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신병 앓아 무당이 될까 고민
예수 믿으라는 무당의 점괘 듣고 처음 찾은 교회
초등교육도 못받아 까막눈으로 살아온 인생
이제는 목회자로 부름받아 성경필사로 난관 극복
가는 곳마다 놀라운 부흥의 역사 이어져

세계비전선교교회 정영숙 목사
세계비전선교교회 정영숙 목사

어릴 때부터 신병을 앓아 찾아간 무당에게 들은 말. “예수를 믿으라” 그렇게 시작된 은혜의 여정 속에 예수님을 만난 여인이 이제 목회자로 부름 받아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됐다. 예수님이 전부라고 고백하는 정영숙 목사(세계비전선교교회)의 삶과 사역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병을 고치고자 찾아간 무당이 건넨 말 “예수를 믿으라”
7번의 대수술…예수님을 만난 후 회복된 건강

까막눈을 목회자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

| 삶의 시선

Q. 당신의 삶을 장르로 표현한다면?

다큐멘터리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큐멘터리엔 희로애락의 모든 장면이 들어간다. 주인공이 쓰러지고 넘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늘 바른길로 인도해주신다. 내가 살아온 인생과 닮아있다.

Q.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동기는?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살았다. 고난의 연속이었다. 어려서부터 몸이 계속 아팠는데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다. 일도 잘 안 풀렸다. 그러다 보니 늘 힘이 없었는데 병원에서도 병명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전주에 있는 유명한 무당을 찾아갔다.

Q. 점집 풍경은 어땠나?

큰 방에 어마어마하게 사람들이 모여있더라. 나도 표를 받고 기다렸다. 저녁 7시쯤 되니 내 차례가 돌아왔다. 무당 앞에 앉았는데 글쎄 무당이 “너는 예수 믿어야 돼. 예수 믿지 않으면 안돼.”라는 것 아닌가. 그 무당이 써준 부적엔 ‘교회를 찾아가서 하나님을 믿으라’는 글뿐이었다. 그 후,  처음 찾아간 교회가 신천지였다. 당시에는 그곳이 신천지인지도 몰랐다. 교회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으니까. 예배를 드리는데 뭔가 이상했다.

Q. 처음 찾아간 곳이 이단 교회였다니 놀랐겠다. 어떻게 했나?

그곳 사람들이 기도를 하길래 나도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했다. ‘하나님! 저도 기도하고 싶어요. 하나님 만나고 싶어요.’라고 했더니, ‘여기를 나가야 한다.’라는 음성이 들렸다. 그렇게 그곳을 빠져나와 건강한 정통 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이단에서 빠져나와 바른 신앙의 길을 걷게 된 그 자체가 은혜이고 기적이었다.

Q.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젊은 시절 다단계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직장 친구가 가계에 어려움을 겪어 카드를 빌려줬다. 몇 달 뒤, 그 친구에게 카드를 달라고 했더니 돌려주지 않으려고 자꾸 빼는게 아닌가. 은행에 가서 확인해보니 현금서비스와 대출 등, 카드로 받을 수 있는 돈은 다 서비스 받았더라.  IMF 시기인지라, 빚이 2억이나 됐다. 그때 너무 많이 힘들어 자살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기도하는 중에 친구를 용서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Q. 쉽지 않은 생각이다. 빚은 어떻게 됐는가.

친구를 용서해야겠다고 결단한 뒤,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국가에서 빚을 탕감해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그런데 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울며 기도만 했다. 그때 신학교에 다니던 중이었는데, 함께 수업 듣는 한 분이 도와주셔서 파산 신청을 진행 할 수 있게 됐다. 판사는 내가 갚을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2억을 모두 탕감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다. 

Q. 삶에 개입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은?

어렸을 때부터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래서 그런지 계속 몸이 아파왔다. 일명 신병이라는 것. 암부터 시작해서 7번의 대수술을 받게 됐는데, 예수님을 만난 후로는 모든 죄를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사니까 건강이 모두 회복됐다.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부족한 나를 불러주시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게 인도해주셨다. 내 주인이 바뀐 순간이었다.

예수님을 만난 후 그녀의 모든 삶은 예수님 중심이 됐다.
예수님을 만난 후 그녀의 모든 삶은 예수님 중심이 됐다.

