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락, 그 아래 3
창19:31~38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창19:31~32, 개역개정)
하루는 큰 딸이 작은 딸에게 말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아무리 보아도 이 땅에는 세상 풍속대로 우리가 결혼할 남자가 없다. 그러니 우리가 아버지께 술을 대접하여 취하시게 한 뒤에, 아버지 자리에 들어가서, 아버지에게서 씨를 받도록 하자.”(창19:31~32, 새번역)
두 딸이 보기에, 소돔과 소알을 모두 버리고 산 속 굴에서 살기로 결심한 롯의 절망은 도저히 극복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다시 산을 내려가 도시 생활을 시작할 가능성이 영영 없어 보인 것이죠. 그렇다면 자신들의 미래 또한 전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소돔이 심판받기 전 결혼을 약속한 사람들이 있었던 만큼 결혼 적령기였던 두 딸은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상황 안에서 자신들의 살 길을 찾기로 결심합니다. 고립된 세계 안에서 자신들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남자인 아버지 롯에게 술을 먹인 뒤 동침해 아이를 낳으려고 한 것이죠.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창19:35, 개역개정)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작은 딸이 와서 누웠다가 일어난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창19:35, 새번역)
창세기 19장 35절은 성경에 기록된 롯의 마지막 행적입니다. 큰 딸과 작은 딸이 연이어 자신과 관계를 가지는 것을 전혀 모른 채 그저 술에 취해 있었다는 기록이죠. 엄청난 심판의 재앙을 겪은 후 술에 취해 있었던 노아의 만년이 묘하게 겹치는 장면이면서 롯의 인생이 그야말로 바닥까지 추락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망가진 것일까요? 롯의 삶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롯이 꿈꾸고 쫓았던 모든 것들은 실상 바벨탑을 쌓는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단한 탑을 쌓고 또 쌓으며 살았죠. 그 시작은 어쩌면 아브라함을 따라 하란을 떠날 때부터 시작되었을 겁니다. 처음엔 하란을 떠나 타지로 가서 성공을 거두고자하는 마음이 있었겠죠. 하지만 기근을 피해 끊임없이 다른 고을로 가야 하는 고달픈 삶에 조금씩 지쳐갔고, 그런 그가 애굽에 가서 본 모든 것들은 자신이 가진 성취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아브라함과 결별해 소돔이라는 큰 성읍으로 가 의욕적으로 자기만의 성공을 향해 달려갔죠. 거의 하늘에 닿을 듯이 쌓아올린 탑 위에서 그는 만족했을까요? 곧 실현될 것만 같던 그의 꿈은 천사의 등장과 함께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맙니다. 바벨탑을 쌓던 이들이 언어가 혼란해지며 흩어진 것처럼 그가 손에 쥐었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그날 밤의 소돔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죠. 집도, 재산도, 명예도, 가족도, 친구도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된 롯의 마음은 그야말로 무너져 내린 바벨탑처럼 황량한 상태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잃어버린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창19:27~28, 개역개정)
다음날 아침에 아브라함이 일찍 일어나서, 주님을 모시고 서 있던 그 곳에 이르러서, 소돔과 고모라와 넓은 들이 있는 땅을 내려다보니, 거기에서 솟아오르는 연기가 마치 옹기 가마에서 나는 연기와 같았다.(창19:27~28, 새번역)
소돔이 멸망한 다음날 아침, 아브라함은 해가 뜨자마자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던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소돔이 잘 보였기 때문이죠. 아마도 소돔이 정말 심판을 받았는지, 아니면 자신이 간청한대로 심판을 피할 수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눈에 들어온 장면은 엄청난 불의 심판 뒤에 피어나는 연기였죠. 한 가지 의아한 것은, 이 구절 이후 아브라함이 롯을 찾으러 갔다는 내용이 창세기에 없다는 점입니다. 다섯 왕과 네 왕이 싸우던 전쟁 때 롯이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는 죽음을 무릅쓰고 구하러 갔던 아브라함이었는데, 왜 지금은 롯을 구하러 가지 않은 걸까요? 반대로 롯은 왜 아브라함을 찾아가 의지하지 않았을까요? 아브라함이 거두어 주었다면 롯이 굳이 소알을 나와 산에 올라갈 필요가 있었을까요? 분명한 사실은, 이날 이후 아브라함과 롯 사이의 연결 끈이 완전히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한때 가장 가까운 혈육이었던 두 사람은 이제 다시는 가까워질 수 없는 남이 되고 말았습니다. 창세기에 구체적 언급이 없으니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롯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고 나아가 두 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아브라함이 발길을 끊었을 수도 있고 롯 스스로가 아브라함과의 혈연마저 끊는 고립을 택했을 수도 있죠. 소돔 탈출에 이어 두 딸까지 임신시킨 충격에 일찍 사망하게 되어 더 많은 이야기를 남기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무엇이 정답이건 이날 이후 아브라함과 롯이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된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훗날 롯의 두 딸이 낳은 아들들이 모압과 암몬 민족의 조상이 되면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과 끊임없이 대립했으니 결국 아브라함과 롯의 관계는 최악의 비극으로 막을 내린 셈입니다.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룻1:22, 개역개정)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 여인인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이르렀을 때는 보리를 거두기 시작할 무렵이었다.(룻1:22, 새번역)
하지만 이 둘의 관계가 이런 식으로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먼 훗날의 이야기인 룻기에서 아브라함과 롯은 절묘한 해후를 나누게 되거든요. 시어머니인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에 온 모압 여인 룻은 우여곡절 끝에 보아스와 결혼하게 됩니다. 보아스는 유다 지파 사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룻은 모압 여인이었으니 롯의 후손이죠. 집안뿐만 아니라 삶 또한 자신들의 조상과 유사합니다. 보아스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어려움에 처한 이에게 자비를 베풀 줄 알았으며, 가장 가까운 친척인 나오미와 룻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는 신실한 사람입니다. 반면 롯의 후손인 룻은 나오미의 며느리가 되는데, 나오미는 유대 땅에 흉년이 들자 보다 살기 좋은 모압으로 이주했다가 그곳에 또 다시 기근이 찾아오자 다시금 빈털터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즉 룻과 나오미는 자신의 성공에 몰두하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롯의 행태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죠. 룻기는 이 둘의 만남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줍니다. 룻은 성공을 쫓기보다는 시어머니를 섬기는 편을 택함으로써 롯과는 다른 선택을 보여주었고, 보아스는 결국 갈 곳 없던 친척 나오미와 룻을 자기 가족으로 거둬들여 아브라함이 하지 못했던 친척의 의무를 완수하게 됩니다. 실로 룻기는 창세기의 비극을 완벽한 해피앤딩으로 돌려놓는 책입니다. 만약 훗날 후손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이런 드라마의 내용을 알게 되었다면 고달픈 롯의 만년도 조금은 위로받지 않았을까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