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연동서부교회 이상성 목사(lee-sangsung@hanmail.net)의 작품
제주연동서부교회 이상성 목사(lee-sangsung@hanmail.net)의 작품

1972년 6월 17일 밤 미국 수도 워싱턴의 워터게이트(Watergate) 호텔 6층 민주당 전국 위원회 사무실에서 5명의 괴한이 체포됐다. 괴한들은 전화 도청 장치와 스파이용 카메라 장치를 갖고 있었다. 처음 이 사건은 단순한 절도 사건으로 여겨졌으나 점차 백악관과 연계된 사건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은 1974년 8월 9일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게 되었다.

당시 이 사건에 연루되었던 닉슨 대통령과 해리 로빈슨 홀더먼 대통령수석보좌관은 FBI의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CIA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였는데, 그 상황이 테이프에 녹음되었다. 닉슨 대통령 측의 정치공작은 고든 리디(George Gordon Battle Liddy)와 하워드 헌트(E. Howard Hunt)를 중심으로 닉슨 대통령 재선위원회 직원들이 주도하였다.

이 사건으로 구속된 사람 중 우리가 잘 아는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이란 사람도 있다. 그는 닉슨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정치적인 권력을 누렸던 사람이다. 그는 머리가 비상할 뿐만 아니라 지독할 정도로 냉철한 사람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당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치밀하게 모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은 불과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이처럼 거짓말을 영원히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활절은 주님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신 기쁜 날이다. 그런데, 이 부활의 역사성을 부정하려는 여러 주장들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있어 왔다. 가령, 주님의 시신을 제자들이 탈취했다는 탈취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기절했다가 깨어났다는 기절설, 주님의 제자들이 주님을 너무 보고 싶어 하다가 헛것을 봤다는 환상설, 부활은 실제가 아닌 초대교회 공동체가 만들어낸 신화로 해석해야 한다는 신화설 등이 있다.

지난 2000여 년 동안 주님의 부활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이런 수많은 주장이 있었지만 그 어떤 주장도 주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확실한 증거를 내지 못했다. 거짓은 세계 최고의 권력자인 미국의 대통령이 최고의 권력기관과 가장 똑똑한 사람을 총 동원해도 언젠가는 드러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역사성은 너무나 확실하다.

요한복음은 이런 점에서 주님의 부활을 너무나 멋지게 제시하는 복음서이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이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첫 사람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요 20:1). 마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다른 마리아가 주님이 묻힌 무덤으로 갔다고 하고(마 28:1), 마가복음은 세 명의 여인을 말하는데,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라고 한다(막 16:1). 누가복음은 더 많은 여인을 부활을 목격한 증인으로 제시한다(눅 24:10).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 달리 요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를 부활의 첫 증인으로 언급한다. 이것은 사람의 이성적 생각이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당시 유대사회에서의 여성은 법정에서 증언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법정에서 채택되는 증언은 두 세 사람이 요구되었다(신 19:15). 더욱이 막달라 마리아는 이전에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자였다(막 16:9; 눅 8:2).

만약 성경 기자들이 성경과 부활의 역사성을 조작하려했다면 이런 여자들의 증언, 특별히 사도 요한이 부활의 첫 증인으로 내세우는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여자를 내세우면 절대 안 되었다. 오늘날도 법정에서 어떤 사건의 목격자로 판사나 검사가 나선다면 법정에서 더욱 신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을 죽이는데 앞장선 대제사장들이나 서기관, 바리새인, 혹은 주님의 사형 판결을 내린 총독 빌라도와 같은 사람이 주님이 부활한 것을 목격했다고 하면 주님의 부활이 더욱 신뢰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성경은 주님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을 덧붙이거나 빼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했다. 이 사실이 주님의 부활이 얼마나 확실한 사실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특별히 사도 요한은 주님이 부활하셨음을 아주 주도면밀하게 관찰하여 기록했다.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의 시신을 안치한 돌무덤이 옮겨진 것을 보고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 즉 사도 요한에게 말했다. 놀란 두 제자들이 무덤으로 달려갔고, 그들은 돌문이 옮겨진 무덤 안을 보게 되었다.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요 20:5~7)

성경은 이 장면을 보고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믿었다고 한다(요 20:8). 물론 구약성경과 주님이 끊임없이 말한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할 것이라는 모든 말씀을 다 믿었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요 20:9). 그러나 베드로와 사도 요한은 이 무덤 안의 장면을 보고 주님이 부활하셨음을 부족하지만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봤기에 이들이 주님의 부활을 믿게 된 것일까? 그것은 로마의 군병들이 엄중히 지키는 돌문이 옮겨진 것부터 시작하여 만약 시신을 누가 훔쳐 갔다면 주님의 시신을 싼 세마포가 한 곳에 놓여 있고, 게다가 머리를 쌌던 수건은 또 다른 곳에 그것도 잘 접어 있게 할 수 있을까?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갔다면 그 급박한 상황에서 그럴 수는 없다. 이런 면을 볼 때 당시 대제사장들이 무덤을 지키던 군병들에게 돈을 주고 주님의 시신을 제자들이 훔쳐갔다는 소문은 가짜임이 드러난다(마 28:11-15).

주님의 부활은 결코 조작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생명의 도’라 불리는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 이 주님의 부활을 우리가 믿기에 우리는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듯이 우리도 부활할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15:23).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는 사탄이 남겨 놓은 죄를 없애기 위해 주님이 십자가에게 죽으신 것을 기억하고 죄와 싸워 이겨야 한다.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죄가 안겨준 우리 안의 모든 상처의 절망으로부터 치유 받을 수 있다. 우리를 둘러싼 어떠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라도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일곱 귀신이 들린 것과 같은 우리의 과거의 상처와 수치도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놀라운 도구가 된다.

코로나 19가 온 세상을 덮친 지 맞이한 두 번째 부활절이다. 아직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이 우리 가운데 있지만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상대화할 수 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신 주님의 능력이 모든 문제 가운데서 능히 이겨낼 수 있으니 말이다. “예수,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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