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은 '청인'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없을 것이다. 국어사전은 '청인'을 청각 장애인에 상대하여, 청력의 손실이 거의 없는 사람을 가르키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 청인은 농아인(청각장애인)들이 청각장애가 없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보이는 장애가 아니기에 장애인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고,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농아인. 그들을 위해 사역하시는 농아인 목사 최삼철 목사와 청인 사모 박경희 사모를 만나봤다.

농아인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무인 카페&가죽 공방 앞에서(농아인 최삼철 목사, 청인 박경희 사모)
농아인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무인 카페&가죽 공방 앞에서(농아인 최삼철 목사, 청인 박경희 사모)

Q. 사역하고 계신 ‘창원농인교회’ 소개와 농아인 사역의 계기는?

창원농인교회는 경남지역과 경산 대구 등에 사는 농아인 약 60여 명 정도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곳이다. 대부분 농아인 학교를 졸업한 이후 사회에 나가서 소통의 답답함을 느끼다가 교회로 오게 된다. 이곳에서는 함께 소통하면서 기쁘게 찬양하고 예배드릴 수 있다.

창원농인교회 예배 현장
창원농인교회 예배 현장

나는 어릴 적부터 유교와 무속신앙, 불교가 가득한 곳에서 살아왔다. 가족이나 청인 속에 섞어 살 때는 늘 열등생이었는데 농아인 학교에 가면서 글을 깨우치고 수화도 배우면서 복음을 전해 듣게 되었다. 당시 농아인으로서 너무나도 비참하고 소망이 없던 나에게 복음은 그야말로 한 줄기 빛과 같았다. 그래서 어두움, 절망 가운데 영적으로 죽어가는 농아인들에게 빛이 되시는 예수님을 전해야겠다는 사명으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Q. 청각 장애인의 어려움과 힘듦이 많은 것으로 안다. 사회와 교회에서 청각장애인의 현실은 어떠한가?

청각장애는 '소통의 부재'로 늘 외로운 장애다. 코로나 19 이전에도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많이 겪으며 살았다. 코로나 19로 인해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니 입 모양을 볼 수가 없어서 더욱 청인과의 소통이 어려워졌다. 수첩에 ‘저는 농아인입니다’라고 적어 글로 소통하려고 해도 많은 청인은 답답해서 말로만 소통하려한다.

CTS와의 인터뷰에서 최삼철 목사가 수어로 말하고 박경희 사모가 통역하고 있다.
CTS와의 인터뷰에서 최삼철 목사가 수어로 말하고 박경희 사모가 통역하고 있다.

수어(수화 언어)는 손의 움직임과 비수지신호(얼굴표정과 몸짓)를 사용해 표현하는 시각언어이다. 70%는 손을 보고 30% 정도는 표정이나 입 모양을 보고 소통을 한다. 마스크 때문에 표정을 읽지 못해 청인과의 대화뿐만 아니라 농아인들 간에도 많은 답답함이 있다. 대답인지 질문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래서 농아인들을 위한 투명 마스크가 있지만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쓰기를 거부한다. 원래 소통이 어려운 농아인이지만 코로나 19 이후에는 표정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경기도 어렵고 사회적으로도 더욱 단절되는 느낌인데 그나마 소통의 창구였던 교회 모임도 다 금지되어 참으로 힘든 시간을 살고 있다.

Q.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청각 장애를 딛고 목사님이 되셨나?

우리 집은 따뜻한 산골이었고, 어머니가 정기적으로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할 정도로 무속신앙과 유교, 불교가 강한 집안이었다. 5명의 누나와 1명의 형이 있었고 이어 내가 태어났다. ‘엄마’, ‘아빠’처럼 간단한 말을 시작하고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때쯤인 3살, 열병을 앓고 농아인이 됐다. 아버지는 아들이 농아인이 된 것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청인처럼 살기 원하셔서 초등학교 6년을 일반 학교에 보냈다. 나는 6년 동안 바보 같이 지냈다.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못 알아들었고, 친구들은 욕하고 밀치고 넘어뜨리고 돌을 던졌다. 형제들조차 나를 따돌렸다. 너무 힘들어서 죽을 생각까지 했다. 나이가 많았던 누나들이 안동에 농아인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나는 농아인 학교에 보내졌다. 그 농아인 학교는 기독교 재단이었다. 그곳에서 수화를 배웠고 수화로 한글을 한자, 한자 외우며 배웠다. 마치 영어를 한 번도 안 들어보고 사물과 글을 비교하며 사진 찍듯이 외워야 하는 힘든 과정이었다. 그제야 주변에 적혀있는 글자를 읽고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글을 읽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고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뜨겁게 만났다. 농아인들은 글을 배우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얻고 노력을 하더라도 글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60% 정도 밖에 안된다. 글을 읽지 못하는 농아인들도 많다. 청인들과 소통이 되지 않고 글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르고 죽어가는 농아인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내가 노력해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청인이 아닌 농아인이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최삼철 목사
청인이 아닌 농아인이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최삼철 목사

하나님은 나를 농아인으로 만드심으로 무속신앙, 유교 사상이 짙은 고향에서 나를 분리하셨다. 남아선호사상이 짙은 삼척 산골 2남 5녀 중 막내아들인 내가 건강한 청인이었으면 어릴 때 고향을 떠나오지도 못하고 교회에 발을 딛는다는 것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그렇게 기가 막힌 방법으로 집으로부터 분리시키시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셨다.

그리고 안동 YWCA에서 수화 교실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수화를 배우러 온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농아인들과 온전히 소통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예뻐서 자주 만나다 보니 지금 이렇게 가정을 이루고 살 게 되었다. 아버지도 청인과 결혼하는 내 모습을 보고 ‘네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 있는가 보다’며 교회를 나오기 시작하셨고 끝까지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고 돌아가셨다. 

