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24)

초등학교 시절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 만해도 부모님은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친구들하고 노나 보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집에서 성경읽고, 혼자 일어나 새벽기도를 가는 걸 보시더니 조금씩 심각해 지셨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올라가서 제 도시락을 자기보다 더 가난한 친구에게 주고, 예수님 안 믿는 가족들과 친구들, 선생님 얘기하면서 우는 걸 보시더니,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어머니가 하루는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하시는 말씀이 “너, 바보니?”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머니의 말씀이 오히려 약이 되었습니다. 그 말씀을 ‘아, 예수님 믿는 것은 바보가 되어야 하는 거구나’로 이해를 하고 더 바보 흉내를 냈으니, 참 돌아보면 저는 바보였던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랬던 저의 바보 노릇은 예수님 믿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던 아버지 쪽 장씨 집안과 어머니 쪽 김씨 집안에 예수 믿는 바보들이 그득하게 만들었으니 이것 또한 설명하기 난감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바보 측에도 끼지 못하는 바보였습니다. 진짜 오리니절 바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사람이 예수님이십니다.
태생부터 사람들의 손가락질 속에서 태어나, 어려운 시절 정죄하고 고발이 난무한 때에 ‘사랑’이란 이름으로 모든 사람을 끌어안은 사람. 자신도 그것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며, 제자들까지 배반할 줄 알면서도 그들을 끝까지 사랑한 사람. 들어보지도 못한 ‘정치법’과 ‘신성모독죄’로 고소되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십자가에 처형당한 사람.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가면서도 저들을 용서해 달라곡 기도하고, 도망가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소망까지 준 사람. 그는 정말 인류 최고의 바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바보 분으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통째로 말입니다. 이 말도 안 되는 바보 분으로 인해 그 엄청난 로마가 무너졌고, 세상은 이 말도 안되는 바보 분의 사랑으로 인해 말도 안 되게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그와 똑같은 바보가 되었으니,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정말 역사의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실 언제부턴가 제게 조금씩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자꾸 똑똑해지려는 것입니다. 정신 바짝 챙기려고 합니다. 또 저는 우리교회가 바보교회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바보짓을 할까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부모들과 아이들이 똑똑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문 밖에만 나가면 똑똑한 부모와 아이들이 넘쳐나는데 우리라도 바보가 됐으면 합니다. “너, 바보니?” 오늘따라 이 소리가 많이 그립습니다.
글ㅣ장찬영 목사(강남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