Q. 언제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됐나?

하나님께서 신학생을 가르치라는 음성을 마음에 주셨다. 물질을 줄 테니 신학생 한 명을 도우라는 말씀이셨다. 그렇게 한 여성의 신학교 자금을 돕기 시작했다. 열심히 돈을 벌며 신학생을 키우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나도 신학교에 가길 원하셨던 모양이었다. 또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초등학교도 졸업 못 해 아무것도 못합니다.” 라며 도망 다녔다. 그런데 재밌는 건, 내가 돕던 그 여성분도 초등학교를 못 나온 분이었다. 그렇게 그분의 뒷바라지를 하던 중, 퍼뜩 든 생각이 ‘신학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기도하며 성경 필사를 쓰도록 인도하셨는데, 요한계시록 22:18-20절 말씀인 “이 생명의 말씀을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라”는 음성을 주셨다. 그 이후 오랜 시간을 거쳐 신학을 공부하게 되고,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됐다. 하나님께서 내 숨소리까지 듣고 개입하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목사 임직식에서 정영숙 목사 친지들과 찍은 단체사진
목사 임직식에서 정영숙 목사 친지들과 찍은 단체사진

누구나 와서 쉬고 상담할 수 있는 세계비전선교교회
말씀에 순종하여 간 칠레에서 원주민에게 복음 전해
목숨의 위협에도 전한 복음 선포로 영혼 구원 열매 맺어

| 사역의 시선

Q. 세계비전선교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오시면 거처할 곳이 없다. 그런 상황이 안타까워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제가 목회자가 되어 교회를 주시면 선교사들이 마음 놓고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습니다.’라고. 이 공간을 얻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형편에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선교센터가 세워졌다. 세계비전선교교회는 누구든지 와서 쉴 수 있고, 상담하고 갈 수 있는 곳이다.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정영숙 목사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정영숙 목사

Q. 특별히 집중하는 사역은 무엇인가?

이곳에 이사 왔을 때, 주변에 두 명의 무당이 살고 있었다. 산신도사와 연화보살. 이웃에게 늘 먼저 인사하고, 동네 청소를 하면서 다니다 보니 그들과도 친해졌다. 무당들이 ‘목사님, 목사님’ 하며 지내는 사이가 됐다. 두 무당을 위해 늘 기도하는데, 산신도사가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처분하고 평신도로 살겠다고 고백했다. 연화보살은 가끔 교회에 와서 헌금도 하고, 내게 기도도 받고 가곤 한다. 언젠가 성찬식을 집도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강력히 선포했는데, ‘아멘’으로 답하더라.(웃음) 그러더니 곧 무당 생활을 처분하겠다는 고백을 하는 게 아닌가. 예수님께로 돌아올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Q. 칠레에서도 밤낮 없이 복음을 전했다고 하던데?

동생이 칠레의 보석이라 불리는 발디비아에서 살고 있다. 원주민만 있는 곳인데, 목회자가 되기 전 동생은 늘 한국에서 고생하지 말고 그곳으로 오라고 권유하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금식기도하며 하나님께 물었더니 허락하시더라. 그곳에서 알코올 중독자, 마약 중독자, 가정 파괴범을 내게 붙여주시는데 심방하느라 24시간이 모자랐다. 에스파냐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데 “올라” 하면 “꼬마스따디에 헤수 그리스도”라며 십자가를 그리면서, 예수님이 너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고 말해준다. 그러면 금새 그들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회개했다. 그곳은 병원비가 비싸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프거나 하면 기도해 달라고 나를 부른다. 새벽이든 밤이든 전화를 받으면 시간을 생각지 않고 무작정 달려가 기도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주님께서는 늘 치유의 역사를 보여주셨다.

칠레에서 원주민들에게 밤낮 없이 심방을 하며 선교를 했다.
칠레에서 원주민들에게 밤낮 없이 심방을 하며 선교를 했다.

Q. 칠레에서 또 다른 기적을 체험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어느 화창한 날에 날씨도 좋고 해서 동생과 근교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나왔는데 원주민들이 차 앞 유리 와이퍼를 훔쳐 간 게 아닌가. 하필 집에 돌아오는 중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앞이 안 보일 정도였다. 우리 차 뒤에는 두 대 정도가 따라오고 있었다. 뒤차가 우리를 질러 가는 순간, 그 차가 갑자기 길에서 미끄러지며 낙상 사고가 일어났다. 잠시 후,머리를 다쳐 피범벅이 된 남자가 주변인들에게 부축받으며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됐다.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해줬다. 그곳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기도를 듣고는 “할렐루야!, “아멘!”이라고 화답해주는게 아닌가. 그 자리에서 많은 자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다. 사고 현장은 삽시간에 부흥회로 변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신비한 경험이었다.

