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광신대학교(총장 정규남 목사)는 실크로드 고대 기독교 연구소와 '실크로드 고대 기독교 역사 유물관(관장 김규동 박사)'을 개관했다.
이번 역사유물 전시는 중국과 실크로드에서 선교사역을 펼쳐 온 김규동 박사의 노력이 컸다. 김규동 박사는 고대 사료를 중심으로 고고학적 탐사와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 결과 고대 아시아 전 지역에 걸쳐 들어온 복음의 루트와 내용을 정리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있어 생소한 동양의 기독교 역사. 김규동 박사와 함께 떠나보자.

실크로드 고대 기독교 역사 유물관 (장소 : 광신대학교 중앙도서관 2층)
실크로드 고대 기독교 역사 유물관 (장소 : 광신대학교 중앙도서관 2층)

Q. '실크로드 고대 기독교 역사 유물관'은 어떤 곳인가?

그동안 아시아 역사는 전반적으로 서구적 사고에 의한 교육으로 이워졌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도 이러한 정황이 가득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말을 조금 쉽게 풀이하자면, 우리는 '복음의 서진'만을 강조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역사인식이 얕아지고 스스로 우리 문화를 낮게 여기는 경우를 보게 됐다.
내가 사역했던 선교지는 중국과 실크로드 지역이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현장에 가 보니 뜻밖에도 과거 기독교가 동진했던 사실들을 보게 해 주셨다. 그 현장에서 고고학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번 전시회는 그동안 학계에서 이뤄지지 않았던 기독교 동진의 증거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다양한 문서와 유물을 통해 한층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도록 준비했다.

전시된 역사 유물을 소개하고 있는 김규동 박사
전시된 역사 유물을 소개하고 있는 김규동 박사

Q. 역사유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중국에서 사역할 당시 '중국 기독교 이단과 사이비 종파'에 관해 강의를 하게 됐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중국 '경교'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경교에 관해 연구할수록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과 전혀 다른 내용들이 있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그동안 내가 이들의 역사적 상황과 지정학정 위치 등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섣불리 판단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경교비'의 내용은 나를 '동서양'이라는 거대한 블루오션으로 불러들였다. 그 후 나는 매년 기독교 동진의 현장을 찾아보면서 그들의 삶을 느끼고, 사역 현장에서 고고학이라는 생소한 사역에 동참하게 되었다.

  • 경교 - 선교사들이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 중국에 도착했는데 중국인들은 그들의 신앙과 사상을 '경교'라고 불렀다.
    (자료출처 : 네이버)
'대진경교유행중국비'(경교비). 경교비는 당숙종 때, '안사의 난'을 평정시킨 경교도 '이사'의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경교 신학자 경정이 덕종의 윤허로 781년 2월 4일 일요일 오전에 세워졌다. 높이는 236cm, 넓이가 86cm, 두께가 25cm로 총 1,870자의 한자와 40개의 시리아어, 비석의 하단부와 그 양측에는 성직자 82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그중 77명의 시리아 성직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경교비의 주요내용은 서문에 경교의 유입과정과 그의 교리를 간단하게 소개하였고 이어서 경교가 정관 9년(635)에 입경할 때부터 당태종을 비롯한 5대 황제의 업적과 더불어 건중 2년(781)까지 장안에서의 150여 년의 역사를 기재하고 있다.경교비의 위치와 의미는 단순히 경교의 교리와 신학만을 서술한 것이 아니고, 이사의 정치적인 공헌을 통해 경교의 역사상 지위를 정당화함을 알리기 위함이었다고 볼 수 있다.경교비는 몇 차례의 수난을 겪었는데 850년 무종의 멸불정책으로 인한 핍박에 경교도들이 땅에 묻어다가 명나라 대 1623년 서안의 주질에서 발견되어 비림에 옮겨져 현재까지 전시되고 있다.경교비야말로 중세기 '동서문명교류사에 있어 최고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경교비). 경교비는 당숙종 때, '안사의 난'을 평정시킨 경교도 '이사'의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경교 신학자 경정이 덕종의 윤허로 781년 2월 4일 일요일 오전에 세워졌다. 높이는 236cm, 넓이가 86cm, 두께가 25cm로 총 1,870자의 한자와 40개의 시리아어, 비석의 하단부와 그 양측에는 성직자 82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그중 77명의 시리아 성직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경교비의 주요내용은 서문에 경교의 유입과정과 그의 교리를 간단하게 소개하였고 이어서 경교가 정관 9년(635)에 입경할 때부터 당태종을 비롯한 5대 황제의 업적과 더불어 건중 2년(781)까지 장안에서의 150여 년의 역사를 기재하고 있다.경교비의 위치와 의미는 단순히 경교의 교리와 신학만을 서술한 것이 아니고, 이사의 정치적인 공헌을 통해 경교의 역사상 지위를 정당화함을 알리기 위함이었다고 볼 수 있다.경교비는 몇 차례의 수난을 겪었는데 850년 무종의 멸불정책으로 인한 핍박에 경교도들이 땅에 묻어다가 명나라 대 1623년 서안의 주질에서 발견되어 비림에 옮겨져 현재까지 전시되고 있다.경교비야말로 중세기 '동서문명교류사에 있어 최고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다. 

