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대 정보병과에서 잘나가는 엘리트 장교에서 바른군인권연구소 대표로
김영길 목사 "하나님을 떠난 인권은 가짜, 예배의 자유를 지켜야"
70개 이상의 지자체 인권조례 막아내고, '예배 회복을 위한 자유시민연대' 사무총장 활동

잘나가던 특수부대 엘리트 장교가 성경적 인권운동가로 한국교회를 지키는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바른군인권연구소 대표이자 예자연 사무총장으로 사역하는 한국교회의 보배같은 존재 김영길 목사를 만나본다.

바른군인권연구소 대표 김영길 목사
바른군인권연구소 대표 김영길 목사

ㅣ삶의 시선

Q. 하나님을 어떻게 만났나?

나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다. 나의 아버지는 경남 거제와 통영 지역에서 교회를 3차례 개척하신 목사님이셨다. 어릴 때부터 개척교회를 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살다 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워 부자 밥 먹듯이 굶어야 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집에 전기가 들어올 정도였다. 어릴 때 아버지는 '너는 나중에 커서 꼭 목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도 부모님을 따라 자동적으로 신앙생활했다.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서 목회자 가정의 어려움과 교회들이 겪는 불협화음을 보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께서 전도하러 나가셨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28개의 뼈가 부러지고 생명이 위독했다. 그 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듯이 아주 큰 피해를 겪었다. 나는 “세상의 법이 억울한 사람을 만들 수 있구나, 세상의 법을 공부해서 억울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걸어야 겠다”라고 생각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어서 입시를 앞두고 있었는데, “왜 하나님은 주님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는 목회자의 가정에 고난과 핍박을 주시고 어려움을 겪게하시냐”면서,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따지고 욕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분노로 목회자의 길을 회피했다. 그리고 부산대학교 법대로 진학했다. 학비가 없어서 고시공부를 하기도 어려웠다. 세상에 대한 억울함과 목사의 길을 피하기 위해 나는 군대 장교로 지원했다. 목사는 되기 싫었지만 황금어장 같은 군대에서 병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군대에 남기로 했다. 총각 집사가 되고 안수집사가 될 정도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삐뚤어지고 왜곡된 시각들이 여전히 있었다.

Q. 잘나가던 군대에서 나오기로 결심한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고?

나는 군대에서 엘리트 장교였다. 특수부대 정보병과로 근무하면서 국가에서 공부도 시켜주고 나도 열심히 해서 국방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대장으로 근무할 당시 부대에서 병사 한 명이 자살을 하는 일이 있어났다. 신앙생활도 잘하고 열심히 군 생활을 하던 병사였는데 사망 소식은 나에게 너무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당시에도 군에 동성애 문제가 있었는데 대대장 할 때 병사 중에 트랜스젠더 하겠다는 병사도 있었고 아침에 순찰 하다 보면 콘돔이 발견되기도 했다. 예편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일은 2006년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군에 동성애가 정상이라는 교육을 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나는 중부전선에서 대대장 할 때 2천만 원 들여서 최전방에 교회를 건축하기도 하고, 주일날 부대에 상황병 한 명 빼고 모두 교회로 인도하기도 했다. 중대장 시절에도 병사들에게 맛있는 것 사주면서 교회를 섬기면서 열심히 했는데... 군대가 나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바른군인권연구소’ 개소식(2016년 1월 6일)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앞줄 오른쪽 세 번째가 김영길 목사)
‘바른군인권연구소’ 개소식(2016년 1월 6일)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앞줄 오른쪽 세 번째가 김영길 목사)

Q. 당신의 삶에 개입하셨던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가?

열심히 신앙생활도 하고 군 예편 후 신학교에 들어가서 6년간을 공부했지만 변하지 않는 내 모습에 목사 안수를 받아야 되나 고민했다. 춘천 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님을 만나서 40일 철야도 하고 금식도 해봤지만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다. 포기하려던 어느 날 새벽기도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나에게 찾아오셨다.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였고 내가 너와 함께 있고 지금도 살아있다'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날 10시간 동안 울며 뒹굴었다. 성경을 읽는데 성경이 쭉 읽어졌다. 성경이 통째로 보이면서 3일 만에 1독을 했다.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하고 새로운 출발을 했다.

