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S뉴스 박세현 기자

1866년, 흥선대원군의 섭정 때 정권의 대규모 기독교 탄압으로 6000여명의 선교사가 목숨을 잃었던 병인박해.

수원 행궁의 맞은 편. 병인박해 당시 19명이 순교한 순교의 터 위에 수원종로교회가 서 있다.

1894년 한문성경을 읽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이하영 목사가 수원 성내에서 시작한 예배모임. 이후 1901년 이명숙 전도사가 얻은 초가집 13칸은 수원종로교회의 첫 예배당이 된다. 한강 이남 지역 선교의 전초기지로 주목받은 수원종로교회는 빠른 부흥을 이루며 1907년 현재의 터로 이전, 예배당을 신축하고 사역을 이어나간다.

교회는 일제 치하에서 수원 독립운동의 전방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3.1운동을 주도하다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이하영 목사. 신민회 경기도 책임자로 독립운동과 독립군 양성을 하다 토벌대에 체포돼 고문으로 전신마비가 된 임면수 권사, 3.1운동 때 기호지방 책임자로 민족대표 48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김세환 권사, 수원종로교회 교회학교 교사로 독립운동 중 동료교사 2명과 함께 체포돼 고문으로 석방 후 순국한 경기도의 유관순 이선경 열사까지.

수원종로교회 126년의 역사책을 집필한 리주배 장로는 숱한 고난 가운데에도 성령님의 보호하심과 성도들의 굳은 믿음이 교회를 지켰다고 증언한다.

리주배 장로 / 수원종로교회 교회사위원회 위원장

군수물자가 부족했던 일본은 교회종탑을 헐고 떼어 갑니다 교회를 일본 순사들의 마굿간으로 활용했습니다 교인들은 예배를 드릴 수가 없어서 목사의 인도 하에 팔달산에 이동해서 골짜기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삼일학원의 전신인 남자매일학교와 매향학원의 전신인 여자매일학교를 운영, 수원지역 근대 교육의 주춧돌을 놓기도 했던 교회. 교회는 일찍부터 개교회만의 성장이 아닌 복음의 전진을 꿈꿨다. 오목천교회, 북수원교회, 영화교회, 태장교회, 수원제일교회까지 오늘날 큰 부흥을 이룬 지역 교회들은 수원종로교회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됐다.

2021년. 수원종로교회는 전교인 대상 온라인 성경 통독과,SNS전도대 구축을 통한 전도 활동을 진행 중이다.

25대 목사로 시무하고 있는 강성률 목사는 변하는 세상 가운데 변하지 않는 복음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는 각오이다.

강성률 제 25대 목사 / 수원종로교회

가장 중요한 일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복음의 본질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는데 그 본질을 전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그 시대에 맞게 목회해 나가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사역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문화를 통한 다음세대와의 소통은 교회의 큰 소망이다. 문화공연장, 박물관 등이 포함된 비전관 건립은 다음세대와의 접합점을 마련하고자 하는 교회의 의지를 담았다.

강성률 제 25대 목사 / 수원종로교회

과거의 아날로그 방식과 새로운 디지털 방식을 함께 포함하면서 포용하고 함께 고민하는 전 세대가 다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측면에서 비전을 가지고 세상과의 접촉점을 마련해 나가는 그런 목회사역을 하고 싶습니다

순교의 터에 복음의 열매를 맺고자 시작된 수원종로교회 세상을 살리는 복음의 종소리가 또 다른 120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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