Q. 청각장애인 사역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창원농아인교회 사역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농아인 어르신 부부가 교회를 나오셨다. 이학문 할아버지 부부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내가 아파서 혼자 택시를 타고 교회에 나오셨다. 소식을 듣고 신방을 갔더니 심각한 상태셨고 심방 후 얼마 안 되어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 그 이후 이학문 할아버지는 큰 슬픔에 잠겼다. 세상에 아내만이 말이 통했고, 서로 믿으며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아내가 없었다. 유일하게 말이 통하던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할아버지는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셨다. 글을 몰라 TV를 봐도 재미가 없었고 가까운 노인정에 가도 친구를 만들 수가 없었다. 혼자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곤혹이었는데 건강한 장애인이라 국가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술을 먹고 일부러 몸을 아프게 해 병원에 입원하셨다. 병원에서는 끼니를 해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끼니를 해결하고 퇴원해서 다시 술을 드시고 또 입원하고를 반복하셨다. 주일이면 잠시 외출 신청을 해서 환자복을 입고 교회에 오셨는데 그나마 말이 통하는 우리를 보며 '내가 주일만 기다립니다' 하셨던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정말 건강하고 유쾌한 분이었는데 아내가 먼저 하늘나라로 가고는 온전히 혼자가 되어 외롭게 사시다가 2년을 채 못살고 소천하시는 모습을 보며 정말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허망하게 삶을 마감하신 이학문 할아버지를 보고 농아 노인들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엘올람' 가죽공방에서 성경책을 리폼하고 있다.
'엘올람' 가죽공방에서 성경책을 리폼하고 있다.

Q. 실질적으로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어떤 사역을 하고 있나? 그리고 비전은?

농아인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고 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탓에 직업에도 여러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자기계발도 하고 성취감도 느끼며 건강한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 첫 발걸음으로 농아인 1명을 공동사업자로 무인카페&가죽공방을 창업했다. 농아인들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눈으로 배우는 것에 뛰어나고 아름다운 것에 탁월하다. 그런데 가죽공방의 일을 배우고 싶어도 배움의 기회가 없다. 기술을 구체적으로 수화로 전해줄 사람도 없다. 그런데 아내가 가죽공예를 접하게 되었고 농아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100% 수작업으로 해야 하는 일인데 일을 하면 할수록 농아인들에게 적합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시작단계라 수입적인 부분에서 아주 미미하지만, 성경책 커버링(천연가죽), 가방 및 소품 제작, 원데이 클레스 등 다양한 컨텐츠로 일이 많아지면 더 많은 농아인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게 될 것 같아 큰 기대감과 희망을 품고 일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가방이나 소품들을 디자인하고 만들어내면서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과 보람을 느낀다. 

'엘올람' 가죽공방에서 만들어진 제품들
'엘올람' 가죽공방에서 만들어진 제품들
'엘올람' 가죽공방에서 만들어진 제품들
'엘올람' 가죽공방에서 만들어진 제품들

그리고 농아인들은 문화가 있다. ‘수어’라는 농아인들만의 말이 있어서 미국에 있는 한인타운에 문화가 있는 것처럼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 그래서 농아인들이 모여서 소통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쉼터나 센터 사역을 계획하고 있다. 농아인들끼리 모이면 사소한 드라마 이야기, 직장 이야기 등 많은 소통을 하며 장애로부터 해방된다. 경남에 4,600명 정도의 농아인이 있고, 창원에는 300명 정도의 농아인이 있다. 그 농아인들이 장애로부터 해방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Q.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청각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청인 위주의 사회에 속하여 산다는 것은 늘 배제되고 소외되는 느낌을 받는다. 교육을 받을 기회, 정보를 다양하게 접할 기회 속에서도 제약을 받는다.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배움의 제약 속에서 늘 반복되는 생산직 일만을 하며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하겠지만 소통하기 위해서, 함께 일하기 위해서 좀 더 마음을 열고 애써주시면 좋겠다.

교회는 청인과 농아인이 차별 없이 소통 할 수 있도록 '수어'를 제2외국어처럼 교육했으면 좋겠다. '수어'를 조금이라도 배우면 농아인들과 함께 느끼고 마음을 나누고 친구가 될 수 있다. 수어 교실 공문을 많은 교회에 돌리지만, 신청자가 많지 않아서 개설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많은 교회가 수어 교실을 개설하고 많은 교인이 참여해주시길 바란다.

농아인 최삼철 목사와 청인 박경희 사모가 수어로 대화하고 있다.
농아인 최삼철 목사와 청인 박경희 사모가 수어로 대화하고 있다.

요즘 들어 더욱 심각하게 피부로 느껴지는 문제가 농아 노인들의 삶이다. 농아인은 장애인 복지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다. 은퇴하고 갈 곳 없는 연로하신 농아인들이 갈 곳, 쉴 곳이 없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인 것 같다. 곳곳마다 장애인 복지관이 있지만, 그곳을 실제로 이용하는 농아인은 거의 없다. 복지관에 수어 통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도 소통의 부재를 느낀다. 농아인 어르신들이 마실처럼 다닐 수 있는 곳, 즐겁게 소통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쉼터를 만들고 싶다. 이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우리를 성가셔하는 눈빛 속에서 더 이상 자존감이 무너지고 의기소침해지지 않도록 따뜻하게 바라봐주시고 사랑으로 안아주시면 우리는 더 이상의 것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우리들의 선한 이웃이 되어주시고 동등한 위치의 친구가 되어주시는 것을 간절히 바란다. 

저작권자 © 투데이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