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에서 나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주는 일 화 하나를 소개해 본다. 중학교를 처음 간 날이다. 예비소집일로 기억 하는데, 시간이 되어 출석을 부르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던 시대였 다. 몇 곳의 초등학교에서 모여 든 학생들이 서로 자기 이름을 기다리 고 있었다. 한참 후에 누군가의 이름이 불려졌다.“이영환!”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선생님이 재차‘이영환’을 부르셨는데도 대 답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속으로‘어느 녀석이 제 이름도 모르 나? 혹시 이 친구가 안 왔나?’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이 동일하게 말씀 하셨다.“이 녀석이 안 왔나? 초등학교 때 이영환이란 친구가 있었던 학교 학생이 있으면 손 들어보세요.”

그 때였다. 옆에 있던 동네 친구가 내 옆구리를 찌르면서 내 귀에 속삭였다.

“야, 너! 네 이름이잖아!”

나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네!”하고 손을 들었는데 쏟아지는 웃음들이라니……. 아마 선생님과 다른 초등학교에서 온 친구들은 내 가 지진아로 보였을지 모른다. 나는 중학교 입학 전 예비소집 때부터 제 이름도 모르는 녀석으로 낙인이 찍혀가고 있었다.

“이영환!”

오늘의 내 이름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십 삼년 만에 처음 들은 이름이다. 난 초등학교 때까지 이름이‘이원구’였다. 지금도 옛날 마 을 사람들은‘원구’로 부르고 있다. 사촌들이나 친척들 또한 마찬가 지다.

이름에 대해 얽힌 이야기가 있다. 우리 형님은 너무나 귀한 아들이 라 작명을 부탁해서‘영근’이라 지었다. 본래 우리 형제의 돌림자는 ‘아홉 구’자였는데 집안에서 항렬과 상관없이‘영화 영’에‘뿌리 근’ 자를 넣어서 근사한 이름을 지은 것이다.

난 아들로 태어났지만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집안에선 항렬돌림 자를 써서‘원구’라고 지어 불렀다.‘원할 원’에‘아홉 구’자였다.

중학 시절 방학 때 잠시 서당에 다닌 적이 있다. 서당에서 훈장님이 이름 풀이를 한다고 각자 이름을 한문으로 말하라 하신다. 내 이름의 한자를 적으시던 훈장님이 한참 생각하시더니 하시는 말씀,“네 이름 은 노름을 하면서 살 이름이구나.”내 이름의 뜻을 풀면‘아홉을 원한 다.’라는 것이다.

화투를 해본 분들은 알겠지만 당시에 노름에 사용되던 화투에 아홉 이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섯다’‘도리지꾸땡이’등의 노름은 매번 아홉만 나오면 돈을 따는 화투였다.

우리 시골은 계몽이 되지 않아 겨울이면 남녀노유 없이 모두 화투 놀이였다. 나도 예수님을 모른 상태로 어린 시절을 보낸지라 화투에 있어서는 도사 수준이었다. 민화투, 육백, 나이롱 뽕, 섯다, 도리지꾸 땡이, 고스톱 등 못하는 화투가 없을 만큼 모든 화투놀이에 익숙해져 있을 때였다.

나는 속으로‘어쩐지 난 화투가 재미있고 좋으니 커서 노름꾼이나 될까?’라는 생각을 순간 한 적도 있다.

어쨌든‘원구’라는 이름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가려 고 호적초본을 떼어 왔는데 이게 웬 일인가? 우리 집 호적에 아무리 봐도‘이원구’는 없었다. 대신 아주 생소한 이름인‘이영환’이가 들어 있는 것이다. 당시에는 초등학교 입학 시에 호적초본이 필요 없었던 것 같다.‘이영환’이란 이름을 가지고 처음으로 중학교 예비소집에 갔다가 첫날부터 망신을 당하게 된 배경이다.

도대체‘원구’란 내 이름은 어디로 증발하고‘영환’이가 들어 앉아 있었을까? 난 사변이 일어난 해에 태어났다. 그 시절에는 유아 사망률 이 많았다. 게다가 전쟁 때였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 줄 모르니 많 은 부모들이 자녀가 태어나도 호적을 일 년쯤 미루고 있었다. 우리 집 에서도 그런 상황이었다. 이미 금쪽같은 아들을 안은 집에선 나야 별 안중에 없으셨던 것 같다. 마을 구장에게 내 이름을 알려 드리면서 면 사무소에 가면 호적신고를 하라고 부탁하셨단다. 그런데 구장님이 깜 빡 잊으셨다가 이듬해에야 생각이 나셨는데, 문제는 아이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는데 있었다.

아이 이름을 잊었으면 집에 물어서 바로 해야 할 것을, 그냥 자기 멋대로 면사무소 그 자리에서 스스로 작명을 하고 호적에 등재해 버 리셨다.‘형이‘영근’이니까 그 동생은‘영환’이라 하자.‘영화 영’에 ‘빛날 환’으로 하지 뭐.’지금 생각하면 그 구장님이 감사할 뿐이다. 노름이나 하면 좋다는 이름‘원구’보다야‘영화가 빛난다.’는‘영환’ 이란 이름이 백배 더 좋으니까.

하여튼 그렇게 작명을 했으면 집에 와서 알려주시기라도 했으면 좋 으련만, 자기 혼자만 알고 모든 것이 끝이었다. 십 삼년 동안 내 이름 은 구장님 혼자만 아는 비밀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름에도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느낀다. 집안에서야 무관심이었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한 순간도 나를 잊지 않고 깊은 관심을 가지셨으니 오직 감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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