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생활
초대교회는 가난한 사람과 병자를 돌볼 수 있을 만큼 풍족하지 않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구제하는 일에 열심이었다. 바울사도는 주일마다 구제헌금을 하고 있음을 진술하고 있다(고전 16:1-2). 교회의 부인들은 이 자선에 참가해서 의복이 없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옷을 만들기도 하였다(행 9:36-41). 사도행전 2:44-45과 4:32을 보면 “필요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라는 진술이 사회주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이것은 일시적인 조치였다는 점이다. 예루살렘교회에서는 지방에서 올라와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귀향하기 전에 반드시 복음을 영접하는 데에 전도의 방편으로 유무상통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자발적인 봉사와 헌신’이었다는 하는 사실은 더욱 중요하다.
교회는 노예제도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일은 없었지만 신자인 주인과 노예에게 그들이 신자로서 형제라는 것을 주지시키심으로서 간접적으로 노 예제도를 근절하는데 공헌하였다. 바울의 편지를 받은 빌레몬이 오네시모에게 자유를 주었을 것이라는 인상을 빌레몬서에서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바울사도는 신자에게 무조건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르치지 않았다(고전 10:20-33). 신자들은 우상숭배나 이교적 불륜 같은 일에는 일체 완전히 떠나있어야 할 것을 권면하였다(고전 6:12).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모든 일을 행하지 않는다는 원리(고전 6:20; 10:31)를 지켜야만 했다. 그 같은 경건생활은 이교의 극장과 경기장과 투기와 신전에 가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러한 성도들의 삶은 세속사회를 멀리하게 되었고 로마제국으로부터 여러 가지 오해를 받아 신앙박해를 받게 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2) 교회의 조직과 예배의식
예루살렘에서 처음 시작된 교회는 성령의 지혜와 능력에 의해 지도 받는 사도들의 인도로 다스려졌다. 정치구조와 조직은 필요에 따라서 발전되었다. 장로들의 존재와 장립된 사실에 관해서 기록된 최초의 참고사항은 사도행전 11:29-30에 나온다. 장로직은 오순절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 신자들의 예배를 위한 성회에서 유대회당 제도를 모방하여 시작한 듯하다. 신약에서는 장로들을 감독들이라 불렀고 감독들은 장로들이라고 불렀다. 신분은 동일하였다.
장로직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대감독직의 발생이유는 다음과 같다.(윌 리스턴 워커, 『기독교회사』, 앨리스터 맥그래스, 『한권으로 읽는 기독교』 )
① 하나의 회의가 소집되고 의사를 진행해 나갈 때 한 사람의 지도 적 입장에 있는 존재가 요구되었다.
② 행정에 관해서는 교회 권위의 중심체가 요구되었다.
③ 교회에 대한 박해의 시작은 교회 지도자로 하여금 교회와 신자들을 위해 말하고 행동하도록 지도자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④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이단의 문제는 정통교회의 교리를 명확히 하고 지킬 수 있도록 권위있는 지도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집사직은 사도행전 6장의 일곱 집사의 선출이 그 시작으로 보인다. 헬라파 과부들을 돌보아야 할 필요에 따라서 집사를 택하여 세웠다. 집사는 사도를 도와 직무를 맡도록 세움을 입었다.
성도들은 오순절 이후 매일같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으나 점차 날을 정하여 모이게 되었다. 공적인 예배 때는 설교와 기도와 찬송과 신앙고백 뒤이어 성례가 따랐다. 설교는 구약의 성취를 강조했다.
신약설교의 핵심적 성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성취의 시대가 시작되었다(행 2:16, 3:18).
② 이 성취는 메시야 예수의 생애, 죽음 및 부활에 의해서 입증이 되었다(행 2:30, 5:30, 10:39).
③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는 주(主)로 높아지셨다(행 2:33-36, 3:13, 4:11).
④ 교회 내의 성령의 임재는 그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증표이다(행 2:44, 5:32).
⑤ 그리스도는 심판자와 구세주로서 다시 오실 것이다(행 3:20이하, 10:42, 17:31).
⑥ 회개에의 호소, 죄사함 및 성령의 은사와 구원의 확신에 메시지가 있었다(행 2:38, 3:19, 1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