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는 카페 ‘수망일기’ 주인장, 주일에는 ‘수망리교회’ 목회자
일하는 삶의 영역에서 ‘사람’을 만나고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복한 목회’
‘교회’는 건물이 아니며, 믿는 ‘사람’들이 교회가 되어야 한다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수망리교회’ 황인선 목사의 아침은 남다르다. 다른 교회가 새벽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황 목사는 커피 원두를 로스팅하고 커피를 내린다. 앞치마를 두른 바리스타 황 목사가 ‘수망일기’ 카페 주인장이 되는 순간이다.

수망리교회는 주중엔 카페, 주일엔 교회가 된다. 수망리 농협 비료 창고였던 공간을 신앙이 있는 사람에겐 예배의 공간, 손님들에겐 따뜻한 공간이 되도록 꾸몄다. 불신자, 교회에서 상처받고 떠난 사람, 마을 주민, 무신론자 등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도 큼지막한 교회 간판 하나 없는 이곳에 나와 커피를 마시고, 황 목사와 대화를 나누며 신뢰와 회복을 쌓아갔다. 황 목사는 “성도는 물론 카페 단골들과 함께 지내며, 삶의 무게를 나눠지고 사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일하는 삶의 영역에서 사람을 만나고,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는 황인선 목사.

그가 오늘도 커피를 내리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주중엔 카페 '수망일기'의 바리스타로, 주일엔 '수망리교회' 목회자가 되는 황인선 목사.
주중엔 카페 '수망일기'의 바리스타로, 주일엔 '수망리교회' 목회자가 되는 황인선 목사.

ㅣ삶의 시선

두렵고 떨리는 인생의 길이지만 혼자가 아닌 가족이 함께라서 행복하다.

Q. 목회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과정은 어떠했는가?

제약회사를 다니다가 클래식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지휘자가 되기 위해 독일 유학을 고려했었다. 여러 상황 때문에 장로회신학대학 교회음악과에 편입했고, 졸업 즈음 신학대학원 시험을 봤는데 낙방했다. 이후 7년 동안 인터넷 쇼핑몰과 자동차 딜러, 학원 강사 일을 하며 평범한 성도의 삶을 살았다.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던 어느 날 “너희들은 삶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인도하심이 맞는다면 그 길로 가면 되는데,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목회에 도전하게 되었다. 이후 목회를 해나가면서 전도의 방식으로 사람을 모으는 목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자연스럽게 사람과 만나는 길을 택하고자 노력했다. 내 신앙 안에서 스스로 찾아온 목회의 길을 오늘도 걷고 있다.

가족(채정은 사모, 황예린, 황주환)은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가르쳐 준 소중한 존재라고 고백하는 황인선 목사. @출처=수망리교회
가족(채정은 사모, 황예린, 황주환)은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가르쳐 준 소중한 존재라고 고백하는 황인선 목사. @출처=수망리교회

Q.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나를 일깨워 어떤 사람인지를 바로 보게 하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가르쳐 준 소중한 존재들이다. 제주에 온 직후 두 남매의 입을 통해 "행복하다"는 말을 들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존재하고, 그저 머릿속 환상으로만 존재하던 ‘행복'이라는 단어가 귓속으로 생생히 들어왔다. 두 남매가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에 나도 행복해졌다. 제주로 오자고 먼저 얘기를 꺼낸 아내는 이미 행복을 누리며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우리 가족은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일들을 함께 고민하고 격려하고 위로해 가면서 모든 일들을 해 나간다. 두렵고 떨리는 인생의 길이지만 ‘혼자’가 아닌 ‘가족’이 함께라서 행복하다.

“수망리에서 우리가 사는 이야기를 쓴다”

앞치마를 두른 황인선 목사가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고 있다.
앞치마를 두른 황인선 목사가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고 있다.

Q. 목회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였는가?

어느 한때를 특정할 수 없지만, 교인, 카페 손님, 마을 주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 무신론자들과 언제 어디서나 그분들의 이야기들을 불편함 없이 듣고, 또 그분들에게 자연스럽게 내가 믿고 있는 복음의 진리를 얘기하면서 대화할 때 너무 행복하다.

ㅣ사역의 시선

“교회는 건물이 아니며, 믿는 ‘사람’ 들이 교회가 되어야 한다”

십자가와 큼지막한 교회 간판 하나 없는 '수망리교회'. 작은 나무 이정표만이 이곳이 교회임을 말해주고 있다.
십자가와 큼지막한 교회 간판 하나 없는 '수망리교회'. 작은 나무 이정표만이 이곳이 교회임을 말해주고 있다.

