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철 목사(사진 우측)는 목원대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 대전역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사회선교센터 '벧엘의집'을 설립해 울안공동체와 쪽방상담소, 희망진료센터 등 사회적 약자 사역을 22년째 이어오고 있다.
원용철 목사(사진 우측)는 목원대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 대전역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사회선교센터 '벧엘의집'을 설립해 울안공동체와 쪽방상담소, 희망진료센터 등 사회적 약자 사역을 22년째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20년은 코로나19로 시작해서 코로나19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1년 내내 코로나 상황에 따라 좌지우지되었다. 특히 연말에 시작된 3차 판데믹은 해가 바뀌었는데도 아직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해 다중이용시설 9시 이후 영업금지, 5인 이상 사적모임금지는 계속되고 있고, 5인 이상 사적모임금지에 가족모임까지 포함되고, 설 명절 특별방역으로 인해 올해 설도 지난해 추석과 마찬가지로 고향방문이 쉽지 않을뿐더러 부모 형제나 친지들을 찾아가 세배를 하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올 설 명절은 지난 추석과 마찬가지로 집에서 조용히 보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조용하게 보내는 것도 좋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이러니 더 외롭고 쓸쓸하게 보내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바로 쪽방에서 생활하시는 벧엘 가족이나 울안공동체에서 생활하고 계신 벧엘 가족들이다. 그분들은 코로나가 아니어도 명절이 되면 심란한 마음으로 외롭고 쓸쓸하게 보내야만 했다. 그래서 벧엘의집에서는 명절이 되면 쪽방생활인과 거리 노숙인을 위해 명절 연휴 기간 하루 세끼 도시락 나눔, 제기차기, 투우, 윷놀이 등 민속놀이, 영화 보기, 명절 음식 만들기 등 잠시나마 흥겹게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런데 올해는 하루 세 끼 도시락 나눔 이외에는 방역지침에 따라 어떤 프로그램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벧엘 가족은 더 쓸쓸하고 외로운 설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 주부들은 지난해 스트레스 지수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는 통계도 있다. 방역지침에 따라 5인 이상 사적모임금지, 식당 등 다중이용시설 9시 이후 영업금지 등으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으면 식사 준비 등 집안일로 스트레스가 올라갈 법도 한데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졌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진 않지만 그 이유가 코로나19로 인해 시댁 방문 횟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란다. 이 또한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왜곡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코로나19는 지금 우리 사회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있다. 특히 그동안 전통적인 생활방식인 대면 방식이 아닌 비대면 생활방식을 요구하고 있어 많은 이들이 혼란스러워한다. 그래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잘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코로나19가 우리 사회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이전보다 더 고단해지고 계층 간의 사다리는 더 견고하게 단절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코로나19시대의 불평등 심화에 대해 정확하게 진단한 사람이 있다. 바로 로버트 라이시라는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다. 그에 의하면 코로나19로 인해 미국 사회는 새로운 4계급이 출현했다고 한다.

첫 번째 계급은 원격 근무가 가능한 노동자(The Remotes)로, 미국 전체 노동자의 35%가 해당된다고 한다. 이들은 전문·관리·기술 인력으로 노트북으로 장시간 업무를 해낼 수 있고, 화상회의를 하거나 전자 문서를 다룰 수 있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들은 코로나19 이전과 거의 동일한 임금을 받는 계급으로, “위기를 잘 건널 수 있는 계급”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계급은 필수적인 일을 해내는 노동자(The Essentials)로 미국 전체 노동자의 약 30%가 해당된다고 한다. 의사·간호사, 재택 간호·육아노동자, 농장 노동자, 음식 배달(공급) 자, 트럭 운전기사, 창고·운수 노동자, 약국 직원, 위생관련 노동자, 경찰관·소방관·군인 등으로 위기 상황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해내는 노동자라는 것이다. 일자리는 잃지는 않았지만 코로나19 감염 위험 부담에 노출된 노동자들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 계급은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The Unpaid)로 소매점·식당 등에서 일하거나 제조업체 직원들로 코로나19 위기로 무급휴가를 떠났거나,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계급으로는 잊혀진 노동자(The Forgotten)로 미국인 대부분이 볼 수 없는 곳, 이를테면 감옥이나 이민자 수용소, 이주민 농장 노동자 캠프, 아메리칸 원주민 보호구역, 노숙인 시설 등에 있는 사람들이란다. 이들은 물리적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공간에서 머무르기 때문에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이렇듯 코로나19는 그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숙인 등 4번째 계급은 코로나가 아니어도 그 사회에서 잊힌 사람들이었는데, 코로나가 그들을 아예 지워버리고 있다. 우리 사회도 다르지 않다. 코로나로 인해 잊힌 사람들인 노숙인들은 무료급식이 중단되고, 대면활동이 어려워지면서 각종 지원이 중단되어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초기 유발 하라리(Y. Harari) 교수는 코로나 이후 우리는 어떤 사회로 가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공존과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라이시 교수는 필수적 노동자들이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다면, 임금 미지급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일터로 돌아간다면, 잊힌 사람들이 그대로 잊힌다면, 그 사회는 어느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코로나 시대, 우리는 지속 가능한 사회로 가야 할지, 누구도 안전하지 않은 사회로 갈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세계적인 석학들의 진단과 대안이 아니더라도 더불어 사는 사회 상생과 공존의 사회로 가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야만 그런 사회가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샬롬.

 글ㅣ원용철 목사(벧엘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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