칠레 발비디아 전도 축제. 교회의 성도들이 거리에 나와 기도하며 감사를 전했다.
칠레 발비디아 전도 축제. 교회의 성도들이 거리에 나와 기도하며 감사를 전했다.

Q.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칠레에서 돌아온 후, 경기도 광주에서 사역할 때였다. 그곳엔 늘 군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개구리 아저씨’라는 분이 계셨다. 늘 술에 취한 채, 악을 쓰며 다녔는데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어느 날 새벽 3시였다. 그분은 또 술에 잔뜩 취한 채 교회 마당에서 “목사 나와!”라고 소리를 질렀다. 교회로 불러 대화를 하는데, 다짜고짜 기도를 하라는 게 아닌가.

Q. 어떻게 했나?

전심을 다해 간절이 기도했다. 개구리아저씨는 내게 “넌 내가 무섭지 않냐?”라며 물었다. 그래서 대답했다. “왜 형제님이 무섭나? 내가 볼 땐 너무 사랑스럽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더니 “내가 며칠 뒤에 또 올거야”하며 돌아갔다. 한 여름 폭우가 쏟아지는 밤, 그분은 또 교회를 찾아왔다. 그런데 한 여름인데도 겨울점퍼를 입고 오신게 아닌가. 교회에 들어가 앉았는데, “내가 오늘은 뭐하려고 왔는지 알아?”라고 말하더라. 그러면서, 점퍼 속에서 긴 식칼을 꺼내 들고는 내게 위협을 가했다. “너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봐”그러길래, “딱 한마디 있습니다.형제님! 꼭 예수님 믿으세요”그랬더니 “내가 너한테 졌다”라며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시작하더라. 건축업자로 일하던 중, 사기를 당해 방탕한 생활을 하며 교회마다 돌아다니며 계속 행패를 부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분의 입에서 놀라운 고백이 나왔다. “야! 내가 너한테는 항복이다. 네가 믿는 예수가 어떤 분인지 난 잘 모르지만, 나도 꼭 그 예수를 믿겠다. 그리고 이런 행패는 다시는 안부리겠다”라며 말하는 것이 아닌가. 곧바로 그 사람과 영접 기도를 한 후 돌려보냈다. 그 후 6개월 간 그분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는데, 어느 폐가를 새롭게 고쳐서 산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다.

성경필사를 통해 마음에 새긴 말씀의 비석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 생각의 시선

Q. 가치관에 영향을 끼친 것은?

어디를 가든지 성경을 쓰게 하셨다. 나는 초등학교도 졸업 못 해 부모님 이름도 쓸 줄 몰랐다. 그런데 성경 필사하다 한글을 깨우치게 됐다. 그러시면서 돌판에 새기라는 마음도 주셨다. 바로 마음에 말씀을 새기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디로 가든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내가 어딜 가든 성경이 함께 다닌다. 복음을 전하다가 지치고 힘들 때마다 성경을 쓴다. 그럼 우리를 위해 고난의 길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주님이 보인다. 그래서 누구든지 필사를 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한글과 스페인어 성경을 함께 필사하고 있다.
한글과 스페인어 성경을 함께 필사하고 있다.

Q.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주신 말씀. 시편 18편이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힘이십니다.”

Q.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은?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호스피스 사역도 하고 있는데, 죽음을 앞둔 분들과 가족들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전한다.

미술치료를 통해 고통받는 자들의 내적인 치유를 돕고 있다.
미술치료를 통해 고통받는 자들의 내적인 치유를 돕고 있다.

방황하는 자들이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오길
외국인에게 신학을 가르쳐 그 한 사람이 천을 이루게 되길

| 세상의 시선

Q. 목사님이 바라보는 세상은?

방황하는 분들이 하나님께 돌아왔으면. 그렇게만 된다면 더 큰 바람은 없다. 참 진리인 예수님을 만났으면 한다. 성경을 들고 교회 문턱만 밟는다고 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참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는 본을 보이면서 그분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Q. 기도제목이 있다면?

물질을 하나님께 전부 드리니 내 건강을 회복해 주셨다. 70세, 80세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지만 내게 물질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CTS를 통해 복음이 전 세계로 전파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다. 또, 외국인에게도 신학을 가르치고 싶다. 외국인에게 신학을 가르치면 그 한 사람이 천을 이룰 수 있다. 칠레에 있는 동생과 기도원 사역도 계획하고 있다. 거창하게 시작하는 것이 아닌, 나와 형제들이 요양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해 시작했으면 한다. 기자님께도 기도 부탁드린다.

저작권자 © 투데이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