Q. 특별히 소개해 주고 싶은 유물이 있다면?

이곳에 비치된 유물들은 주로 몽골제국이 강력한 위용을 자랑할 때인 원나라 시대의 것이다. 작은 십자가 펜던트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십자가 펜던트의 의미는 당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니고 다녔던 표식이다. 7세기 이슬람의 팽창으로 중국인들에게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알리고 서로 간의 신앙공동체임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이다.

이번 전시된 유물들은 주로 원나라 시대의 것이 많다. 주로 작은 십자가 펜던트들이 많은데,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알리고 서로 신앙공동체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전시된 유물들은 주로 원나라 시대의 것이 많다. 주로 작은 십자가 펜던트들이 많은데,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알리고 서로 신앙공동체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유물을 들고 설명하고 있는 김규동 박사
유물을 들고 설명하고 있는 김규동 박사

Q. 서양의 기독교와 동양의 기독교 차이점

서양의 기독교는 거대한 돔 형식의 교회, 교황을 중심으로 한 체계와 권위가 있었다면 동방의 기독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선교 중심의 교회였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람이 모이고 거기서 사람들이 많아지면 다시 파송을 했다. 선교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리더십을 적용시켜 사람을 세웠다. 이런 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 끊어지지 않게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서방교회 가톨릭의 성상을 보면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항상 가톨릭은 '아기 예수'로만 이야기한다. 이미 오신 예수님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동방교회 경교비에는 '메시아'라는 글이 많다. 이것은 사람들이 처음에 출발할 때 선교를 하지만 메시아 대망론에 대해 굉장한 갈급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동방 기독교의 여러 고문서를 보면 '메시아'라는 글이 많이 나오는데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방교회는 '교황 무오설(교황이 하늘이다)'로 하나님의 대언자라고 해서 신격화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동방교회는 '만인제사장설'로 리더십을 다들 균등하게 주면서 복음의 확산을 꾀했다. 

Q. 우리나라 기독교 선교 역사가 바뀌는 것은 아닌가?

한국뿐만 아니라 그동안 식민 체계의 동아시아 모든 나라의 기독교 사관이 재인식될 걸로 생각된다.
증거는 고대 사료를 통해 충분히 제시해드릴 수 있다. 서진을 통한 것보다 훨씬 그 이전에 원시기독교가 동진해 들어왔다는 역사적 사실만으로 흥분을 감추기가 어렵다.

기독교 역사유물과 중국의 유물과 풍습을 알 수 있는 물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기독교 역사유물과 중국의 유물과 풍습을 알 수 있는 물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Q. 대만에도 초청받았다고 들었다. 무슨 일로 가시는 것인지?

대만 현지에 사역을 진행하기 위해 가게 됐다.
나는 원래 중국에서 활동하는 선교사이다. 다만 2년 전에 추방당해서 잠시 대만으로 사역지를 옮겼다. 조만간 다시 대륙을 기점으로 실크로드에서의 활동을 기대하고 있다. 
대만은 내가 신학과 목회를 해왔던 곳이어서 익숙한 나라이다. 대만의 화련에 있는 교회 중 선교활동을 잘 하고 있는 교회의 초대를 받게 됐다. 그곳은 주로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고산지역이고, 지진이 잦은 곳이다. 복음화율은 높은 편이지만 신앙 형태가 무속적이어서 정통 복음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교회 개척과 신학교 강의를 비롯해 대내외적으로 다양한 선교활동을 진행하려고 한다.

저작권자 © 투데이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