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한국에 수없이 운영되는 교단에 속한 또 하나의 신학교가 아닙니다. <성경대학원 대학교>입니다. 놀랍게도 대학원대학교라는 새로운 제도가 우리나라에 생겨나면서 <신학이 아닌 성경>을 가르치는 것으로 특화된 학교입니다. 하긴 이론적으로 말하면, 신학이란 성경에 기초한 학문입니다만, 현실은 성경 66권을 배우는 일보다는 여러가지 신학을 배우는 곳이기 십상입니다. 주로 성경신학, 이론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등으로 나누어 3년동안 배웁니다. 성경신학이란 과목도 성경신학에 관한 이론들이 본문보다도 앞자리에 와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그 이름 가운데 <대학원 대학>이란 이름을 빼고 읽으면, 어딘가 옛날에 듣던  <성경 학교>입니다. 물론 어린이를 상대로 하는 여름성경학교라기보다는, 한국교회 초기에 열심있는 평신도들을 차출해서, 농한기를 이용한 <고등성경학교>가 <성경대학교>로 격상이 되었다고 보면 어느 정도 정확할 것 같습니다. 요즈음 대세를 이루고 있는 “사역을 위한 교육/education for ministry”이 아니라 “사역 중의 교육/education in ministry”을 성경학교, 혹은 성경고등학교라는 이름으로 실시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님들은 참 지혜롭고 생각이 유연한 분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의 성도들 가운데는 “시간이 있으면 성경을 좀 깊이 있게 배우고 싶다”는 소원을 가진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요즈음은 조기 은퇴의 바람도 불어서 시간을 내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깊이 있게 배우고 싶다는” 소원 때문에 신학교나 신학대학원의 문을 들어서기도 하지만,  본래 소원하던 성경을 깊이 배우는 것이 아니라, 광활한 신학의 바다에 허우적거리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됩니다. 그것은 어찌보면 자신이 학교를 잘못 선택한 결과이지, 물론 조금도 신학교의 잘못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실수를 피하려면, 신학대학원 대신에 <성경대학원대학교>를 찾는 편이 안전합니다. 우리 학교 경우를 말하면 구약 39권을 위해서, 신약 27권을 위해서 각 세 분씩, 여섯 분의 교수들이 신학이 아니라 성경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우리 학교의 성경사랑이 표현되는 장은 큐티와 큐티 나눔입니다. 본문을 통해 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순종으로 “살아내는”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직원들은 매일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30분간 묵상 나눔을 합니다. 지난 4월 9일  매일성경 본문은 출애굽기 2장11~ 25절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적용으로 자주 은혜를 끼치는 주방에서 일하는 두 분의 이야기를 오늘 나눕니다. <성질을 참지 못하는 모세, 나 역시 마음만 앞서고 열정이 앞서서 일을 그르치는 적은  없는지. . .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를 사용하셔서 리더로 써주시는 하나님.  보내신 주방에서 리더의 위치 는 아니지만 필요에 따라 섬기는 자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미디안에서 좋은 사람 만나서 가정을 이룬 모세처럼, 기도의 사람이 되어 응답을 받기를 . . . 혹시 나는 모세처럼  내 잘못을 "모래 속에 감추는" 사람이 아닌가 자신을 살피며, 또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미디안 사람 르우엘처럼, 한 잔의 물이라도 잘 대접하는 사람이길 원합니다.> 성경묵상을 통해서 그 분의 음성을 듣고 일상속에서 살아내는 일에, 한마음으로 서로 격려하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은, 오늘 같은 세상에서, 특별한 직장이라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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