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물어 가는 세대 1
창22:20~25:18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창22:20, 개역개정)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아브라함은 밀가가 자식들을 낳았다는 말을 들었다. 밀가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 사이에서 아들들이 태어났는데,(창22:20, 새번역)
브엘세바로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남은 과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이삭의 결혼이었을 겁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혼할 때가 이르면 신부를 찾아야 하는데, 한 군데 정착하지 않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온 아브라함이었기에 혼처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아브라함의 세력 또한 제법 커진 만큼 정치적 이해관계로 이삭과 결혼시키려는 집안들이 있었을 테니 그 또한 경계되는 일이었을 것이고요. 가장 좋은 것은 자기 집안에서 배필을 찾는 것인데,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된데다가 가장 가까운 친척인 롯의 집안이 몰락하고 나니 그마저도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바로 그때, 뜻하지 않게 동생 나홀의 소식을 듣게 된 겁니다. 창세기 11장의 족보를 살펴보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에게 아브라함, 나홀, 하란의 세 아들이 있었다고 되어 있는데, 하란은 일찍 죽었고 데라가 갈데아 우르를 떠날 때에는 아브라함과 하란의 아들인 롯을 데리고 나왔다는 기록이 있을 뿐 나홀의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홀은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고향에 남았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그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죠. 아마도 아브라함은 소식을 가져온 사람에게 나홀의 자식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자세하게 물었을 겁니다. 오랫동안 헤어진 동생의 소식을 알게 된 것도 반갑지만 그 동생의 자녀들 가운데 이삭의 배필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소식이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삭의 결혼 계획은 조금 미뤄야 했습니다. 그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었거든요.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창23:2, 개역개정)
그는 가나안 땅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에서 눈을 감았다. 아브라함이 가서, 사라를 생각하면서, 곡을 하며 울었다.(창23:2, 새번역)
사라가 향년 백이십칠 세로 사망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 오른 때의 구체적인 연도를 알 수 없기에 사라의 죽음이 그때로부터 얼마나 지난 것인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죽은 장소가 브엘세바가 아니라 헤브론인 것을 보면 어떤 기회에 아브라함이 다시 북쪽 헤브론으로 올라오게 된 것 같고 그곳에서 사라가 죽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죽음을 앞둔 사라가 헤브론에서 죽기를 희망해서 일부러 올라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네요. 사라가 이삭을 낳은 때가 구십일세 세였으니 이삭이 서른일곱 살의 청년으로 자란 것까지 본 셈인데, 자식을 낳지 못해 겪은 지난날의 고통을 어느 정도는 보상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헤브론은 아브라함과 사라 모두에게 참으로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그들이 헤브론에 처음 이른 것은 창세기 13장에서였죠. 애굽에서 나온 아브라함이 롯과 갈라선 후 하나님께서 동서남북을 바라보게 하시며 그 땅을 모두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뒤 아브라함이 장막을 친 곳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나무 수풀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며 애굽 이후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헤브론에 사는 동안 롯을 구하기 위해 끔찍한 전쟁에 나서기도 했고, 이스마엘이 태어나기도 했고, 소돔 멸망이라는 재앙을 목격하기도 했죠. 무엇보다 하나님을 직접 대면해 사라가 웃었던 기억, 그리고 그 웃음을 진정한 축복으로 돌려주셨던 기억들이 생생한 땅이 헤브론, 곧 마므레 상수리 수풀이었습니다. 이후 남쪽 그랄 땅으로 이주해 이삭을 낳긴 했지만 아브라함과 사라 두 사람에게 헤브론이 정말 유서 깊은 땅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란을 떠난 뒤 처음 정착했던 세겜 땅을 제외한다면 그들의 여정 중에서 헤브론이 아닌 곳은 애굽과 그랄 뿐인데, 두 곳 모두에서 사라가 남의 아내가 될 뻔한 수모를 겪은 것을 생각하면 헤브론이야말로 두 사람이 가장 행복했던 곳이라고 생각되네요. 그리고 이곳에 돌아와 수명을 다한 사라는 또 다른 선물을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남기게 됩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창23:4, 개역개정)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나그네로, 떠돌이로 살고 있습니다. 죽은 나의 아내를 묻으려고 하는데, 무덤으로 쓸 땅을 여러분들에게서 좀 살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창23:4, 새번역)
당시 헤브론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이들은 헷 족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헤브론에서 장사지내고자 마음먹은 것을 안 헷 족속은 그에게 매장지를 제공할 의사를 보였죠. 23장에 기록된 그들의 태도를 보면 아브라함에게 최대한 정중한 예의를 지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과거 헤브론에서 살았던 때 아브라함의 영향력이 상당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들의 호의를 거절하고 자신이 합법적으로 사라의 매장지를 구매할 수 있도록 요청합니다. 그들이 거듭해서 매장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반드시 값을 치르겠다고 고집해 마침내 소할의 아들 에브론이 소유한 밭과 그 밭에 있는 굴을 은 사백 세겔을 주고 구매하게 됩니다.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창23:17~18, 개역개정)
그래서 마므레 근처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밭과 그 안에 있는 굴, 그리고 그 밭 경계 안에 있는 모든 나무가, 마을 법정에 있는 모든 헷 사람이 보는 앞에서 아브라함의 것이 되었다.(창23:17~18, 새번역)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헤브론 땅을 합법적으로 소유하게 되었고 그곳에 사라를 장사함은 물론, 장차 아브라함 후손들의 공식 가족 묘실로 자리 잡게 되었죠. 뿐만 아니라 이곳을 시작으로 후손들이 헤브론 일대를 근거지로 삼아 살게 되는데요, 애굽으로 이주하기 전의 이삭과 야곱이 헤브론 땅에 거주하게 됩니다(창35:27, 37:1). 사라는 죽음 이후에도 가족들이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왔던 셈이고,아브라함과 그녀의 후손들 또한 죽을 때 그녀의 품에 안식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헤브론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자손에게 준 것은 살인자의 도피성 헤브론과 그 목초지이요 또 립나와 그 목초지와(수21:13, 개역개정)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삼하5:3, 개역개정)
이후 헤브론은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으로 자리 잡습니다. 여호수아 21장은 이곳이 도피성으로 지정되었음을 알려주는데요, 도피성은 의도치 않게 사람을 죽였을 때에 피해 목숨을 건질 수 있도록 지정된 성이었습니다. 뭔가 큰일을 저지르고 엄마에게 달려가는 아이처럼 악의 없이 사고를 낸 사람이 정당한 재판 없이 죽음을 당하는 것음 막아주는 땅이었죠. 또한 훗날의 역사는 헤브론에서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왕까지 헤브론이라는 엄마의 품에서 보호되고 생명을 얻은 것을 보면 이 모든 일이 열국의 어머니 사라로부터 시작되었음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루살렘이 열매 맺고 성취되는 땅이라면 헤브론은 잉태하고 시작되는 땅인 것이죠.
목사님 고맙습니다
마음 가득 감사하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