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한복음 21:15)

작가 김소진은 그의 작품 <아버지의 미소>에서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가 기대하는 아버지는 강력한 존재요, 자신이 터득한 무궁무진한 세상살이 비법을 전수해주며, 풍성한 물질적 능력이 있는 아버지였지만 현실 속의 그의 아버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아들인 그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사랑(愛)과 미움(憎), 또는 자부심과 콤플렉스라는 두 가지 상반된 정서가 한데 뒤섞인 아버지였습니다.
그가 고등학교를 일학년을 마칠 무렵, 학교에서 학생 저축 예금이 결산됐으니 은행에서 돈을 찾아가라고 말을 듣고, 그 돈을 찾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은행의 의자에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 도매상에 물건을 떼러 시장에 들렀던 그의 아버지가 불쑥 은행 안으로 들어와 아들에게 아는 체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초라한 몰골의 아버지가 부끄러워 자신을 아는 체 하는 아버지를 애써 외면하고 서둘러 은행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은행을 나오다 말고 뒤를 돌아본 순간 자신을 바라보며 던진 그 알듯말듯한 아버지의 미소를 보았습니다.
그의 대학 시절, 데모대의 뒷줄에 섰다가 잡혀 들어가 구류를 살고 나오던 날도 아버지는 그를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가만히 그의 손을 붙잡고 시장안의 식당으로 들어가 순대 한 접시와 마실 것을 시키고는 걱정스런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묻습니다. “몸은 괜찮은 거니? 많이 먹어라.” 그러면서 조용히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젊으니깐 피가 끓는 것도 당연하긴 한데, 네 엄마가 지금 충격 때문에 자리에서 못 일어나고 있단다. 나야 얼마를 더 살겠냐마는 나를 잘못 만나서 네 엄마가 평생 어떤 고생을 했는지 너도 잘 알고 있잖니? 지금껏 너한테 해준 건 없다만 널 꼭 믿는다.” 그 말을 남기고 그의 아버지는 이년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를 부정하는 아들을 호되게 꾸짖어도 시원치 않을 텐데 도리어 엷은 미소를 보내던 아버지. 그 젊은 피가 끓어 어디로 튈지 모를 긴박한 상황에도 ‘나는 너를 믿는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미소가 오늘날 그 사람을 만든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미소는 어쩌면 그렇게 하나님의 미소와 닮았는지 모릅니다. 자기의 사랑하던 제자가 당신의 가장 고통스런 그 순간에 스승을 부정하고 돌아설 때에도 여전한 미소로 바라보시던 주님의 눈빛. 그리고 부활하신 이후에도 고기나 잡으러 가겠다고 갈릴리 바다로 나갔던 그 배반한 제자를 다시 부르시면서 하시는 말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어쩌면 그럴 수 있었느냐고 서운함을 드러내면서 물어볼 만도 하건만, 그런 나약한 정신으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에 천국 복음을 전할 수 있겠냐고 핀잔을 줄 수도 있었으련만, 그러나 그분은 그저 미소를 던지면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나는 너를 믿는다. 그러니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시며 미소를 보내십니다. 여전히 힘겨운 이 세상, 그러나 아버지의 그 미소. 때문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여러분의 그 미소가 누군가를 살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글 | 조범준 목사 (더사랑지구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