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그 시절을 회상해 보려 한다. 아이는 일곱 살이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또렷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 날의 상처가 너무 깊었기 때문이리라. 장남에다 어느 모로 보나 아이보다 잘난 형님 덕분에 어 머님과 가족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아이는 사랑에 굶주리며 헐떡였 다. 혼자 걸레를 빨고 흙에 뒹굴면서 놀았지만 주리고 목마른 사랑의 갈구는 어린 아이에게 더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아이는 사랑이 그리웠다. 많은 가족들 틈에 살았지만 사람이 그리 웠다. 가족이란 사람들의 사랑도 사랑이지만 특히 어머님의 사랑이 그리운 아이였다. 아이는 따뜻한 가족들의 눈길을 받고 싶은데, 가족 들은 이미 형님에게 사랑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형님의 일거수일투 족이 온 가족들의 낙이자 자랑이었고, 아이는 언제나 그 뒤에 밀려나 있으면서 주연인 형님을 부러워했다. 자연히 아이에게 욕구불만이 쌓 여가기 시작했다.

누구나 다 받아 누릴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자 엉뚱한 곳으 로 표출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 는 일이다. 어떻게 어린 것이 불만의 표출을 그런 식으로 했는지.

처음에는 부지깽이를 잡았던 것 같다. 부엌에서 불을 땔 때 사용하 던 그것으로 부뚜막이나 기둥들, 헛간이나 담장, 문이나 마루를 힘껏 내리치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까닭없이 부지깽이를 휘두르는 아이를 이상하게 바라보며 웃어넘기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가족들이 잠시 관심을 보여주는 것에 힘이 실렸는지는 모른다.

다음에는 부엌칼을 들고 소리를 지르며 무언가를 내리치고 자르기 시작했다. 좀 심하다 생각했는지 가족들이 말렸고, 칼을 강제로 빼앗 으며 위험하다 나무라기 시작했다. 어린아이가 칼을 들고 노니 당연 히 그리 생각했을 터, 아이는 그때부터 반항을 시작했다. 칼을 빼앗는 대상이 누구든지 고집을 부리며 앙탈이었다. 가족들은 그런 아이를 보면서 너무 놀라고 있었다. 그 어린 것이, 아무 소리 없이 혼자잘놀 던 착해 보였던 막내가, 그렇게 돌변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테니까.

칼을 빼앗긴 아이는 이제 낫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점점 이상하게 난폭해지기 시작하는 아이, 너무나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 으니, 우리 나이 일곱의 그 어린 것이 어떻게 욕구의 표현을 칼이나 낫으로 할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의 기 억에 똑똑히 새겨져 있다. 그 시절의 아이의 포악함(?)이…….

오죽하면 성자 같으신 아버님한테도 낫을 들고 달려들었다가 혼이 난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얼마나 난폭하게 굴었으면 어머님이 작심 하고 매타작을 작정하셨을까?

어머님의 사랑이 그리웠던 아이는 절절한 소원을 표현할 길이 없어 점점 예리하고 모나게 변해 가고 있었다. 당시 어머님 보기에는 분명 이유 없는 반항이었겠고, 그대로 두면안될 만큼 아이는 그렇게 망가 지고 있었다.

조금 그러다 말겠지, 대수롭지 않게 대하던 가족들 모두가 좀은 심 각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드디어 어머님이 심판의 칼을 뽑으셨다.

당시는 어른들 앞에서 자녀를 함부로 징계하지 못하던 시절인지라, 어머님은 이제나 저제나 기회를 엿보고 계셨다. 드디어 할머님이 좀 멀리 가시고 아버님도 출타하신 틈을 타서 녀석의 길들이기 작전에 돌입하셨는데.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날도 아무 것도 아닌 일에 트집을 잡 고, 강짜를 부리며 낫을 들고 설쳤던 것 같다. 어머님은 이 때다 싶어 작업에 들어가셨고, 아이와 기 싸움을 시작하셨다. 처음엔 엄포를 놓 으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미 도를 넘어 버린 아이는 엄포 따위는 염 두에 없었다. 아직 한 번도 매를 맞아보지 않은 아이의 어리석은 치기 였으리라.

말이 통하지 않자 어머님의 매질이 시작되었다. 매가 아픈 것은 기 억이 없다. 다만 어머님의 눈빛만이 선하다. 처음엔 사정하는 눈빛이 었는지 모르겠고, 두어 차례 매를 내리친 후의 눈빛은 이제까지 보던 눈빛이 아니었다. 오싹하리만큼 냉기와 살기가 함께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 눈빛이 오금이 절게 했지만 아이도 그대로 주저앉을 수만 은 없었다.

어쩌면 어린 것이니 회초리 몇 번에 손을 들 것이라 생각 하셨을지 모른다. 그런데 계산 착오였다. 제 나름대로 온갖 포악을 부렸던 아이 는 분명 일곱 살의 어린이가 아니었다. 혹독한 매질 앞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어머님께 욕을 하면서 앙칼스럽게 달려들었다. 딴엔 어 머님에 대한 섭섭함이 짙게 깔려 있는 반항이었지만 어머님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이 편에서는 정말 억울한 채찍임이 분명한데, 어머님 편에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앞에서 언급했거니와 아이가 얼마나 악을 쓰면서‘사람 살리라!’ 소리를 질렀으면 마을 분들이 달려 왔을까? 아무리 마을 어른들이 잠 겨진 문 밖에서 만류했지만 어머님은 끝장을 보시고야 말았으니, 아 이가 기절하고 쓰러질 때까지 채찍은 멈추지 않고 쏟아지고 있었다.

장남에 목숨을 거셨던 어머님, 빼앗긴 사랑에 목숨을 걸었던 아이, 둘의 기 싸움은 그렇게 어머님의 일방적인 압승으로 막을 내렸는 데…….

아이의 가족 중에 아무도 그 날, 그 사건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런데 아무도 그 사건이 아이에게 안겨 준 치유불가능의 상처를 기억 하는 사람 또한 없었다. 오직 상처의 아픔으로 길고 긴 세월을 죽음보 다 더 깊은 절망과 고독의 골짜기를 헤맸던 그 가련한 일곱 살의 아이 외에는…….

그 아이가 자라 서른일곱(?)의 나이가 되기까지 아이의 내적 세계 무의식 속에는 일곱 살의 그때 그 어린 아이가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 다. 그날 매를 맞고 기가 사장된 채 쓰러진 아이가, 어머님께 무언으 로 사랑을 호소하며 애걸하던 아이가, 그 모습 그대로 마음 곳간 저 구석에 가까스로 호흡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 하고 그렇게 망가진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으니…….

아마 내 안에서 솟아난‘사랑의 시냇물소리’가 없었더라면 그 아이 는 일곱 살의 상처에 매어 그렇게 처절히 죽어갔을 것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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