아버지께서 74세로 소천하시기 2주 전에 나에게 ‘너는 나중에 꼭 목사가 되어서 말씀 준비와 언제든 떠날 준비, 언제든 죽을 준비. 이 3가지를 지키면서 살아라.’고 부탁하신 말씀이 기억났다. 그동안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듯했지만 내가 얼마나 교회를 비뚤어진 시각으로 보고 비난했었는지 깨닫게 됐다. 목사 안수를 받고 군대에서 배운 영어와 인도어를 활용해 선교사로 갈지 목회의 길을 갈지 고민했다. 2016년 춘천 한마음교회에 협동목사로 있었을 때 동성애 문제를 알리는 일을 했는데 전 법무부 장관 김승규 장로님을 만나게 됐다. 나 같은 사람을 찾고 계셨다. 법도 전공하고 군에 대한 고급 정보도 알고 의욕도 있는 사람을 찾고 계셨다고 하셨다. 특별한 만남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 번째 인생의 전환 포인트는 송촌장로교회 박경배 목사님을 만난 일이다. 특수사역을 하려고 하니 영향력 있는 교회에서 서포트가 필요했는데 목사님께서 먼저 요청하셨다. 처음엔 교회에 묶일 것이 우려돼서 거절했는데 주일만 교회에 오고 사역을 돕겠다고 몇 차례나 말씀하셔서 함께하게 됐다. 그때부터 바른군인권연구소를 마음 놓고 시작하게 됐다.

ㅣ사역의 시선

2016년 군형법 92조 6항을 지켜내기 위해 김영길 목사는 6개월 동안 매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2016년 군형법 92조 6항을 지켜내기 위해 김영길 목사는 6개월 동안 매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Q. 바른군인권연구소 대표로 사역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일은?

첫 번째는 2010년에 군형법 92조 6항을 지켜내기 위해 했던 일이 가장 기억난다. (주-군형법 92조 6항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2010년도에  헌법소원으로 이 조항을 폐기시키려는 4번째 시도가 있었다. 그때 헌법재판소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했다. 거의 1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대전에서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올라갔다. 6개월 동안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혼자 서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감사하게도 판결 이틀 전에 결과가 바뀌는 일이 일어났다. 만약에 그때 헌법소원이 통과됐다면 우리나라는 동성애 합법 국가가 되었을 것이고, 지금 군대 안에서 마음 놓고 동성애가 일어날 것이다.

2019년 경남학생인권조례 재정을 막기 위해 강의를 하는 김영길 목사
2019년 경남학생인권조례 재정을 막기 위해 강의를 하는 김영길 목사

Q. 사역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가장 보람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인권조례를 막은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226개의 기초 자치단체가 있고 광역시가 17개 있는데 지자체마다 인권조례가 계속 들어오게 됐다. 이걸 막기 위해 전 법무부 장관 김승규 장로님과 전국에 안 가본 데가 없이 다 가본 것 같다. 그래서 인권조례를 막은 곳이 70여 곳이 된다. 대전에서 가까운 세종시도 그렇고 충남 인권조례 폐지한 것도 목사님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설명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700번 이상 강의를 했다. 그래서 충남에서 전국 최초로 인권조례라는 것을 폐지하게 됐다. 지금도 인권조례가 나오면 전국으로 쫓아다닌다. 지금까지 막은 곳이 70여 군데 되는데 그 일이 가장 보람된다.

