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한 달을 되돌아 봅니다. 설교자인 제게는 설교를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요즈음 정규적인 설교 사역으로는 제가 속한 에스라성경대학원 대학교에서 수요예배에 말씀을 전하는 일이 거의 유일합니다. 그리고 수요예배 후에 저녁 식사를 마치고 7시 이후에 강해설교 특강을 신청한 몇 몇 학생들과 한 시간 남짓 설교에 대해서 나누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설교라고는 부를 수 없지만, 큐티 말씀 묵상을 순서에 따라 학우들에게 인도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외에는 은퇴한 사람으로서 정규적인 주일 설교로부터는 해방이 된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한 달은 달랐습니다. 우리 학교의 설립자이자 명예 이사장이셨던 백정란 권사님이 어느 월요일 입원해서 금요일에 하나님의 품에 안겼고, 학교장(學校葬)으로 장례를 치루면서 총장으로서 맡아야 했던 설교가 갑자기 생겼습니다. 보통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 세 차례의 예배를 드리는데, 감사하게도 가장 많은 조문객들이 참석하는 발인예배, 천국환송예배는 사회만 하고, 권사님이 미리 정해두신 은퇴교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셨기에, 입관예배와 하관예배 설교를 준비하는데 숨 쉴만한 마음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저를 위한 소중한 배려였습니다.

 또 하나 특별한 설교가 있었습니다. 지난 주간 오피니언에 언급한대로 <2021 한국교회 사순절 회개 기도회> “내가 주님을 박았습니다”라는 순서에 금요일 아침 메시지를 맡았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은퇴한 목사들이 맡고. 기도회는 현직 담임목사들이 인도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메시지의 초점은 세상을 향해서도, 1차 청중인 성도들을 향해서라기보다는, 설교자 자신의 고해성사(?)에 초점을 맞추기로 합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선택부터 여간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다음 달 중순에 죠이북스에서 출간될 <읽는 설교 요한계시록> 설교를 저자로서 마지막으로 검토하다가 만난, “울지 말라”(계 5:5)란 설교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특정한 청중을 의식하면서, 정해진 규격, 30분에 맞추려고 원고를 여러 차례 다듬어서,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시간에 강단에 섰습니다. 순조로이 시작을 해서 항해를 하고 있었는데, 슬쩍 살펴보니, 원고는 2/3에 도달했는데, 시간은 2/3나 남은 것 같은 상황이니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런 위기에서 나머지 상황을 주께 맡기는 것은, 쉽지는 않아도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마침내 설교가 끝났고 카톡으로 몇 몇 분들의 피드백이 도착합니다. “늘 말씀만 듣던 목사님의 설교를 집적 들을수 있어서 넘 감사 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새벽 말씀에 은혜 많이 받았어요!!! 여전히 목사님은 강단에서 유다의 사자!!! 세요. 감사합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김 목사님^^ 주께서 쓰시겠다 해서 차출된 어린 나귀의 마음으로~~”  “ 온누리교회에서 설교하신  말씀 듣고 울어야 되는  상황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죽음의 준비가  아닌 노후를   걱정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스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전진할  기회를  주시니,  의지하고  달려갈 길을 가보려 합니다” 역시 설교사역은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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