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20:31)

요즘 우리는 새봄을 만끽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새봄이 오는 것이 또한 우리 마음속에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 과정이 고난주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인간의 모든 죄를 속하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또 십자가로 올라가시는 그 순간 순간을 우리가 묵상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분은 형벌을 받으실만한 아무런 죗값이 없으셨지만 우리의 죄를 배속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분이 모든 댓가를 지불하셨던 이유는 우리 인간의 모습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기간들을 그 주님을 깊이 생각하며 그분의 사랑과 그 분의 은혜 깊이와 넓이를 생각하는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우리는 얼마나 그분을 알아가고 있을까?
하나님이 이 땅을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하셨는데, 그 하나님의 사랑에 깊은 그 파장들을 우리는 얼마나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를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오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는 모습을 새벽에 보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고 있었고 동행하고 있었지만 몸의 동행이었지 마음의 동행이 아니었습니다. 탕자가 집을 나간 다음에 첫째 아들은 아버지와 한집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몸의 동행이었지 마음의 동행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인간과 동행하고 싶어서 한 마음을 나누기위해서 오셨지만 철저하게 혼자였고 그리고 마지막가는 그 길도 하나님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그런 고독의 길을 가시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면에서 정말 우리는 예수님을 팔았던 가룟 유다가 아닐까, 또 다른 장남의 모습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자신들을 돌이켜 보면서 우리가 주님 안으로, 주님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대속의 삶을 살고 예루살렘에서 재판의 과정을 거치고 징계의 과정을 거치시는 것들을 다 아시면서도 그 길로 가셔야만 했던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살아가는 그런 사순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나타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사역자인가, 동역자인가. 예수님을 위해서 뭔가 열심히 일 한다고 하지만 그게 나만의 일일까, 주님과 함께하는 일일까? 주님께서 꿈꾸셨던 일일까, 나의 야망을 성취하려는 꿈일까? 주님의 아픔이 나와 동일화 되어서 주님이 내밀었던 그 손을 나는 누군가에게 내밀고 있는 것인가.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감동이 되어서 나의 발걸음이 사마리아를 찾아가듯 누군가를 찾아가는 주님과의 동행의 발걸음일까, 동역의 역사일까? 그런 생각을 해보며 사순절 기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이 동역이고 동행인데 이번 사순절 기간은 마음이 통하는 동행, 우리의 행동으로 주님과 일치하는 동역이있는 삶이 꼭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글 ㅣ 윤문기 목사(평택안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