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9절)

산상수훈은 무리가 아닌 제자들을 향해 주님이 들려주시는 삶의 교훈입니다. 산상수훈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팔복’은 예수님의 첫 설교로써 아주 중요한 예수 정신을 말씀하십니다. 바로, ‘행복 선언’과 ‘천국 성품’의 선포입니다. 그 중 가장 핵심 행복은 7번째 해당하는 ‘화평하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 자녀라 불리는 행복’입니다.
화평은 무엇입니까? ‘회복된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회복된 자는 자신과 평화를 유지하게 되고, 하나님과 평화한 자는 이웃과도 화평한 자로 살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왜 화평하게 하는 자가 행복할까요? 화평이 ‘천국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화평을 도모하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화평한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기뻐하시면 ‘너는 내 자녀다’라고 적극적으로 인정하시겠습니까? ‘화평’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원하시는 하늘의 성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화평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관계 안에서 ‘갈등’을 겪기 때문입니다. 인간 갈등의 불씨와 화근은 대부분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서 시작됩니다. 오죽하면 야고보사도는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전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화평을 깨는 인간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할까요? 바로, ‘내가 예수와 함께 죽었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과 골로새서 3장 3절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내가 예수와 함께 죽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었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신다면 내 안의 평강은 물론이요, 우리는 이웃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갈 것입니다.
시편 34편 12절에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거든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하여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는 날 동안 정말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부정한 말을 버리고 선을 따라 화평을 좇는 삶을 사모합시다. 화평하게 하기를 사모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여기는 자녀의 행복을 얻습니다.
사람 ‘인(人)’ 한자를 보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삶이란 혼자가 아닌 ‘함께’ 세워가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인간은 삶의 의미와 보람을 먹고 삽니다. 내 가까운 이에게 기댈 어깨를 내어주는 화평하게 하는 자로, 평화를 지어가는 삶으로 행복을 누리시는 하나님 자녀가 되길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글ㅣ승향아 목사(그린나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