Q. 수망리교회가 표방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이 궁금하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는 것을, 이곳 수망리에서 카페와 집을 지으며 피부로 느꼈다. 우리는 단순히 예배로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생각했다. 생계를 위해 카페 공간을 만들면서 주일에는 이곳을 예배 장소로 쓰려고 처음부터 마음먹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교회를 짓는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한 것이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였다.

교회는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두세 사람 모여 소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교회는 그렇게 생각하는 지체들이 모여 함께 예배드리고 있다.

수망리 교회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코로나 확산 전 모습) 카페 '수망일기' 공간이 주일엔 '수망리교회'가 된다. @출처=수망일기
수망리 교회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코로나 확산 전 모습) 카페 '수망일기' 공간이 주일엔 '수망리교회'가 된다. @출처=수망일기

Q. 수망리교회만의 특별함이 있다면 무엇인가?

열두어 명 되는 교인들은 누가 전도해서 온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모두 스스로 찾아오신 성도들이다. 카페에 커피 마시러 왔다가 '수망리교회'라고 쓰여 있는 작은 표시를 보고 온 분도 있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다 만나서 알게 된 분도 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어찌어찌 이 공간이 교회라는 것을 알고 오신 분도 있다. 정말로 전도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 맞고 사람은 그저 말씀대로 살 뿐인 것 같다.

“한 사람이라도 예배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교회’가 되고 ‘예배당’이 된다”

황인선 목사가 목회비전과 수망리교회 사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황인선 목사가 목회비전과 수망리교회 사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또 하나는 주일예배 외에 다른 모임이 없다. 주중에는 카페 ‘수망일기’를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교인들이 언제든 편하게 찾아와서 대화하고 서로 소식을 나눈다. 따로 전도를 위한 활동이 없음에도 신앙이 없는 카페 손님들이나 수망리 마을과 인근 주민들도 내가 목사인 줄도 알고 일요일에는 이 공간이 예배당으로 변신하는 것도 안다(웃음).

2018년부터는 주일예배가 2부로 늘어났다. 평생 해녀로서 물질을 해온 구순이 넘은 어르신이 계시는데 몸이 불편해 교회까지 찾아올 수 없지만, 꼭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말씀이 있었다. 엉겁결에 어르신 댁에 찾아가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오전 10시 그분 댁에 가서 예배를 드리게 되어 주일 1부 예배가 신설된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예배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교회가 되고 예배당이 된다”고 생각한다.(코로나 확산 이후현재 대면 예배는 드리지 않고 있다)

채정은 사모가 직접 만든 패브릭 인형과 소품. 농협 비료 창고를 리모델링하여 아늑하고 따뜻하게 꾸민 공간은 핸드메이드 인형을 제작하는 '공방'이기도 하다.
채정은 사모가 직접 만든 패브릭 인형과 소품. 농협 비료 창고를 리모델링하여 아늑하고 따뜻하게 꾸민 공간은 핸드메이드 인형을 제작하는 '공방'이기도 하다.

Q.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역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성경에는 다니엘처럼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혼자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야기가 적지 않게 나온다. 그런 예배도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신다. 성경 말씀을 비춰봐도 '교회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두세 사람 모여 소통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든다. 하나님 주신 재능을 맘껏 발휘해 행복하게 살면서, 하나님 주신 구원의 복을 온전히 누리되 “다른 사람들도 내 이웃도 그렇게 누릴 수 있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ㅣ생각의 시선

코로나 시대, 겸손히 지금 누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한 삶’ 살아가야

서귀포시 남원읍 남조로 593-2번지에 위치한 수망리교회. 낡은 창고였던 공간이 다채로운 삶을 그리며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생명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서귀포시 남원읍 남조로 593-2번지에 위치한 수망리교회. 낡은 창고였던 공간이 다채로운 삶을 그리며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생명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Q. 목회 사역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부분은 어떤 것인가?

