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1" 전시
  • 철거 논란이 된 영상 전시를 통해 본 "기괴한" 인간 풍경
  •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예술과 신앙이 필요한 시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매년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1 포스터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매년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1 포스터

서점에서도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지만 미술관에서도 흐름을 시각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해마다 열리는 '올해의 작가상'은 의미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가 주목하고, 주목해 볼 만한 이야기를 작품에 어떻게 담아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그런데 2021년 '올해의 작가상' 전시는 시작하자마자 논란이 일어났다. 한 작가의 작품이 "문제"였다. 시각예술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정윤석의 <내일> 전시 영상이 "문제"였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싶었던 작가는 가장 인간답지 못한 현장으로 관람객을 데리고 간다.

중국의 한 섹스돌 공장의 풍경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인형을 구매해 함께 살아가는 일본의 한 노인. 인공지능 로봇을 정치적 대안으로 제시하는 한 정치인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19금 전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인스타그램)
19금 전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인스타그램)

전시장 앞에 19금이라고 적혀있을 만큼, 검은 천을 열고 들어가서 만나는 영상은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중국의 지저분한 공장 바닥에 여성의 몸을 닮은 커다란 인형이 찢기고, 분해되고 조각된다. 그 과정을 담은 영상은 충격적이다. 

정윤석 작가의 영상을 본 관람객 중에는 여성 단체의 항의처럼 불쾌함을 토로하며 전시 철회를 요구할 수도 있다. 폭력을 고발하기 위해 또 다른 폭력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음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 작가는 숙고해 봐야 한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인스타그램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인스타그램

작품에 대한 논란을 뒤로하고, 전시장을 나온 뒤 계속되는 질문은 있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예술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미술사학자인 한스 로크 마커가 말했듯이 예술은 "인간에게 예술과 미의식을 부여하는 것을 좋게 여기신 하나님의 의도에 기원"하지 않는가. 기독교인에게 예술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진'과 '선'만이 아닌 '미'를 발견하는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평화로운 시대의 예술과 전쟁 중의 예술은 달랐다. 시대의 상황에 따라 부각되는 예술의 모습은 바뀔지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이것이 아닐까? 예술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은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전시장이나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채널에서 정윤석 작가의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다
전시장이나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채널에서 정윤석 작가의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기 위해 정윤석 작가가 또 다른 이들에게 불쾌함을 준 표현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전시를 통해 다시 드러난 "기괴한" 인간의 모습이다.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만들어 팔아도 된다는 사람들.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사도 된다는 사람들. 신뢰와 사랑 없이 욕망을 채우는 존재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책에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대죄와 네 가지 종말> 그림이 담겨있다
책에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대죄와 네 가지 종말> 그림이 담겨있다

전시를 보고 난 후, 책 한권이 떠올랐다. IVP출판사에서 발행한 신원하 교수의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정욕, 허영, 일곱 파트의 각 부분에는 네덜란드의 중세 화가의 그림이 함께 담겨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대죄와 네 가지 종말'이라는 그림은 일곱 가지 죄를 그림으로 아주 선명하게 보여준다. 중세 시대, 이런 작품을 통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도록 이끈 것처럼 그런 예술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얼마 전, 10살 여자 아이가 이모 부부의 학대와 물고문으로 사망했다. 10살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과정이 신문 기사에 너무나 상세히 묘사되어 있어 몇 줄을 읽다가 덮었다. 더 이상 읽어갈 수가 없었다. 이렇게 "기가막힌" 시대 속에서 정윤석 작가가 던진 질문은 기독교인만이 아닌 모두에게 유효하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창조주의 형상을 닮았지만, 여전히 죄성을 가진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사고팔 수 있다는 생각과 타인은 사라지고 오직 자신의 욕망만이 우상이 된 모습이 우리 안에 숨어있는 건 아닌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예술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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