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락, 그 아래 1
창19:1~16
롯이 소돔 땅에서 산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애굽에 다녀온 직후인 창세기 13장에서 아브라함과 갈라서 소돔에 정착한 이후 아브라함이 왕들의 전쟁, 횃불 언약, 이스마엘의 탄생과 성장, 할례의 사건들을 거치는 동안 롯은 소돔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서 조금씩 자신의 지위를 높여갔죠. 안타까운 점은 소돔에서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는 것만큼 그의 내면이 성장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롯의 인생에 있어서는 안정적인 소돔보다 고달픈 광야생활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주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창19:1, 개역개정)
저녁때에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렀다. 롯이 소돔 성 어귀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서 맞으며,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청하였다.(창19:1, 새번역)
두 천사가 소돔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두 천사가 가장 해가 뜨거운 대낮에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식사를 한 후 소돔을 향해 갔기에 어느덧 해질녘이 된 것인데, 밝은 낮과 어두운 밤이라는 시간 차이는 아브라함과 롯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대조해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파트너라는 인정과 함께 후사에 대한 복이 약속된 반면 롯에게는 소돔 멸망이라는 재앙이 준비되어 있었으니까요.
나그네를 만난 아브라함과 롯의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아브라함의 태도는 극진함을 넘어 호들갑에 가까웠습니다. 달려 나가 엎드리고, 가장 좋은 재료들로 음식을 만들고, 식사하시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손수 시중을 들었죠. 롯의 태도 역시 나그네를 대접하는 데 있어서 부족함이 없었지만 아브라함에 비하면 어딘지 부족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이미 해가 진 뒤였으니 아브라함처럼 진수성찬 차리기는 힘들었을 것이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어도 실제로는 제법 잘 대접했을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두 천사가 집에 들어오지 않고 길에서 밤을 보내겠다고 한 것은 꽤나 여러 가지를 추측하게 합니다. 롯의 태도를 테스트 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롯의 자세가 천사들을 흡족하게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도 롯은 천사에게 간청해 집에 들어와 식사를 대접하는 것 까지는 성공합니다. 끔찍한 사건은 그 뒤에 벌어지게 되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19:5, 개역개정)
그들은 롯에게 소리쳤다. “오늘 밤에 당신의 집에 온 그 남자들이 어디에 있소? 그들을 우리에게로 데리고 나오시오. 우리가 그 남자들과 상관 좀 해야 하겠소.”(창19:5, 새번역)
사람들이 몰려와 롯의 집을 에워싸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두 천사였고, ‘상관하다’라는 단어에서 성적 범죄의 의도가 엿보이는데, 모인 이들이 남자들이었고 천사의 모습 또한 남자 사람이었으므로 당시 소돔에 동성애가 만연해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동성애라는 범죄 한 가지로만 이 사건을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여기엔 아주 많은 것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죠. 우선 이 사람들의 공격성이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이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무례한 요구를 할까요? 롯은 그저 자신을 찾아 온 나그네를 잘 대접했을 뿐인데, 왜 죄 없는 나그네를 해칠 뿐만 아니라 롯을 괴롭히려는 것일까요? 성적 탐욕을 채우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이런 폭력적인 방법보다는 은밀한 접근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모였다면 그저 성적 탐욕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고 뭔가 다른 것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창19:7, 개역개정)
그들을 타일렀다. “여보게들, 제발 이러지 말게. 이건 악한 짓일세.(창19:7, 새번역)
사건의 진상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롯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맨 처음 소돔 성에 갔을 때부터 롯은 줄곧 이방인이었습니다. 성은 성벽이라는 경계로 바깥세상과 분리된 공간이죠. 게다가 공동체 자체가 폐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고립된 사회가 되기 쉽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매우 풍요롭고 부유한 곳이었기에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고, 오늘날과 같이 치안이 확보되지 않은 무법천지의 세상에서 평균을 뛰어넘는 풍요는 폐쇄성의 동기로 충분했습니다. 에덴동산 같고 애굽 같았던 그 좋은 땅이 실제로는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친 이기적인 사회였던 것이죠. 롯은 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소돔 이주 이후 광야에 살 때 겪은 거칠고 고달픈 삶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끊임없이 공동체 안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그들에게 흠 잡히지 않으려 갖은 애를 써야 했겠죠. 하지만 소돔 사람들에게 롯은 어디까지나 이방인에 불과했습니다. 롯이 소돔 사회의 중심을 향해 한 발씩 다가설수록 그들의 경계심도 더 커졌고 갈등의 싹이 조금씩 더 크게 자라났죠. 이것이 천사의 방문을 계기로 폭발하고 만 겁니다. 롯이 또 다른 이방인을 감싸는 모습을 보자 평소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이 극대화되어 나타난 것이죠. 따라서 이날의 사건은 소돔의 성적 타락상과 함께 이방인 롯과 소돔 사람들 사이의 대립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 셈입니다. 자신을 위협하는 이들에게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기는커녕 어떻게든 달래보려 노력하는 롯의 태도에서 이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창19:8~9, 개역개정)
이것 보게, 나에게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이 있네… 그러자 소돔의 남자들이 롯에게 비켜서라고 소리를 지르고 나서 “이 사람이, 자기도 나그네살이를 하는 주제에, 우리에게 재판관 행세를 하려고 하는구나. 어디, 그들보다 당신이 먼저 혼 좀 나 보시오”…(창19:8~9, 새번역)
궁지에 몰린 롯은 뜻밖의 카드를 꺼냅니다. 나그네 대신 자신의 결혼하지 않은 두 딸을 주겠다는 제안이었죠. 이 장면을 보면 소돔의 타락이 동성애뿐만 아니라 이성애에 있어서도 심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폭력으로부터 나그네를 보호하기 위해 딸에 대한 폭력을 용인하겠다는 롯의 결정이 선뜻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결국 자신의 딸을 희생해서라도 그간 쌓아올린 자신의 지위를 지켜내는 한편, 나그네들에게도 결례를 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네요. 롯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나그네도, 가족도 그의 안중에 없었습니다. 오로지 지금의 위기를 넘기고 자신에 대한 평판을 유지시키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죠. 안타깝게도 이런 롯의 행동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소돔 사람들이 롯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롯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으니까요. 결국 소돔사람들의 최종 목표는 나그네도, 딸도 아닌 외지인임에도 소돔 안에서 점차 위상을 높여가고 있던 롯이었던 셈입니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창19:15~16, 개역개정)
동틀 무렵에 천사들이 롯을 재촉하여 말하였다. “서두르시오. 여기에 있는 부인과 두 딸을 데리고, 여기를 떠나시오. 꾸물거리고 있다가는, 이 성이 벌을 받을 때에, 함께 죽고 말 것이오.” 그런데도 롯이 꾸물거리자…(창19:15~16, 새번역)
소돔 사람들과 롯이 갈등을 겪는 동안 소돔 타락의 실상을 천사들이 파악한 이상, 심판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먼저 롯의 가족을 피신시키려 했죠. 그런데 창세기는 심판으로부터 피해야 한다는 긴급한 이야기를 들은 롯이 주저했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롯의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때는 소돔 성의 중심에 들어가는 것이 자기 인생의 목표였지만 지금은 그렇게 이뤄냈던 모든 것들이 버릴 수 없는 미련이 되어 그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가족들의 안위보다 자기 입장을 우선하는 그의 태도가 드러나고 있고요. 결국 천사들은 롯의 가족을 강제로 끌어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이것도 롯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봐서 한 것이었지만요.(창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