Q. 올바른 인권을 알리기 위해 박사과정 공부를 했다고?

두 번째는 우리 사회에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애를 막는 일. 동성애가 나쁜 것은 누구나 다 알고 동성애와 동성애자의 구분도 사람들이 할 줄 안다. 그런데 인권이라는 말로 교모하게 “인권이고 그 사람이 존재하는데 기독교 너희들이 왜 혐오하느냐”라고 할 때 우리 기독교 안에서도 이게 헷갈리고 사회에서는 더더욱 더 헷갈리는 게 사실이다. 인권의 문제로 갔을 때 과연 이것을 어떻게 풀 것인가. 그래서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서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기 위해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권에 관련된 책은 어마어마한데 체계적으로 연구한 400여권의 책과 논문이 있다. 그런데 거의 동성애를 옹호하는 논문이었다. 열심히 연구한 끝에 작년 말에 ‘인권의 담론과정에 나타난 자기파기적 현상 연구’라는 논문을 내고 졸업했다.

인권의 유형을 본질과 특성에 따라서 4가지로 분류를 최초로 정리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천부적 인권’과 일반 사람들의 ‘보편적 인권’, 특정 집단을 중심으로 한 ‘상대적 인권’, 스스로 결정하는 ‘자의적 인권’이다. 자의적 인권은 예를 들면 성적 자기결정권 그리고 성별 자기결정권이 있는데 내가 내 성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

4가지로 나누니까 세상의 모든 인권의 유형을 다 구별할 수 있게 됐다. 논문의 내용이 방대하고 학술적인 표현이라서 일반인이 보기엔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정리된 책이 이번 달에 나올 예정이다.

Q. 최근 변희수 하사의 자살에 어떤 이유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는가?

정신적 충격과 심리적 충격이 컷을 것이다. 트랜스젠더는 동성애 문제와는 다르다. 동성애는 쾌락의 문제이고, 젠더는 정신적 충격과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다.

내 몸은 분명히 남자로서 남자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데 몸에서 갈등과 정신적 충격, 스트레스가 계속 일어난다. 스트레스는 일반인에 비해 몇 십 배 있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 혼자 두면 안 된다. 정체성의 혼란이 있는 사람들은 항상 두 사람 이상이 같이 있어야 된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고 계속 사회에서 인정받으려고 하고 그 갈등의 스트레스가 있기 때문에 자기들이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다.

군 복무 시절 행사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영길 목사)
군 복무 시절 행사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영길 목사)

Q. 정부의 대면 예배 제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배드릴 수 있는 자유를 주셨는데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정부가 침해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막아야 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막는 문제를 가지고 국가 권력이 교회를 통제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대면예배냐 비대면예배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가 우리의 자유를 박탈하려고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대면 예배를 드릴 수도 있고 비대면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그것은 교회에서 알아서 할 문제인데 국가 공권력이 들어와서 교회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다. 작년에 평화나무 라고 하는 단체에서 주요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를 감시해서 전국에서 33명의 목사님이 고발당했다. 몇몇 목사님들이 모여서 이야기 나누는 중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예배 회복을 위한 자유연대’(이하 예자연)이다. 나도 고발을 당했고 이런 부분에 대한 내용도 잘 아는 터라 목사님들께서 요청하셔서 작년부터 사무총장직을 맡아서 활동하고 있다. 

Q. 진정한 인권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하나님을 뺀 인권은 모두 다 가짜이다. 하나님이 없는 인권은 내가 주인이 되는 인권이 되어버린다. 진정한 인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인데, 단순히 사람을 존중하는 것을 잘못 해석하면 인권이 자기 결정권을 가지는 것, 사람의 권리를 자기가 결정하게 하는 것으로 오해하게 된다. 그 차이가 핵심이다.

Q. 당신의 달란트를 PR 한다면? 

나는 열정이 많다. 무엇이든지 마음에 딱 꽂히면 풀릴 때까지 한다. 문제가 생기면 성경말씀 붙잡고 해결될 때까지 기도한다. 운동을 하면 밥도 안 먹고 할 정도로 빠져들어서 한다.

