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락, 그 아래 2
창19:20~30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창19:20, 개역개정)
보십시오, 저기 작은 성이 하나 있습니다. 저 성이면 가까워서 피할 만합니다. 그러니, 그리로 피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주 작은 성이 아닙니까? 거기로 가면, 제 목숨이 안전할 것입니다.”(창19:20, 새번역)
천사는 롯에게 산으로 가서 재앙을 피하라고 했지만, 롯은 그 자리에서 보이는 작은 성을 가리키며 그곳을 피난처로 삼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어쩐지 이 장면을 보면 아브라함과 갈라서면서 눈에 보이는 가장 좋은 땅을 선택했던 때의 롯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똑같은 방법으로 그때의 성을 탈출하려 한다는 차이점이 있네요. 롯이 천사가 말해준 산이 아닌 성읍을 택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아브라함과 갈라서기 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겁니다. 산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다시금 광야의 떠돌이 생활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했으니까요. 차라리 소돔으로 다시 돌아갈지언정 광야 생활만큼은 선택하고 싶지 않았던 롯은 대안으로 소돔처럼 크고 강한 성은 아니었지만 어쨌건 도시 생활을 할 수 있는 작은 성읍이라도 택하고 싶었을 겁니다. 바로 그때 그의 눈에 작은 성읍 소알이 들어온 것이었고요. 가족들 입장에서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에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화를 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롯이 언제 다른 사람 생각을 한 적이 있었나요?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19:26, 개역개정)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다.(창19:26, 새번역)
천사들의 양해 아래 소알을 향해 달리는 롯 가족의 등 뒤에서 심판이 시작됩니다. 노아 시대의 대홍수 심판이 하늘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비로 쏟아졌다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은 엄청난 양의 유황과 불이 비처럼 내린 것이 다른 점이죠. 하늘에서 내리는 유황과 불이 성은 물론 성 바깥의 들판까지 태워버렸으니 설령 심판이 임한 것을 깨닫고 성문 밖으로 도망쳤다고 하더라도 모두 죽었을 겁니다. 오로지 소알로 대피한 롯의 가족만 살아남았는데, 이 과정에서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어겨 소금 기둥이 되어버렸죠. 그녀는 왜 뒤를 돌아봤을까요?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살았던 이들이 몰살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연민이 함께 있었을 겁니다. 차마 그들을 죽게 놔두고 달아나는 것이 쉽지는 않았겠죠. 오히려 그렇게 엄청난 일을 겪는 이에게 뒤를 돌아보면 소금 기둥이 된다는 규칙을 준 것이 도리어 너무 가혹해 보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혹독한 형벌을 롯의 아내에게 내렸을까요?
하나님께서 뒤를 돌아보는 행동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이 절대 아닙니다. 아주 잠깐 등 뒤를 보는 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충분히 용서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된 것은 시선이 뒤쪽으로 가서가 아니라 그녀의 마음속에 과거에 대한 미련이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황과 불의 열기 속에서 그녀의 소유들과 공들여 만든 관계들, 힘들게 쟁취한 명예와 지위가 함께 불타고 있었고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죽어가는 이들을 향한 연민과 뒤섞여 뒤를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그녀가 소금기둥이 된 사건은 과거의 삶에 더 이상 마음을 두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확한 가르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그녀를 보며 가장 큰 두려움에 빠진 이는 아마도 롯이겠죠. 롯이야 말로 잃어버리지 않으려 손에 움켜쥔 것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었으니까요.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창19:30, 개역개정)
롯은 소알에 사는 것이 두려워서, 두 딸을 데리고 소알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서, 숨어서 살았다. 롯은 두 딸들과 함께 같은 굴에서 살았다.(창19:30, 새번역)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아내를 뒤로한 채 두 딸과 소알로 피신한 롯이었지만 그곳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소알 사람들 입장에서 롯이 달가울 리 없었겠죠. 이방인인 데다가 하루아침에 멸망당한 소돔에서 빠져나왔다니, 그를 받아들이게 되면 소알 또한 심판 받을지도 모를 일이었거든요. 롯의 입장에서는 처음 소돔에 갔을 때보다 더한 벽을 소알에서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그런 경계와 차별을 이겨내어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에는 이미 너무 늙었고 가진 것도 없었죠. 사실 다른 어떤 이유보다 롯 자신이 소알에서 지내는 것을 두려워했을 겁니다. 소알이라고 거룩하게 사는 사람만 모였을 리 없으니 롯의 눈에는 그곳도 언제 멸망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성읍이었겠죠. 결국 그는 도시를 떠나 스스로 산으로 들어가 굴에서 사는 것을 택하게 됩니다. 도시 생활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소돔의 멸망과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그가 느낀 절망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게 해 줍니다. 훗날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보이듯이 굴은 무덤으로 쓰이곤 했으니, 롯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산 것입니다(창23:19). 그는 이제 사회적 성공에 대한 모든 집착을 포기한 채 스스로를 고립시켰습니다. 그런데 롯의 이런 변화가 엉뚱하면서도 너무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가장 가까웠음에도 그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던 가족들에게서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