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시편 18:1 (현대인의성경)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1 (개역개정)

신앙생활에 기본이 되는 ‘예배’와 ‘기도’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서기위해 힘쓰는 고흥읍교회 최동식 목사를 만나봤다.

고흥읍교회 최동식 목사
고흥읍교회 최동식 목사

ㅣ삶의 시선ㅣ

진정한 ‘기도’를 깨닫게 하신 하나님
고된 사역으로 잃을 뻔한 시력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 경험

Q.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셨는가?

1979년 11월 경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회개’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부흥회에 참석하게 됐는데, 그때 나도 모르게 막 눈물이 나고 뒹굴면서 기도했다. 참석했던 성도들이 그 모습을 보고 “우리 최선생 예수님 만났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진짜 예수님을 만난 것이 맞나?’ 긴가민가하고 있었는데 성도들은 나를 향해 “예수님 만났네요.”라고 하면서, “최선생 덕분에 우리 집회가 행복한 집회가 됐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넘치는 집회가 됐네요.”라고 말했다. 그 일을 계기로 그 교회는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고, 나는 신학을 하게 됐다. 신학을 하면서도 때마다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됐다. 
또, 남다르게 육신의 약함이 있었는데, 골수염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진단했지만 기도하는 중에 치료해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했다. 그러면서 ‘기도’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 이런 일들 자체가 내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최동식 목사가 개척한 황산남부교회. 마을에서 1년 정도 사역했던 전도사가 주민들에 의해 쫓겨나 교회가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최동식 목사는 황산남부교회를 개척했다. @출처=목포제일노회
최동식 목사가 개척한 황산남부교회. 마을에서 1년 정도 사역했던 전도사가 주민들에 의해 쫓겨나 교회가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최동식 목사는 황산남부교회를 개척했다. @출처=목포제일노회

Q. 가장 힘들었을 때

목회를 시작할 때 힘든 일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그때는 보람도 있었다. 교회를 개척하면 교회가 성장하는 가운데 성도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함께하는 그런 면에서 보람이 컸다. 하지만 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강도사 고시를 앞에 둔 시점에 사모가 몹시 몸이 아팠다. 병원에 갔지만 진단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서울에서의 목회활동을 접고 시골로 내려왔다.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은혜를 받은 곳이 시골 교회였기 때문에 하나님께 ‘내가 목사가 되면 시골에서 목회하겠습니다!’라는 서원을 했는데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 사모를 통해 다시 한 번 나를 일깨워 주신 것 같다. 기존 교회에서 1년 반 정도 있다가 목사 안수를 받고 황산남부교회를 개척하게 됐다. 당시 황산남부교회는 1년 정도 사역하신 전도사님이 부락 사람들의 탄압에 의해 쫓겨난 교회였다. 그 교회를 새롭게 시작하는데 하나님께서 놀라운 부흥을 주셨다. 시골 교회인데 한 해에 50명이 전도가 되고, 강퍅한 마음을 가졌던 부락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50평이었던 교회가 150평으로 건축하는데 마지막으로 십자가를 세우면서 사건이 터졌다. 십자가 종탑을 세우는데 돈을 아끼려고 경운기와 트랙터로 하면서 사고가 크게 났다. 18m 높이에 십자가를 세우면서 충성스러운 남자 집사님이 떨어져서 바로 병원으로 갔다. 나는 집사님이 떨어지는 순간 하나님이 안아주셨다고 생각한다. 병원에 갔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 나중에 뇌에 피가 고인 것 같다고 해서 뇌수술만 받았다. 그때 차가운 병원 바닥에서 울면서 기도하던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하나님이 하셨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고흥읍교회에서 부임했을 때 리모델링을 했다. 리모델링을 다 마치니 성도들이 참 좋아했다. 그러고 나서 태풍 볼라벤이 왔다. 태풍으로 인해 종탑이 무너지면서 교회를 덮쳤다. 당회실 쪽으로 넘어졌는데 수습을 했지만 아직 유리창은 예전 모습을 복원하지 못했다. 그때가 새벽 4시에서 5시 반쯤 됐었다. 전기를 떼려고 2층 당회실 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다른 곳은 물이 고여 있지 않은데 이쪽을 물이 고여 있었다. ‘이 물이 왜 고여 있지?’라고 생각하면서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닦기 위해 밑에 있었던 권사님께 닦을 것을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2층에서 문을 열려고 하는 1m 전에 종탑이 당회실을 덮쳤다. 교회가 몇 번 휘청하더니 종탑이 넘어진 것이다. 그때 일주일 동안 왜 그렇게 비가 많이 오든지... 교회 리모델링했던 것들이 다 떨어졌다. 성도들이 “오메, 또 비오네.” 하면서 많이 울었다. 아직도 그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사실 그때 두 눈 다 시력을 잃을 뻔 했다. 지금은 시력을 많이 회복했다. 그때 하나님께 “하나님! 이 눈이 보여서 성경만 보게 해주세요. 주의 성도들 얼굴을 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고, 제일 많이 불렀던 찬양이 ‘똑바로 보고 싶어요 주님’이라는 곡이다. 그런 간절함이 있었던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황산남부교회 입당예배 및 김형택 장로 장립식 (1996년 8월 29일) @출처=최동식 목사
황산남부교회 입당예배 및 김형택 장로 장립식 (1996년 8월 29일) @출처=최동식 목사

ㅣ사역의 시선ㅣ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삶
황산남부교회 개척과 방송사역을 통해 새롭게 부어주시는 하나님 은혜 

Q. 지금 맡고 있는 사역들

지역 복음화를 위해 경목회, 고흥군교회연합회, 월드비전에 협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방송선교로 CTS와 극동방송을 섬기고 있다. 대외적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고흥보성노회 부노회장, 총회 농어촌부 서기를 맡고 있다.