그리고 프레젠테이션 자료 만드는 것을 아주 잘한다. 군에서 정보 분야에서 엘리트 장교로 근무하면서 보고서를 아주 빨리 잘 만들었다. 당시에 대통령 보고 문서까지 내가 직접 만들어서 보고했다. 어떤 내용을 분석해내는 것에 대해서는 머리를 주신 것 같다. 보고서 작성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달인이 되었다. 지난 1월 예자연에서 헌법소원 3번과 행정소송 5번 했는데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하면 밥 먹는 것도 잊고 성명서와 보고자료 만들고 전송하는 일을 밤을 새워서 진행했다. 나에 주어지기만 하면, 내가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 그냥 다른 것 생각하지 않고 집중한다

김영길 목사의 가족사진
김영길 목사의 가족사진

Q. 가정에서 나의 모습은?

장교로 근무하다 보니 이사를 18번 다녔다. 세 딸에게 너무 미안하다. 지금은 아이들이 모두 잘 컸지만 이사를 자주 다니다 보니까 큰 딸은 고등학교 때 적응을 못해서 자퇴했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지휘관이다 보니 권위적이기도 하고 술도 먹고 그래서 아빠의 이중적 모습에 아이들이 느끼는 괴리 현상도 조금 있었다. 언젠가 막내 앞에서 내가 무릎까지 꿇고 “아빠가 잘못했다”고 울면서 사과한 일이 있다. 지금은 아빠가 최고라고 너무 자랑스럽다고 한다.

Q. 지금까지 온 것은 아내의 도움이 컸다고?

이전에는 내가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군인이었지만 아내는 내가 지금 하는 일을 더 좋아한다.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다. 장교 시절 나는 결혼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아버지와 장인어른이 결혼하라고 하셔서 어릴 적 6살 때 보고 25년 동안 만난 적이 없던 사람을 6시간 동안 보고 결혼식장에 들어갔다. 처음엔 아내도 아버지가 해경대장 출신이셔서 군인의 상황을 잘 예상하는 터라 나와 결혼하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 그런데 기도하고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신혼여행을 갔는데 어색했다. 처음엔 손목도 안 잡고 그럴 정도로...

지금은 아내가 나에겐 가장 큰 기도의 후원자이다. 매일 하루 2시간 이상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항상 우리 남편 진짜 최고라고 하고 정말 지금은 너무 헌신적이다

ㅣ생각의 시선

Q. 요즘 많이 생각하는 주제는?

요즘은 예배 문제에 대한 생각이 제일 크다. 나는 정부가 복지와 인권을 구별 못하는 것 같다. 복지는 가난한 사람 도와주는 것이고 인권의 문제는 다른 것이다. 복지의 핑계를 대고 인권이라는 잘못된 걸 가지고 와서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상황이다. 국가의 권력이라는 것은 가지면 가질수록 그 사람들은 자꾸 독재로 갈 수밖에 없는데 예배의 문제를 교회도 잘 막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잠시 예배를 등한시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부가 통제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는 건 맞는데 ‘정부가 간섭하지 마라 이것은 우리의 자율적 문제다.’ 그래야 되는 것이다. 그게 지금 가장 큰 이슈이다. 이 자유의 문제를 빼앗겨 가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대표적인 것이 예배의 간섭이다. 이 사실을 모두가 꼭 알았으면 좋겠다.

2017년 제1회 기독교 동성애 대책 아카데미를 마치고 기념사진(좌로부터 김영길 목사, 영국 안드레아 윌리엄스 변호사, 지영준 변호사)
2017년 제1회 기독교 동성애 대책 아카데미를 마치고 기념사진(좌로부터 김영길 목사, 영국 안드레아 윌리엄스 변호사, 지영준 변호사)

Q.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에 가장 영향을 끼친 존재는?

