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3월, 전국의 캠퍼스가 개강을 하고 있다. 캠퍼스가 활발해지는 만큼 이단들의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는 지금, 신학기 학생들이 조심해야 할 이단은 무엇일까? 현대종교 이사장 탁지일 교수(부산장신대학교)를 만나 이단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4차례 걸쳐 가지려 한다. 먼저 이번 시간은 '이단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사이비 종교는 사회적 분리, 이단은 교회적 교리적 분리
이단은 잘못된 교리로 사회적, 종교적 역기능을 하는 단체
이단을 비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아는 것

Q. 이단! 이단은 무엇인가? 독자들,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단의 해석과 정의는?

코로나 19를 통해서 '이단'이라는 용어는 굉장히 부정적인 단어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데도 조심스럽다. 우리가 주의 깊게 볼 것은 '이단'이라는 용어는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통일되어서 규정된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가 중요하다. '이단'은 방송 용어는 아니다. 기독교방송에서는 '이단'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지만, 일반 방송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이단'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통'이라는 개념을 설정해야 되는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현대사를 보면 '이단'과 관련된 많은 사건이 있다 보니 일반 언론에서도 '이단'이라는 용어를 쉽게 사용한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특징이다. 장점도 있다. '이단'이라는 용어가 한국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교회가 '이단'을 규정할 때 공신력 있게 규정하면 사회도 그 경각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이단이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것인데, 성경에서 '이단'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 하이레시스(hǽrĕsis)라고 하는 헬라어다. 영어의 헤러시(heresy)도 여기서 나왔다. 그런데 이 하이레시스(hǽrĕsis)라고 하는 용어가 특별히 신약성경에서 주로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이단'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성경에 보면 사두개파, 바리새파 이런 표현이 나오는데 그 '파'라고 사용된 단어가 하이레시스(hǽrĕsis)다.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선택이다. 유대교인이지만 유대교인 중에서 누군가는 사두개파에 속하고 누군가는 바리새파에 속했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이라는 의미가 이 단어에 담겨져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예수님의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가르치는 사람이나 집단이 생겨났다. 또 그 사람이나 집단은 잘못된 가르침을 통해 교회를 분열시켰다. 그러다 보니 이 하이레시스(hǽrĕsis)라고 하는 단어가 가치 중립적이었던 처음의 의미와는 다르게 부정적 의미로 발전을 하게 됐다. 그 의미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사람, 두 번째로는 그것을 통해서 교회를 분열케 하는 사람. 이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게 됐다. 시대는 흘러가고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성경적인 이 규정은 지금도 유효하다. 예를 들어 신천지는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준다. 이만희 교주를 신격화한다. 그리고 교회 안에 들어와서 활동하며 교회를 분열시킨다. 초대교회 나타났던 '이단'이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거짓 형제들이 우리 안에 가만히 들어와서 예수 안에서 자유한 우리들을 그들의 종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한다. 또 디도서에 보면 그런 이들(이단)을 만나면 한 두 번 훈계하고 멀리하라고 한다.

탁지일 교수(부산장신대학교/현대종교)가 CTS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탁지일 교수(부산장신대학교/현대종교)가 CTS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성경적인 '이단'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의 '이단'은 뭘까? 사실 해방 전 1930년대부터 많은 '이단'이 등장을 했는데, 그 당시에는 이단 연구라고 하는 것이 미약했다. 그리고 기독교나 천주교, 불교를 제외한 많은 단체를 일제는 유사종교라고 분류했다. 하지만 유사종교 중에는 항일적인 정신을 가졌던 건전한 신흥종교 운동도 있었다. 그런데 일제는 종교운동 전부를 유사종교라고 분류를 했다. 그러자 해방이 되고 나서는 유사종교라고 하는 일제의 표현이 아니라 신흥종교라고 분류를 했다. 기독교계에서도 그저 순박한 신흥종교 단체들이 있었다. 그게 문제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기독교계 신흥종교 운동 중에서 사회적 역기능을 하는, 가정을 파괴하고 돈을 빼앗고 성적인 착취를 하는 이런 단체들이 나타났다. 자신들을 종교라고 하지만 종교적인 순기능보다는, 종교적인 역기능을 주로 하는 그런 단체들을 종교가 아닌 사이비종교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그 단체 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독교 교리와 성경을 악용해서 착취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사람들 우리가 '이단'이라고 구분할 수 있다. 즉 사이비 종교는 사회적인 분류라고 할 수 있고,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적인 교리적인 분류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천지나 JMS(정명석) 이런 단체는 교리를 악용해서 사회나 가정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런 단체는 이 두 가지 개념을 다 가진 이단 사이비 종교라고 표현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단'이란 용어는 사용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굉장히 주의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단'이라는 표현은 교권을 장악하고 정적을 제거하고 누군가를 모함하기 위해서 쓰인 마녀사냥과 같은 부정적인 예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단'이라는 단어를 조심해서 사용하고 그 사용하는 주체의 정결함, 순수성, 정직함의 기초위에서 '이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복잡할지 모르겠지만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주면서 교회를 분열케 하는 이들을 우리가 이단으로 조심해야 될 것이다. 

기독교의 신앙고백은 '내가 무엇을 믿는다'이다. 우리가 신앙고백을 할 때도 내가 무엇을 믿는지를 고백한다. '당신이 이것이 틀렸습니다'라고 하는 부정적인 접근은 없다. 내가 무엇을 믿는지를 고백하고 내가 누구인지를 고백하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신앙고백이다. 그것이 신앙이다. 그것이 기준이다. 그래서 우리가 우선순위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단을 비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고 그대로 사는 것이다. 정통이라는 기준, 그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잘 알았을 때 이단 분별 이라는 것은 덤으로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이다. 부적절한 예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어떤 명품을 잘 알았을 때 짝퉁이 구분된다. 동일한 예로 한국에서 위조지폐를 전문 감별하는 분의 책을 읽어 봤는데, 그분이 공부하는 것은 위조지폐가 아니라 진짜 화폐를 공부한다고 한다. 그래야 99%가 비슷해도 가려낼 수 있다고 한다. 정통이라고 하는 범주, 그 이해의 폭은 굉장히 넓고 혼란스럽고 어려울 수 있지만,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했을 때 이단 분별은 그것에 이어서 따라오는 은혜의 선물이다. 이단이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관심 갖기 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에 더 관심을 두는 것이 이단을 구분하고 분별하는 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뷰를 진행한 탁지일 교수는 부산장신대학교에서 신학과 교수로 교회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이단 전문 연구기관인 현대종교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한 탁지일 교수는 부산장신대학교에서 신학과 교수로 교회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이단 전문 연구기관인 현대종교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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