최동식 목사가 섬기고 있는 고흥읍교회는 고흥지역 최초의 교회로 예장합동총회에서 지정한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11호로 지정됐으며, 3.1운동에도 참여한 교회이다.
최동식 목사가 섬기고 있는 고흥읍교회는 고흥지역 최초의 교회로 예장합동총회에서 지정한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11호로 지정됐으며, 3.1운동에도 참여한 교회이다.

Q. 나의 달란트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라, 나의 목자시라’ 이 성경구절이 나의 가장 큰 달란트라고 생각한다.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게,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섬기고 교회를 이뤄나가는 것이 나의 달란트라고 생각한다. 

Q. 지금까지 사역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황산남부교회를 개척하면서 성전을 지으면서 남방셔츠가 다 찢어졌는데 성도들이 그 셔츠를 만지면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받을 큰 상급이다”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CTS에서 ‘전국 교회는 지금’에서 ‘신앙의 유산을 찾아서’ 생방송을 진행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녹동항에서 추위에 떨면서 촬영했다. 나중에 방송에 나갔던 것을 온 교회 성도들과 함께 한자리에 모여 보면서 박수도 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방송을 통해 성도들이 교회의 소중함과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의 아름다움을 배울 수 있었다. 그것이 교회의 아름다운 미덕이 됐다.

CTS '전국교회는 지금'에 소개된 고흥읍교회의 역사

ㅣ생각의 시선ㅣ

‘코람데오’(Coram Deo)의 삶
믿음을 힘입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 되고파
예배는 나의 ‘생명’

최동식 목사 가족 사진 (왼쪽부터 김옥자 사모, 아들 최요한, 딸 최한나, 최동식 목사) 가족들은 최동식 목사의 36년 간의 목회 기간 동안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특히, 아내인 김옥자 사모는 최동식 목사의 목회 사역에 돕는 배필이자 동역자로 기도하며 함께해 왔다.
최동식 목사 가족 사진 (왼쪽부터 김옥자 사모, 아들 최요한, 딸 최한나, 최동식 목사) 가족들은 최동식 목사의 36년 간의 목회 기간 동안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특히, 아내인 김옥자 사모는 최동식 목사의 목회 사역에 돕는 배필이자 동역자로 기도하며 함께해 왔다.

Q. 나의 신앙의 가치관

첫 번째는 ‘오, 주님 언제 오시렵니까?’ 이것은 내가 새벽마다 기도하는 내용 중에 하나이고, 고백하는 내용 중에 하나이다. 
두 번째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는 신앙의 가치관이다. 
이런 나의 가치관들이 ‘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으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Q. 신앙에 있어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믿음을 힘입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사람이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고하심을 받으며 늘 생활한다면 그것이 나에게 가장 행복한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Q. 그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기 때문이다.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생활하고자 하면, 바로 그 생활의 중심이 하나님이 되기 때문이다.

인터뷰하고 있는 최동식 목사. 최동식 목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말씀과 기도, 예배에 힘쓰고 있다.
인터뷰하고 있는 최동식 목사. 최동식 목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말씀과 기도, 예배에 힘쓰고 있다.

Q. 신앙생활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요즘 성도들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신앙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재림 신앙이 결여됐거나 영성의 문제도 아니다. 제일 큰 문제는 ‘자만과 거만’이라고 생각한다. 그 자만과 거만이 때에 따라 영성을 거부하기도 하고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거부하기도 한다.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소망까지도 거부한 체 살아가는 것을 보면 마치 사명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Q. 내가 생각하는 예배

예배는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예배는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것이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코로나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이 반드시 하실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배가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이 시기를 통해 교회 안의 알곡과 쭉정이를 분명하게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준비하셨다고 생각한다. 이 준비하는 과정에 우리가 있게 하셨다.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성도와 목회자에게 ‘예배’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가르쳐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배는 절대적이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 그 자체다.

ㅣ세상의 시선ㅣ

누구에게나 친근한 ‘촌놈 목사’
예배와 신앙이 ‘회복’될 세상 기대
아름다운 가치관을 가진 성도 되자!

황산남부교회 사역 당시 추수감사절 기념 '찬양의 밤'에서 찬양하고 있는 최동식 목사 가정 @출처=최동식 목사
황산남부교회 사역 당시 추수감사절 기념 '찬양의 밤'에서 찬양하고 있는 최동식 목사 가정 @출처=최동식 목사

Q. 세상의 눈으로 보았을 때 나의 모습은?

‘촌놈 목사’로 보이기를 원한다. 그래서 누구나 친근하게 다가와 손을 잡고, 누구나 같이 대화할 수 있는 그런 목회자로 보이길 원한다. 

Q. 바꿔지기 원하는 세상의 모습

바꿔지는 것을 ‘회복’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그래서 정말 교회 안의 예배가 예배다운 예배로 회복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주의 성도들이 더욱 뜨겁게 간절함을 갖고 준비하는 신앙으로 회복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고 상급을 잘 준비하는 성도들의 신앙생활로 회복되면 좋겠다. 

Q. 독자들에게 권면의 한 마디

모든 성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 그 본분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좋겠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왜 나를 부르셨을까?’라는 가치관으로 나를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고, 귀한 사람들이다. 세상의 어떤 사람에게 주지 않은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고 ‘찬양’할 수 있는 특권도 주셨다. 무엇보다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이 아름다운 가치관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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