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생애의 출발로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구약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 오심의 준비 역사이며 신구약 중간시 대의 헬라·로마 문화 역시 그리스도 오심의 준비적인 문화이었다. 성경은 예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실 것을 미리 말했는데(미 5:2) 예언의 말씀 그대로 베들레헴에서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출생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이 땅에 오셨으며 그분 자체가 '하나님 나라'이시다. 그의 생애 즉 탄생에서부터 사역, 복음을 선포하시고 가르치시며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 승천, 성령 강림, 재림까지가 기독교의 진리이며, 역사이고 복음자체이다. 교회 역사가 필립 샤프(Philip Philip Schaff)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B.C. 4~A. D. 27년까지 사적인 생활을 하셨고 30세 되시던 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부터 공적인 생애의 사역이 시작되셨다. 
물론 신적(神的) 사명에 대한 자각과 하나님을 향한 효심은 이미 12세 때에 성전에서 그의 육신의 모친 마리아에게 준 대답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눅 2:49). 그때부터 세례를 받으시기까지에 대해서는 성경적인 계시가 없으므로 이 '숨겨진 기간' 동안의 메시야적 자각에 대하여는 어떠한 주장이나 추측을 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부르스(F. F. Bruce)는 그리스도의 세례 받으심의 의미를 메시아적 자각과 사명 감당의 중대성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세례를 받고자 하는 예수님의 의도 가운데서 스스로의 사명에 대한 자각과 자기 백성과의 유대를 갖고자 하는 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의 설명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하늘로부터 들려온 소리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 1:11)는 말씀에 근거 하고 있다. 공생애의 기간은 A.D. 27~30년까지이다. 그리스도의 핵심적인 사역은 12제자들을 택하셔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시면서 함께 복음을 전파하셨다. 

2. 예수님의 사역의 특징 

예수님의 사역에는 몇 가지 독특성이 있었다. 몬테피오르 (Montefiore)가 지적했듯이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특권을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셨기 때문에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비판을 받았고 십자가 처형의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체가 메시야적 사역이므로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을 강조함은 당연한 논리인 것이다. 문제는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인정치 못했던 영적무지의 종교인들에게 신성모독자로 보였을 뿐이었다. 
또다른 특성은 '하나님 왕국'을 가르치심에 있어서 현세적인 백성들의 삶을 이용하셨다. 즉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치유하셨으며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시기도 하셨다. 이러한 그리스도 사역의 역동성 때문에 민중들은 흥분하였고 군중들은 억지로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때마다 예수께서는 피하셨고 그들이 추대하는 민중의 영웅이 나 왕이 되시기를 거부하셨다. 그의 사역의 역동성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을 나타내며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무엇보다도 치유의 사역이 끝나면 반드시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라고 선포하심으로 자신은 죄인의 구세주이심을 계시하셨다. 
예수께서 무리들의 추대하는 왕이 되시기를 거절하신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 예수님은 진정 하나님의 왕국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왕국은 당시 유대백성들이 추구했던 것과 그 성격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유대백성들은 로마의 속국으로부터 정치적 자유를 얻기 위하여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대하여왔다. 그리고 하나님의 왕국이 역동적으로 현세 가운데 임하는 나라일 것으로 착각하였다. 하나님의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수난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림으로서 시작되는데 그 핵심내용이 있다. 안타까운 것은 제자들마저도 수난의 십자가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마 16:21-23). 
병자를 고치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타내신 그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시겠다”는 수난예고를 도무지 받아들이기에 실감이 나지도 않았고 한편으로는 겁도 생기는 심각한 문제였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솔직 담백하게 제자의 길을 설명하셨다. “만약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정하고-즉 자신의 모든 소망이나 야망을 포기한 후-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다(마 16:24). 이러한 고난 뒤에는 또한 말할 수 없는 영광이 함께 계시되고 있다. 이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명의 제자들이 변화산에 올랐을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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