처음 개척을 생각했을 때 '개척교회는 어렵고 힘들다'는 고정관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것을 이겨내게 만든 것이 바울 사도의 발자취였다. 성경에 보면 바울 사도는 자신의 생계를 위해 텐트 메이커(천막 짓는 일)를 했다. 그런데 내가 오해한 것이 있었다. 바울은 단지 자신의 생계를 남에게 의탁하거나 교회에 부담 주지 않기 위해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바울은 복음 전도하는 일에 단 하나의 흠도 잡히지 않으려 어쩌면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히 물질로부터 자유로운 전도자가 되고자 그렇게 한 것이었다. 이런 바울의 삶은 제주도에 살면서 카페를 하고, 주일에 목회 사역을 해나가는 나에게 큰 영향과 깨달음을 주었다.

성도는 물론 카페 단골들과 함께 지내며 삶의 무게를 나눠지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황인선 목사.
성도는 물론 카페 단골들과 함께 지내며 삶의 무게를 나눠지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황인선 목사.

Q. 요즘 읽고 계시는 책이 있다면? 그 책을 통해 목사님께서 얻으셨던 마음도 함께 나눠주시면 좋겠다.

조정민 목사님이 쓰신 ‘시작이 답이다’라는 책이다. 책 제목에 너무나 공감해서 집어 든 책이다.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후에야 뭔가 새로워지고 하나님이 전에 없던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창세기 1장 26~28절에 우리를 지으신 이유와 우리가 가진 능력이 어디에서 왔는지, 구원받은 백성이 이 땅에서 회복해야 할 자리가 어딘지 분명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심지어 예수님이 하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25:39)"는 말씀은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하신 말씀이다. 성경의 첫 시작을 다시금 주목하는 데에 이 책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황인선 목사는 주중엔 카페 '수망일기'의 바리스타가 되어 찾아오는 사람들의 말동무가 되어준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도중에도, 택배 배달 온 기사님을 그냥 보내지 않고 어느샌가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어주며 안부를 챙겼다.
황인선 목사는 주중엔 카페 '수망일기'의 바리스타가 되어 찾아오는 사람들의 말동무가 되어준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도중에도, 택배 배달 온 기사님을 그냥 보내지 않고 어느샌가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어주며 안부를 챙겼다.

Q.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투데이N 독자들에게 권면이나 도전의 한마디를 한다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내가 정말 예수님 믿는 사람 맞나 늘 확인하면서 그리스도인의 향기와 삶을 보여주며 살아가길 바란다.

ㅣ세상의 시선

한국교회, 세상 속에서 교회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미를 알려줘야 한다

Q. 코로나 시대 한국교회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존재의 근거가 되는 땅의 삶을 너무 무시해 왔다.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레위기 25장) 세상과 교회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세상 속에서 교회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가르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내도록 도와야 한다.

코로나 확산 전 크리스마스 이브 모임. 가까운 동네 이웃들과 교인들을 초청하여 빙고게임을 하고 있다. @출처=수망리교회
코로나 확산 전 크리스마스 이브 모임. 가까운 동네 이웃들과 교인들을 초청하여 빙고게임을 하고 있다. @출처=수망리교회

Q. 한국교회가 다음 세대들에게 이것만은 관심 갖고 투자해야 할 것이 있다면?

교회는 다음 세대들에게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할 기회를 제공하는데 투자해야 한다. 선교 여행 혹은 단기 선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 사람들의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고 느끼고 생각할 시간을 선물해야 한다.

세상 사람이 만든 기준, 출세와 성공, 나만 잘살면 된다는 현실 지옥으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녀들의 신앙을, 기도와 예배로 하나님을 이용하여 세상 부귀와 명예를 취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키면 절대 안 된다. 하나님 주신 자신만의 재능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면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면서 이 땅에서 행복도 누리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위해 몸도 맘도 커가는 우리 자녀들이 지구 곳곳을 돌아다녀 봐야 한다.

농촌형 민박집 '스테이 수망일기' 건축현장. 황 목사는 이곳 역시 '카페 수망일기'에 이어, 일하는 삶의 영역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또 하나의 '공간'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농촌형 민박집 '스테이 수망일기' 건축현장. 황 목사는 이곳 역시 '카페 수망일기'에 이어, 일하는 삶의 영역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또 하나의 '공간'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Q. 앞으로의 계획과 비전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한 성령님이 자기 안에 있는 사람들로서 서로 돕고 소통하며 격려하고 위로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며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기도하고 있다. 또한 3월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농촌형 민박집 ‘스테이 수망일기’를 통해 일하는 삶의 영역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야기를 전하는 또 하나의 ‘공간’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소소한 일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고 말하는 황인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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