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신앙이지만 세상을 가까이한 삶
장로되기 싫어 교회를 옮길 마음까지
기적까지 보여주셨지만 하나님을 따르지않아
암이라는 질병으로 깨닫게하신 하나님

경남 창원에서 '명의'라는 평가를 받으며 윤병원을 운영하는 상남교회 윤영길 장로. 매달 국내 의료선교로 지역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고, 여러 가지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암 수술 전, 자신은 세상 80%, 교회 20%의 장로로서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는 진실한 사람 윤영길 장로를 만나봤다.

윤병원 원장 윤영길 장로(상남교회)
윤병원 원장 윤영길 장로(상남교회)

ㅣ 삶의 시선

Q. 당신의 삶을 어떤 드라마 장르인가요?

추리인 것 같다. 사사건건 잘 풀리지 않던 일들이 돌아보면 결과적으로 풀려있다. 어려움이 닥칠 때는 하나님께 원망 불평했었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지나고 보니 나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 선상에서 하나님의 섭리대로 살아왔음을 느낀다. 결과적으로 꼬였던 삶이 풀어지고 그 꼬인 것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인도였구나 느낄 수 있는 추리극인 것 같다.

Q. 삶의 굴곡 중에 가장 행복했을 때와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어떤 순간이었는가?

젊었을 때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맏아들로서 동생들을 살펴야 했다.  서울에서 창원으로 올 때 면허증 한 장과 2,000만 원의 빚을 가지고 왔다. 그런데 중간에 '병원을 포기해야 하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까지 갔었다. 그 시기가 나의 삶에 가장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순간도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시키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젊었을 때부터 수많은 수술을 했다. 수술하는 과정 중에 환자가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보호자의 항의가 너무 두려웠고, 보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잘 해결됐다. 

가장 행복했을 때는 첫 손주를 봤을 때였다. 첫 손녀 딸이 지금은 중학교 3학년이다. 손주가 5명인데 손주들과 함께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인생의 늦은 나이 기쁨이 사라질 때쯤 하나님께서 손주라는 기쁨을 주시는 것 같다. 어린 손주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떻게 보면 바보 같은 일이지만 너무나 큰 기쁨을 준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Q. 하나님의 첫사랑을 경험한 순간은?

나는 모태신앙이지만 사실, 사회 80%, 교회 20%의 생활을 했다. 주일에 어쩔 수 없이 교회에 갔고, 장로가 되기 싫어서 교회를 옮겨야겠다는 마음마저 가졌었다. 장로라는 직분이 나에게는 너무나 큰 짐 같았다. 그리고 차마 입에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담지 못했다. 나의 삶이 누가 보더라도 하나님과 멀었기 때문이다.

모태신앙이지만 하나님의 첫사랑을 나이가 많이 들 때까지 경험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는 일마다 잘 안 됐다. 군대도 군의관으로 갔지만, 철원 땅굴에서 3년을 지냈다. 그리고 정형외과 전문의로 창원에 처음 왔을 때, 상남교회 목사님께서 건축위원장을 맡으라고 하셨다. 목사님 앞에서 안 된다고는 못하고 못 들은 것으로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아내가 건축위원장 하는 것을 생각해보라고 했지만,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출근을 했다. 그날 오토바이 사고로 허벅지가 부러진 16세 어린아이가 왔고. 수술이 미숙한 상태에서 너무 많이 다친 아이를 수술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아이의 가족은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나가면 맞아 죽을 것 같았다. 내과 선생님들도 모두 수술실로 와서 보고 사망했다고 판단하고 천을 덮었다. 그때 피범벅이 된 의사가운에 주저앉아서 하나님께 서원했다. "하나님 살려주시면 건축위원장 하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시 맥이 뛰기 시작하고 수술을 마무리하고 사는 기적이 일어났다. 하루가 지나고 '아이는 살았는데 뭐!'라고 생각하고 건축위원장을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가정에 경제적 어려움이 찾아왔다. 회계하고 용서해달라고 매달려 기도했지만 풀어주시지 않았고 환갑이 넘어서 암이란 병이 찾아왔다. 그런데 병으로 인해 세상과 멀어지게 되고 세상에서 즐기던 일을 단숨에 정리를 하게 됐다. 장로로서 부끄럽지만 내가 술을 끊으면 맥주 공장이 망할 줄 알았고 담배를 끊는 순간 담배인삼공사가 망하는 줄 알았다. 19세부터 암이 찾아오기 전까지 40년을 담배를 피웠다. 병들어도 신앙으로도 못 끊는다고 말하고 다녔다. 하나님께서 죽음을 보여주시니 단번에 끊게 됐다. 그리고 10년 동안 만져보지도 않았다. 술도 마찬가지다. 외과 의사들은 피를 많이 보니까 술을 먹어야 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술을 먹기 위한 핑계다. 술도 단번에 끊게 됐다. 그 이후에 지금까지 정반대된 생활을 하게 됐다. 매일 하나님 이야기를 하고 수도 없이 "하나님 감사합니다"고 고백한다. 암이란 병이 찾아왔을 때가 하나님의 첫사랑을 경험한 때인 것 같다. 나에게 암은 축복이다.

윤영길 장로가 직접 타자를 쳐서 만든 한, 영 성경책
윤영길 장로가 직접 타자를 쳐서 만든 한, 영 성경책

Q.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과 후의 모습의 변화는?

