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연동서부교회 이상성 목사(lee-sangsung@hanmail.net)의 작품
제주연동서부교회 이상성 목사(lee-sangsung@hanmail.net)의 작품

유월절을 앞두고 주님이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는 결정적인 날로 우리나라의 광복절과 같은 날이다. 이 명절이 되면 예루살렘 주민 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온 사람으로 예루살렘 성은 엄청난 인파로 북적거렸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자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환영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종려나무 가지는 초막절에 사용되는 식물이었다(레 23:40). 그런데 이 가지는 초막절에 사용되는 식물일 뿐만 아니라 승리를 상징하는 식물이었다(마카비 상 13:51). 그랬기에 그들이 주님을 향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는 것은 승리자로 주님을 환영한다는 의미였다.

더구나 그들의 외친 말이 무엇인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호산나’는 히브리어 혹은 아람어로 ‘구원하소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시 118:25).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것이다. 지금 그들이 처한 형편이 로마의 압제 속에서 희망이 없는 절망적 상태이고, 그래서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 노골적으로 말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오병이어의 사건을 경험한 후 주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 삼으려 했던 그들이다(요 6:15).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을 보고 환영하는 그들이었다(요 12:18). 그랬기에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자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외쳤던 것이다. 우리를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달라는 외침이었다.

이렇게 그들이 기대한 왕은 승리자, 정복자로서의 왕이었다. 그들은 고대 시대 전쟁에서 승리한 왕이 성으로 돌아올 때처럼 흰 말과 화려한 마차를 탄 채, 포로들을 굴비 엮듯이 끌고 당당하게 입성하는 왕을 기대했다. 이런 왕을 기대하며 사람들은 환호했다. 주님이 그런 왕으로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여 외쳤던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그들의 기대와 다르게 한 어린 나귀를 타셨다(요 12:14). 흰 말이 아닌 나귀, 그것도 어린 나귀를 타신 것이다. 왕과 어린 나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주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를 구약의 선지자인 스가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슥 9:9)

스가랴의 예언처럼 주님이 겸손한 왕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세상을 칼과 창으로 지배하는 왕이 아닌, 겸손함으로 지배하는 세상의 왕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또한 이 왕은 전쟁을 그치게 하며 평화를 주신다(슥 9:10).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가 약속하는 칼에 의한 거짓 평화가 아닌 낮아짐과 최종적으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한 진정한 평화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보여주신 것이다.

분명 주님은 왕이다.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종된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오신 왕이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사망을 이기신 왕 중의 왕이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정확하게 외쳐야 한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소서!” 하나님의 자녀는 이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을 찬양하고, 알아가는데 더욱 힘을 써야 한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세상을 무력으로 지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왕이 아님을 말이다. 힘으로, 돈으로, 숫자로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섬김의 나라이다. 흰 말이 아닌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 주님처럼 겸손하고 섬기는 사람들로 가득찬 나라이다.

오늘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1000만 명(?)이라는 숫자를 자랑하고, 크고 화려한 교회당과 건물을 자랑하고,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자랑하고, 그래서 세상을 향해 소리 지르고 힘으로 싸워 이기려는 나라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것은 주님이 철저히 거부한 나라이다(요 18:36 참고).

‘생명의 도’라 불리는 기독교는 그리고 교회는 오히려 나귀 새끼 타고 입성하신 주님처럼 낮아지고, 겸손함으로 사람을 섬기고, 세상을 섬기고, 결국은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얻게 되는 나라이다. 성도는 이런 나라를 꿈꿔야 한다. 또한 꿈꿔야 한다. 진정한 평화와 왕으로 오신 주님처럼 이 갈등이 가득한 땅에 주님의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말이다. 칼에 의한 팍스 로마나(Pax Romana)가 아닌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룬 진짜 평화인 팍스 크리스티(Pax Christi, 그리스도의 평화)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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