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선택은 바른 결과를 낳고 잘못된 선택은 잘못된 결과를 낳는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달리실 때 양쪽에 강도들도 있었다. 강도들은 악을 행했던 행악자였고, 십자가 위에서도 예수님을 비방했다. 강도 둘은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고, 둘에게는 다른 결과가 주어졌다.

한 강도는 예수님을 향해 ‘네가 그리스도라면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조롱하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막는 것이 되고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질 수 없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십자가 위에서 내려올 수 있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드러내고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기적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강도가 ‘그리스도여 나를 구원 하소서’ 라고 고백했다면 얼마든지 구원받을 수 있었는데 ‘그리스도’, ‘구원’이라는 단어를 말하고 있으면서도 그리스도와 구원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 바른 말을 하고 좋은 말을 한다고 해서 다 믿음의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부를 수 있다. 우리의 입술의 고백뿐만 아니라 마음 다해 고백해야 하며 삶으로 고백해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욕하고 십자가에 못 박고 매달아 죽이고 있는 로마 군병들과 종교 지도자들,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인류를 위해 하나님께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며 기도하고 있다.

한 강도는 십자가에 달려 있는 동안 처음에는 예수님을 비방했지만 예수님의 고백을 들으면서 그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 예수님의 긍휼과 용서가 강도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도 예수님의 용서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드릴 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우리도 용서할 때 공동체가 살아나는 은혜가 있다. 내가 용서해야 할 대상은 멀리 있지 않고 아주 가까이 있다. 멀리 있는 사람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용서는 내 힘으로 잘 안되기에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께서 용서할 수 있는 능력과 마음을 주실 것이다.

이 강도는 예수님은 죄가 없고 의로우신 분이고, 자신의 잘못을 알고 벌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죄 지은 것에 대해 핑계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구원의 출발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할 때 시작된다. 이 강도는 구원자인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 나라를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한다. 다른 이름으로서는 구원이 없고 오직 마음 다해 왕 되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을 받는다. 구원은 내가 주님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기억하는 것이다. 구원은 내가 주님의 손을 붙잡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나의 손을 붙잡아 주는 것이다. 주님은 나의 마음과 이름, 사정과 형편, 기도와 섬김을 아시고 기억하신다.

이 강도의 기도제목은 십자가에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더 귀한 것은 구원받은 시점이 수많은 영혼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킬 때가 아니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핍박하고 떠나며 고통당하고 있을 때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한 것이다.

주님의 응답이 이 강도에게 임한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오늘 주님을 믿고 영접하면 오늘, 지금, 구원받는 것이다. 바른 선택은 영원을 좌우한다. 천국은 주님이 함께 하는 곳이다. 아무리 화려해도 예수님이 없으면 그곳은 천국이 아니다. 이 땅에서도 예수님과 함께 하면 천국을 경험한다. 혼자 있을 때도, 가정이나 직장에 있어도, 주님과 함께 하면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명예가 높아도 주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천국의 삶이 아니다.

바른 선택을 통해 영혼과 미래에 후회 없는 영광스러운 삶이 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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