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희 작가, "살아 움직이는 말씀"의 생명력을 담기 위한 도전
  • 서울 토탈미술관 전시 "기록", 진리의 기록에서 시대의 기록까지
  • 한글 최초 성경 번역본 <예수 셩교젼셔> 필사 작품
한글 최초 성경 번역본인 <예수 셩교젼셔> 필사 작품
한글 최초 성경 번역본인 <예수 셩교젼셔> 필사 작품

코로나로 성경 필사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종종 듣게 된다. 성경 말씀을 한자, 한자 손으로 쓰는 행위는 말씀에 대한 또 다른 몸의 경험이 아닐까?

서예가 이승희 작가는 붓으로 한 글자, 글자를 적으며 오랜 시간 성경 말씀을 몸으로 경험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 부문에 입상하며 '쓰는 행위'가 몸에 익숙해진 어느 날 말씀에 대한 "각성"이 일어났다.

"성경 말씀을 글자 수에 맞추어 쓰는 일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어요. 그런데 문득 정해진 틀 안에 말씀을 가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 있는 말씀이잖아요."

이승희 작가는 서예를 위한 말씀이 아닌 말씀을 위한 작업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화선지의 앞과 뒤, 위와 아래를 가로지르며 말씀을 적고 말씀을 중첩시키고 부딪혀 보았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 있는 말씀"을 표현하기 위해 이전의 방법을 부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낯선 길에 들어섰다.

"고민하며 정말 힘든 시간이었어요. 전통 서예를 벗어난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울면서 기도하고 묻는 시간이었지요."

전통적인 서예 형식을 벗어나 성경 말씀을 새롭게 표현한 작품
전통적인 서예 형식을 벗어나 성경 말씀을 새롭게 표현한 작품

서울 토탈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서 이 작가는 성경 중 요한의 기록을 선택했다. 1887년 한글 최초 성경 번역본인 <예수 셩교젼셔>을 화선지에 써내려갔다.

자극적인 이미지와 텍스트에 익숙한 관람자의 눈에 하얀 화선지에 올려진 검은 먹 글자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승희 작가는 화선지를 둘러싼 화려한 틀을 거둬내고 화선지에 빛이 오고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었다. 희고 여린 화선지가 겹쳐진 공간은 고요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자연 본연의 맛을 살린 식탁 앞에서 새로운 맛을 발견하듯, 빛이 담긴 화선지 위에 놓인 정갈한 글자는 관람객에게 은은한 풍미를 맛보게 한다.

요한복음 필사 작품과 이승희 작가
요한복음 필사 작품과 이승희 작가

전시의 클라이맥스는 전시장 중앙을 가로지르는 요한복음 필사 작품이다. 천장에서부터 흘러내린 작품은 바닥에 놓인 붉은 천까지 이어진다. 작품의 스케일과 그 안에 담긴 작가의 고된 노동과 열정의 기록은 시선을 멈춰 세운다.

성경 필사와 탁본의 조형미를 담은 작품
성경 필사와 탁본의 조형미를 담은 작품

성경 말씀을 기록하던 이승희 작가의 작업은 삶의 다양한 기록으로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 영상, 텍스트 등의 다양한 데이터를 그녀는 '탁본'이란 방식으로 기록한다. 탁본할 수 없는 것들을 탁본하며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그녀는 이 시대의 기록을 작품에 흔적으로 남겨두고 있다.

시대의 다양한 기록을 담은 작품
시대의 다양한 기록을 담은 작품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는 “유물론과 합리론에 의하여 위축되어 있는 인간의 마음의 해독제를 예술적 본능에서” 찾았다. 유물론과 합리론에 코로나 팬덤까지 더해진 요즘, 시들고 메마르기 쉬운 마음에 예술이 불러일으키는 '감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기독교 정신을 담은, 감탄을 자아내는 예술이란 무엇일까?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확실한 사실은 복음과 반대 방향을 가진 작품과는 다른 노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름다움에 대한 '깨어남'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승희 작가는 성경 말씀을 숙고하며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먹과 화선지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담은 전시
먹과 화선지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담은 전시


"전시에 오셔서 쉬다 가셨으면 좋겠어요. 작품을 보고 혹시라도 성경 말씀을 만나는 분이 계신다면 좋겠지요."

작가의 바람대로 고요한 쉼을 주는 전시였다. 4월 6일, 기독 예술인들의 노엘커뮤니티 포럼 행사와 함께 진행되었던 그녀의 전시는 아쉽게도 이틀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살아있고 생명력 있는 성경 말씀"을 향한 이 작가의 열망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이 또 다른 기록으로 이어지길, 그렇게 복음을 가슴에 품은 예술가들의 기록이 계속 만들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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