나의 가치관에 영향을 많이 주신 분은 아버지이다. 어릴 때 나는 아버지를 아주 원망했다. 무식하게 설교를 하셨다고 생각했다. 하나님 말씀대로만 살려고 하셨다. 그리고 목회자가 되기 전 젊으실 때 일해서 돈으로 못 받고 땅으로 받았던 것이 오랜 후에 값이 올라서 그 돈을 모두 교회를 지으시는 데 쓰셨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돈이 없어서 부자 밥 먹듯이 그렇게 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3가지가 있었다. “영길아 너는 꼭 목사가 돼라. 그리고 늘 말씀을 준비하고 이 땅을 떠나 죽을 준비를 해라” 그것이 나의 인생에 좌우명이 되었다. 또 아내를 만난 것이 아버지께서 나에게 남겨주신 가장 큰 유산 중 하나다.

사회생활하면서는 춘천 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님, 전 법무부 장관 김승규 장로님, 송촌장로교회 박경배 목사님 이 세 분이 저에게 가장 큰 동역자입니다

2021년 예자연에서 헌법소원 접수 및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습(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영길 목사)
2021년 예자연에서 헌법소원 접수 및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습(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영길 목사)

ㅣ생각의 시선

Q. 당신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세상을 세 글자로 말한다면 ‘어두움’이라고 생각한다. 요한복음에 예수님은 빛으로 오시는 분이라고 했는데 왜 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이라고 표현했을까, 왜 이 세상은 어둠일까 생각해 볼 때, 요한복음 1장에 이 세상에 어두움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빛으로 오셨다고 되어있다. 이 세상이 어두움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두움 속에서 빛으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축복에 대해서 너무 연연하는 것 같다. 물질적인 축복을 연연하는 것은 마귀가 들어오는 쪽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급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어두움에 대한 존재를 분명히 알아야 되고, 세상에서 그 어두움을 이기려고 하면 축복을 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상급을 소망하면서 살아야 한다. 나는 그렇게 정의를 하고 나의 삶에 적용을 하고 있다.

Q. 변화했으면 하는 세상의 방향은? OR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이 주신다면?

이 세상은 어둠이고 장차 망할 성이라는 뜻으로 장망성 이라고 한다. 목회자들과 다음 세대들을 가르칠 수 있는 신학생들이 세상의 인본주의 모습과 복음에 대한 의미, 우리가 세상에 있는 의미를 정확히 구별을 해서 잘 가르칠 수 있길 바라고 크리스천들이 지혜의 영과 지식의 영을 통해서 이 세상을 구별해내고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만약에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하면 나는 거기에 조금이나마 기여했으면 좋겠다. 

김영길 목사가 지난 3월 5일 코로나 감염 원인 정보 공개 청구를 국무총리실에 제출하고 기념사진을 찍고있다.
김영길 목사가 지난 3월 5일 코로나 감염 원인 정보 공개 청구를 국무총리실에 제출하고 기념사진을 찍고있다.

Q. 독자에게 권면과 도전의 한마디?

마지막 시대에 우리에게 분별이 정말 중요하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고 인식한 것만큼 본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자기가 아는 것으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길 바란다. 그것은 편협한 생각이다. 우리 스스로는 절대 판단하지 말고 오직 기준은 하나님뿐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나의 도구이고 쓰임 받을 뿐이다. 나 같은 사람도 이 일에 쓰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늘 놀라운 뿐이다. 부족한 나를 쓰시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그것은 내가 잘나서가 절대 아니다. 우리는 절대 사람들을 판단하지 말고 정죄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것이 있으면 감사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

김영길 목사 약력

학력
부산대학교 법정대 졸업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중퇴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학과
국방대학원 국제관계(석사)
침례신학대학원(석사)
백석대학원(박사)

경력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한국 기독교 인권본부 전문위원
동성혼 반대 국민연합(동반연) 실행위원
진평연(포차법 반대 국민연합) 집행위원
복음 법률지원센터 운영위원
바른군인권연구소 대표
예배회복 자유시민연대 사무총장
송촌장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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