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연동서부교회 이상성 목사(lee-sangsung@hanmail.net)의 작품
제주연동서부교회 이상성 목사(lee-sangsung@hanmail.net)의 작품

코로나 19가 전 세계적인 팬데믹 현상이 된 지 두 번째 맞는 사순절(四旬節) 절기가 시작되었다. 올해 사순절은 지난 2월 17일(수)부터 부활절(4월 4일) 전날까지 여섯 차례의 주일을 제외한 40일간이다.

초기 로마 가톨릭에서는 이 기간을 매우 엄격하게 지켰는데, 하루에 한 끼, 저녁만 먹되 채소와 생선과 달걀만 허용되었다. 9세기에 와서 이 제도가 약간 완화되었고, 13세기부터는 간단한 식사를 허용하였다. 밀라노에서는 36일간 단식을 하였고, 9∼14세기에 이르는 동안에는 교구의 성직자는 칠순절부터 단식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단식은 완화되었고, 사순절을 단식기간으로 지키기보다는 구제와 경건훈련으로 더 유효하게 지키게 되었다.

사실 사순절에 대해서는 개신교 내에서도 여러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의 형식적이고, 미신적인 형태로 사순절을 지키는 것을 엄격하게 거부했다.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사순절을 기독교 절기로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렇지만 개신교 내에서는 이 기간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묵상하는 좋은 기회로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순절에 대한 이런 상반된 두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해 있다. 나는 이것을 ‘아디아포라(adiaphora, 허용된 것)의 문제로 접근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가 사순절을 가톨릭이 지키는 것처럼 잘못된 방식이 아니라 이 시간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집중하여 묵상할 수 있다면 유익이 있다고 본다.

올해는 작년에 이어 코로나 19가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위드 코로나 시대(with Corona, WC) 중에 있다. 이런 때 2021년 사순절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첫째, 관용의 정신이 가득한 사순절을 보냈으면 한다. 오늘 우리 사회뿐 아니라 기독교 내에서도 어떤 사안에 대해 흑백 논리로 보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좁은 시각을 가진 사람은 나와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적으로 간주해 버린다. 극단적인 한쪽 편에 선 문자와 카톡을 수시로 보내고, 페이스북에 조금이라도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개진하면 적으로 생각해 버린다. 우리는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지 않을까? 서로의 차이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인정하는 모습이 사순절에 대해서도 있으면 좋겠다.

둘째, 미신화된 사순절로서 절기를 지키면 안 된다. 개혁자들이 철저히 배격한 이런 모습은 종교개혁의 후손으로 우리가 극히 조심해야 할 모습이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자유를 이미 획득한 사람들이다(요 8:32).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금식을 하더라도 바리새인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금식이 아닌 나의 죄와 악을 돌아보는 성경적인 금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여러 단체에서 벌이는 ‘미디어 금식’도 ‘금식’(禁食)이라는 용어에 매여 미디어 자체를 배척하는 것으로 나아가지 말고, 절제의 형태로 가면 어떨까? 우리는 주님이 주신 선한 것까지 거부해서는 안 되기에 말이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놀라운 섬김과 사랑을 깊이 감사하는 시간으로 보냈으면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낮아지시고, 결국에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빌 2:6-8). 이처럼 기독교의 진정한 힘은 낮아짐과 죽음을 통한 승리를 지향한다. 근자에 일부 극단적 편에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세상과 싸워 얻게 되는 승리가 아니다. 우리의 구원과 세상을 새롭게 하기 위해 죽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섬김의 왕으로 오신 주님처럼 사순절 기간을 통해 더욱 열심히 낮은 자세로 섬기는 기간으로 보내야 한다.

넷째, 나 개인의 죄의 참회나 절제를 넘어서는 공동체에 대한 깊은 생각을 가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코로나 19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중요한 가르침은 결국 우리는 한 개인과 한 지역 교회(파라처치 포함)가 아닌 그리스도의 몸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전 12:26). 나 혼자, 한 교회가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고통의 시간을 공동체, 특별히 고난 받고 있는 성도와 교회 그리고 이웃을 더욱 돌아보는 시간으로 보냈으면 한다. 우리는 공동운명체이다.

한국 기독교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광야에서 보낸 시간과 같은 어려운 때를 보내고 있다. 광야가 주는 고통은 너무나 크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광야는 우리를 낮추고,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빛난 장소였다. 코로나 19로 맞는 두 번째 이 사순절 기간을 통해 더욱 주님을 의지하고, 교만했던 우리의 모습을 낮추어 주님만을 의지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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