암 수술 후부터 술 안 먹고 담배 안 피우는 시간이 남았다. 그 시간에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64세부터 색소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나님을 악기로 연주하는 것이 더 즐거워 상남교회 성도들로 구성된 '예사랑' 색소폰 팀을 결성해 매주 예배 전 교회 로비에서 연주하고, 국내 의료선교에서 복음송을 연주한다. 요즘은 팬플루트도 도전해서 팬플루트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뿐만 아나라 장로가 되어서 성경 일독 못한 것이 부끄러워서 한글 성경과 영어 성경을 직접 타자를 쳤다. 컴맹에 독수리 타법이라 창세기 한 장을 치는데 세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직접 타자를 친 문서로 성경책을 만들었다. 성경 필타도 부족한 것 같아 요즘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성경 암송도 하고 있다.

윤영길 장로가 단장으로 있는 예사랑 색소폰 팀이 2020년 창원시 성탄트리 점등식에서 찬양을 연주하고 있다.
윤영길 장로가 단장으로 있는 예사랑 색소폰 팀이 2020년 창원시 성탄트리 점등식에서 찬양을 연주하고 있다.

Q. 가정에서 나의 모습은?

아내는 암이란 병이 찾아오기 전까지 30년을 '남편이 바로 서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암에 걸린 이후에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며 기쁜 마음으로 100일 금식기도를 하고 간호해 주었다. 아내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전에는 가정이란 지옥에서 30년을 살았는데 지금은 여기가 천국이다"고 한다. 암 이전에는 가정에서 마이너스 점수였다면 암 치료 이후에는 80점 정도는 되는 것 같다.

ㅣ 사역의 시선

Q. 지금 맡고있는 일/사역을 소개한다면?

예사랑이라는 색소폰 팀에서 단장을 맡고 있고 매주 교회 로비에서 찬양을 연주하고, 찬양이 필요한 곳에 달려가 연주를 하고 있다. 또 국내 의료선교 팀을 맡고 있다. 구성원이 12명인데 의사는 나 혼자다. 매달 시골 교회에 찾아가서 지역 어르신들을 의료로 섬기고 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 어디든지 간다. 나를 정형외과를 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께서 의료선교를 위해 준비하신 것이다고 생각한다. 평균 연령이 70세~80세인 고령화된 시골에 정형외과가 의료선교하기에 가장 알맞다.

윤영길 장로가 국내 의료선교 현장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윤영길 장로가 국내 의료선교 현장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Q. 일/사역 가운데 감동,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는?

제일 처음 국내 의료선교를 나갔을 때였다. 합천 해인사 바로 밑에 있는 교회로 갔다. 치료 후 "예수 믿으세요"라고 전도를 했는데 주민 모두가 "여기가 불교 땅인데 여기서 예수를 이야기 하냐, 예수 이야기 할 거면 진료 안 해도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진료받으러 온 한 사람은 어머니가 90세인데 의료선교왔던 교회에서 자신의병원으로 오라고해서 찾아갔더니 전신 MRI를 찍어서 100만 원이 넘게 나왔다고 상남교회 의료 선교팀도 같은 사기꾼 아니냐고 의심을 했다. 하지만 윤병원에서 쓰던 약 그대로를 들고 가서 병원에서 진료 보던 그대로 무료로 진료를 했다. 진료 후 "예수 믿으세요"라고 하면 그런 소리하지 말라고 역정을 냈다. 첫 선교지에서 마음에 참 많은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그곳에 하나님의 신유의 은사가 있었다. 병원에서 주던 주사와 약을 똑같이 3일분 처방을 했는데, 약을 먹은 사람들은 3달이 돼도 안 아프고, 못 걷던 사람이 5개월째 걸어 다녔다고 했다. 6개월이 지나니 왜 상남교회에서 안 오냐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다시 갔더니 사람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들고 교회에 가득 차 있었다. 저번에 푸대접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선물을 들고 찾아온 것이다. 진료하고 "예수 믿으세요" 했더니 "교회 나가야 될 건데"라고 대답했다. 마음문이 열린 것이다.

윤영길 장로가 CTS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영길 장로가 CTS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ㅣ 생각의 시선

Q. 잠들기전,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성경을 타이핑한 후 은혜를 받아 요즘은 성경 암송을 하고 있다. 자기 전에 1시간 정도 성경을 외우다 보면 잠이 든다. 성경 암송 구절이 적힌 프린트를 얼굴에 얹고 자면 꿈에서라도 예수님을 만날까 소망하는데 아직은 안 나타나셨다. 아침에 눈 뜨면 눈 뜨기 싫을 때 또 1시간 성경을 외운다. 성경 말씀을 많이 외워서 내 생활에 바로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요즘 하는 생각이다.

Q. 어떠한 일을 결정하거나 선택할 때 가장 기준으로 삼는 것은?

큰 수술을 할 때는 늘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엄마 내일 큰 수술하는데 기도해 주세요"라고 하면 어머니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기도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가 와서 "수술할 때 겁내지 말고 해라"고 하셨다. 환상을 봤는데 수술하는 오른쪽에 예수님이 서서 빙그레 웃으며 보고 계시더라 겁내지 말고 하라고 하셨다. 지금도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수술을 한다.

Q. 독자에게 권면과 도전의 한마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서 버티길 바란다. 그리고 돌아서면 하나님의 말씀을 잊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성경을 많이 읽고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길 바란다.

ㅣ 세상의 시선

Q. 변화했으면 하는 세상의 방향은?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이 나라를 바르게 살펴줬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그런 나라가 되길 바란다.

저작권자 © 투데이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