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의 길 작정하자마자 사기 당한 아버지.. 하루 아침에 노숙자로 전락
순간 순간의 인생길 순탄치 않아
죽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40일 금식기도
나 자신이 변하면 모든 게 변한다

이단과 관련한 사역으로 바쁜중에도 CTS기독교TV 본사로 내방한 차재용 목사(새로운교회 담임)
이단과 관련한 사역으로 바쁜중에도 CTS기독교TV 본사로 내방한 차재용 목사(새로운교회 담임)

장점이 뭐냐고 묻는 기자의 말에 딱 한가지로 대답한 차재용 목사(새로운교회).
“불의를 못 참는 성격.”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차목사를 이단 사역자로 부르셨나보다.
인생이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고백하는 차목사. 전쟁 드라마 같은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 삶의 시선

Q.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 장르인가?

전쟁 드라마다. 지금도 전쟁 중이다. 첫째는 이단과의 전쟁이고, 둘째는 불법을 행하는 이들과의 전쟁이었다. 이단 피해자들과 불법으로 인해 피해입은 사람들은 여전히 내 주변에 있기 때문에 현재 진행형.

Q. 삶의 굴곡 중에 가장 행복했을 때와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어떤 순간이었는가?

지금 이 순간이다. 가장 행복한 시간이자, 가장 힘든 시간이 늘 공존한다. 목회 인생을 결단한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쉬운 때가 없었다.

Q. 구체적으로 얘기해줄 수 있을까. 먼저 가장 힘든 순간부터.

1996년이었다. 할머님 유언대로 목회자의 길에 순종했는데, 아버지는 내게 사업을 시키고 싶어 하셨다. 나에 대한 아버지의 원망이 대단했다. 신학교 입학한 첫 해(1996년), 첫 학기 때 일이 터졌다.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집안이 공중 분해될 위기에 처했다. 아버지와 동업하던 분이 시청에 제출한 서류까지 위조하면서 약 천억 가량의 거금을 사기 당했다. 당시 기억에 아버지께서 내신 세금만 100억 이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문제는, 사업을 위해 친적들도 보증을 서게 됐는데 그러다보니 친척들조차 관계가 나빠졌고, 그러다보니 그 어디에도 도움을 구할 데가 없었다. 빚쟁이들이 신학교까지 찾아와 협박했고, 때리기까지 했다. 할 수 없이, 한동안 수원역에서 노숙 생활을 해야만 했다.

Q. 하루 아침 만에 일어난 일이라 힘들었겠다.

정말 그랬다(한숨).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이후, 1998년에 박노항 원사 군비리 사건이 터졌다. 1995년까지 아버지가 인천에서 시의원직에 계셨는데, 내 군면제가 된 것이 비리였는지도 같이 조사받게 됐다. 공직자 자녀들 중, 군면제 된 사람들은 다시 재검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께서 사기 사건 이후로, 빚쟁이들이 계속 찾아와 수없이 주소를 옮겨다니다 보니, 재검 고지서를 받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자동으로 군연기가 됐고, 결혼 후 입대해야 하는걸 알게 됐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Q. 결혼 후 입대했나?

그렇다. 결혼 후, 사랑하는 아내와 4살 된 딸을 뒤로하고 입대하게 됐다. 아내와 어린 딸은 아버지와 함께 살게됐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저 뿐 아니라 어린 딸과 아내에게도 잔인하리만큼 가혹하게 대하셨다. 결국, 그런 아버님과 함께 할 수 없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아버지와 분가하게 됐다. 아버지가 참 원망스럽더라(한숨).

Q. 쉽지 않은 삶이었다. 아버지와는 화해했나.

당시, 나는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일을 하면서, 대학원을 다녔다. 그러면서 파트타임으로 분당에 있던 교회에서 사역을 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교회에서 기도하던 가운데 아버지를 사랑하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하면, 강대상에 서서 죽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내게, 모든 걸 무너뜨린 원수와도 같았다. 그런 분을 사랑하라니.. 원수도 사랑하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마음에 부딪히는 순간이었다.

