안동을 예수마을로 바꾸고 싶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편만해지길 바란다.

석조예배당이 근대문화유산을 지정받은 후, 권정국 원로장로(좌측)와 함께 평생 섬겨온 안동교회 석조예배당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안동교회)
석조예배당이 근대문화유산을 지정받은 후, 권정국 원로장로(좌측)와 함께 평생 섬겨온 안동교회 석조예배당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안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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