Q. 금식기도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근 10년 간 금식기도를 많이 했다. 40일 금식기도, 30일 금식기도, 21일 금식기도. 아버지와의 관계 문제는 어떻게든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했다. 그리고, 개척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예배당을 마련하고 다 준비됐는데 지방회에서 승인이 나질 않았다. 그러다, 안산에 있던 친한 목사님께서 타 지역으로 사역지를 옮기시면서 나를 청빙해주셨다. 그 지하교회로 임시 담임 목회자로 가면서, 내가 준비한 새 예배당은 유학 준비 중이었던 지인 목사님께 부탁해 잠깐 맡겨뒀었다. 이제 지하교회를 사임하고 내가 준비했던 예배당으로 다시 돌아가려했더니 글쎄 잠깐 맡고 있었던 지인 목사님께서 못 나가겠다고 하시는게 아닌가. 이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자꾸 일어났다. 아버지에 대한 내 마음의 문제도 있고.. 금식기도 밖에 없었다. 내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Q. 금식기도 후, 상황이 변했나?

2013년이었을거다. 금식기도 당시, 항문이 열리더라. ‘아, 이제 금식기도하다가 순교하는구나.’ 싶었다. 그 때, 마음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성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동안 내가 내려놓지 못했던 것들을 써보라고. 종이와 펜을 꺼내 하나 씩 적어보기 시작했는데, 참 많더라. 아내와 아이들, 교회와 성도들, 심지어 내가 쓰던 공구들, 금식이 끝나면 먹고 싶었던 로티보의 가게의 ‘번’이라는 빵 등등. 내 믿음이 참 초라해지더라. 모든 걸 내려놓게 되니 새로운 시작이 보이기 시작했다. 죽기보다 하기 싫었던 일들을 해야함을 깨달았고, 주님께 온전히 순정해야함을 알게 됐다. 내려놓은 속에 하나님을 만났다. 그동안 억지로 마지못해 해온 이단 사역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은혜 받으니 상황이 변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변했다.

Q. 아버지와의 문제가 해결됐는지 궁금하다.

금식 기도하는데 아버지가 이해가 되더라. 아버지는 유독 목회자를 싫어하셨는데 내가 그 길을 가겠다고 하니 얼마나 속상하셨겠는가. 일생동안 돈과 명예를 위해 살아오셨는데 하루아침에 사기를 당하고, 빈털터리가 되셨으니 생각과 마음이 정상이 아니셨을게다. 한참을 눈물흘리며 회개했다. 1년 후,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지셨는데,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우리 가족에게 사과하시더라. 특히 내가 군복무 기간 중, 가혹하게 대하셨던 내 아내와 딸에게 용서를 구하셨다. 성격은 그대로이신데, 우리 가족을 대하는 마음만 180도 바뀌셨다. 친척들과의 관계도 풀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모두 과거를 잊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잘 지내고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시다.

Q. 힘들었던 나에게 사랑의 한 마디를 한다면?

광야를 알아야 은혜를 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Q. 하나님의 첫사랑을 경험한 순간은?

죽으면 죽으리라했던 금식. 바로 그 때.

Q.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과 후의 모습의 변화는?

나는 나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단 피해자들과 같은 남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하나님께서는 먹사(먹기만 하는 목사)에서 목사로 만들어가고 계신다.

차재용 목사가 경기연회 국내선교부문에 수상한 표창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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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연회에서 이단 포교 방지를 위해 앞장서 표창채를 받는 차재용 목사
    경기연회에서 이단 포교 방지를 위해 앞장서 표창채를 받는 차재용 목사
  • | 사역의 시선

    Q. 지금 감당하고 있는 사역을 소개한다면?

    음. 첫째로, 기독교대한감리회 새로운교회 담임목사고, 둘째는 감리교이단피해예방센터 소장, 셋째는 이단 탈퇴자 쉼터인 ‘메누하’를 운영하고 있다. 그냥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밥 사주고, 같이 놀고 있다.(웃음)

    차재용 목사가 목회중 인 새로운교회 전경
    차재용 목사가 목회중 인 새로운교회 전경
  • 이단 탈퇴자 쉼터 '메누하' 내부모습
    이단 탈퇴자 쉼터 '메누하' 내부모습
  • Q.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는?

    첫째로, 안산에서 신천지 만국회의를 법적으로 취소시킨 사건. 둘째로, 일산에서 신천지 건축허가가 저지 된 일. 하나님의 능력이셨다.

    당시 지역신문에도 관련내용이 게제되었다
    당시 지역신문에도 관련내용이 게제되었다
  • 2018년 고양시기독교총연합회에서 받은 감사패
    2018년 고양시기독교총연합회에서 받은 감사패
  • Q. 당신의 달란트를 소개한다면?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 오죽하면 나 같은 사람을 쓰실까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Q. 내 모습의 어떤 부분을 더 성장하고 싶은지?

    더 개발하고 성장해야할 부분은 믿음이다.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믿음. 지금도 가끔 ‘왜요? 하나님’ 한다. 내 고집 내 생각을 좀더 내려놓고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고 싶다. 그래서, 이단 이탈자들을 더 품을 수 있는 더 온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단사역 뿐 아니라 노방전도에도 힘을 쏟는 차재용 목사
    이단사역 뿐 아니라 노방전도에도 힘을 쏟는 차재용 목사
  • 전도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는 차재용 목사
    전도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는 차재용 목사
  • | 생각의 시선

    Q. 잠들기 전,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아무 생각 안한다(웃음). 하루 종일 이단 탈퇴자와 상담하다보면 보통 지쳐서 잔다.

    관계기관의 협조를 위해 설명하고 있다.
    관계기관의 협조를 위해 설명하고 있다.
  • 도움이 필요하며 지역을 마다 않는다
    도움이 필요하며 지역을 마다 않는다
  • 이단반대 가두시위 전 중보기도를 하고 있다
    이단반대 가두시위 전 중보기도를 하고 있다
  • Q. 어떠한 일을 결정하거나 선택할 때 가장 기준으로 삼는 것은?

    내가 기뻐하는 일일까? 아니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

    Q. 나에 대해 책을 쓴다면 머릿말에 남길말은?

    지식은 생명이 아니다. 앎 일뿐이다. 진리의 말씀은 내 안에 생명의 말씀이 된다.

    | 세상의 시선

    Q. 당신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하나님을 믿고 산다고 착각하는 세상인 듯 하다. 교회도, 성도도, 목회자도 두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 같다. 스스로들 속고 있다. 우리가 받은 진짜 은혜를 잊고 살아간다. 마음이 아프다.

    Q. 변화했으면 하는 세상의 방향은?

    요나의 바른 외침에 니느웨가 회개하듯, 사회가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을 세워가는 세상.

    인터뷰 시작전엔 가볍게 굳어있던 그가 끝나갈 무렵 한껏 밝아졌다
    인터뷰 시작전엔 가볍게 굳어있던 그가 끝나갈 무렵 한껏 밝아졌다

    Q. 세상의 눈으로 보았을때 나의 모습은?

    꼴통, 꼰대.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목사

    Q. 한가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꿀 것인가?

    주권이 온전히 하나님께 주어지고, 사람들이 그것을 고백하는 세상. 그래서,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세상.

    Q. 독자에게 권면과 도전의 한마디?

    목회를 시작하면서 금기어가 생겼다. ‘군인교회’, ‘지하교회’, ‘수원’, 그리고 ‘화성’. 그런데 신기한 건 뭔지 아나? 내 처음 사역지는 ‘군인교회’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걸어가다보니 지저분한 ‘지하교회’에도 있게 됐다. 세 번째 나의 사역지는 ‘수원’이었고, 그 곳에서 신천지 추수꾼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고, 사기도 당하고, 사역의 모든 걸 잃어버리게 됐다. 그 모든 것이 회복될 즈음에 ‘화성’으로 오게 되었고. 인생길을 뒤돌아보면 단 한번도 수월한 때가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없었더라면 나는 성도들의 인생의 아픔을 공감해주지 못했을 것이다. 내 뜻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다해서 걱정하지 마시라. 예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시기에 다 의미가 있는 발자국이 남더라. 하나님 손만 꼭 붙잡으시길 바란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차재용 목사는(새로운교회 담임) 장시간의 인터뷰와 함께 순수복음의 최전선인 CTS기독교TV 곳곳을 돌아보며 중보기도하겠다고 기자에게 얘기했다
    차재용 목사는(새로운교회 담임) 장시간의 인터뷰와 함께 순수복음의 최전선인 CTS기독교TV 곳곳을 돌아보며 중보기도하겠다고 기자에게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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