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물어 가는 세대 2.
창24:4~25:18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창24:4, 개역개정)
나의 고향, 나의 친척이 사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나의 아들 이삭의 아내 될 사람을 찾겠다고 나에게 맹세하여라.”(창24:4, 새번역)
헤브론에 사라를 장사하고 난 후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혼시키는 일을 서두릅니다. 일전에 소식를 알게 된 나홀 집안에서 이삭의 신부를 고를 참이었죠. 아브라함이 직접 그 먼 길을 여행할 수 없는데다가 마땅히 대신할 사람도 없기에 이 일은 그의 늙은 종에게 주어집니다. 아쉽게도 창세기는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고 있어서 그저 종이라고밖에는 쓸 수 없네요. 종은 아브라함을 대신해 신부를 고르고 결정할 권한까지 부여받고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 어려운 과제를 멋지게 해내죠.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창24:12, 개역개정)
그는 기도하였다. “주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오늘 일이 잘 되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십시오.(창24:12, 새번역)
종은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고 나홀의 집안사람들을 향해 때론 겸손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며 어려운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되죠. 주인공인 신부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손녀, 곧 나홀이 밀가와 결혼해서 낳은 브두엘의 딸 리브가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워낙 노년에 아들을 낳았기에 동생 나홀의 손녀와 연배가 비슷했던 것이죠. 늙은 종은 리브가와 그녀의 오빠 라반, 아버지 브두엘 등을 차례로 만났고 우여곡절 끝에 리브가를 데리고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리브가가 일어나 여자 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그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그 때에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였음이라(창24:61~62, 개역개정)
리브가와 몸종들은 준비를 마치고, 낙타에 올라앉아서, 종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를 데리고서, 길을 떠날 수 있었다. 그 때에 이삭은 이미 브엘라해로이에서 떠나서, 남쪽 네겝 지역에 가서 살고 있었다.(창24:61~62, 새번역)
종이 리브가를 인도한 곳은 아브라함이 있는 헤브론이었는데요, 창세기는 그녀를 기다리는 이삭이 브엘라해로이로부터 올라와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이곳은 헤브론은 물론 브엘세바를 기준으로 해도 상당히 남쪽 지방으로, 과거 사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던 하갈이 도망쳤다가 하나님을 만나 이스마엘의 탄생과 그의 미래에 대한 예언을 들은 곳이었고, 장성한 이스마엘이 터전을 잡은 바란 광야와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죠. 창세기는 어떤 연유로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 있었는지에 대해 기록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브라함이 여전히 헤브론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아, 장성한 이삭이 아브라함을 떠나 남쪽 지역에서 독립해 살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또한 이스마엘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을 것으로 생각되고요. 이삭이 독립생활을 하고, 뒤이어 결혼까지 함으로써 아브라함 가문의 주도권은 다음 세대인 이삭에게로 확실히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표현해 보자면 아브라함이 족장 직에서 은퇴한 셈이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창25:6, 개역개정)
첩들에게서 얻은 아들들에게도 한 몫씩 나누어 주었는데, 그가 죽기 전에 첩들에게서 얻은 아들들을 동쪽 곧 동방 땅으로 보내어서, 자기 아들 이삭과 떨어져서 살게 하였다.(창25:6, 새번역)
그런데 아브라함, 노년에도 삶의 의욕이 사라지지 않았나 봅니다. 그두라라는 이름의 여인을 후처로 두어 여섯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니 임종시에는 이스마엘과 이삭까지 총 여덟 명의 아들을 둔 셈이죠. 아들이 많아지게 되면 재산 분배에 대한 분쟁의 위험이 생길 수 있음을 이스마엘의 경우로 이미 학습이 되어 있던 아브라함은 그가 아직 살아 있을 때 후처가 낳은 여섯 명의 아들에게 각기 재산을 나누어 주어 이삭을 떠나게 했습니다. 이스마엘이 서쪽 애굽을 향해 간 것과는 반대로 이들 그두라의 여섯 아들은 동쪽으로 길을 떠났고, 그곳에서 각기 다른 여섯 부족의 조상이 되죠. 그러니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버지라고 이름지어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성취된 셈입니다.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창25:8~9, 개역개정)
아브라함은 자기가 받은 목숨대로 다 살고, 아주 늙은 나이에 기운이 다하여서, 숨을 거두고 세상을 떠나, 조상들이 간 길로 갔다. 그의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막벨라 굴에 안장하였다. 그 굴은 마므레 근처, 헷 사람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다.(창25:8~9, 새번역)
아브라함은 향년 백칠십오 세로 하나님 곁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이 그의 임종을 지켰고 그가 헷 사람들로부터 합법적으로 구매한 막벨라 굴에 장사되어 사라의 곁에 묻히게 되었죠. 아브라함의 죽음은 창세기가 기록하는 첫 번째 족장 시대가 마무리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창세기 12장부터 시작된 아브라함의 여정이 25장에서 드디어 마무리 된 것인데요, 지금까지 지켜본 아브라함의 삶은 한 편의 인생 성장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 아브라함의 믿음은 정말 보잘 것 없었죠. 의욕은 인정해줄만 했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조금씩 성장해갔고 하나님은 그때마다 그를 조금 더 높은 곳에서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 그대로 열국의 아버지, 믿음의 조상이 되기에 이르렀죠. 비록 아브라함의 눈에 보이는 자손은 동쪽으로 떠난 후처의 아들을 제외하면 이스마엘과 이삭 두 사람에 불과했지만 그는 그들의 모습에서 하늘의 별처럼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허다한 생명들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믿음의 관점에서는 우리들도 그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고요.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창24:7, 개역개정)
주 하늘의 하나님이 나를 나의 아버지 집, 내가 태어난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나에게 말씀하시며, 나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이 땅을 너의 씨에게 주겠다’ 하셨다. 그러니 주님께서 천사를 너의 앞에 보내셔서, 거기에서 내 아들의 아내 될 사람을 데려올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이다.(창24:7, 새번역)
이토록 오랜 성장기를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써내려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창세기 24장에 기록된 아브라함과 늙은 종의 대화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종에게 자신의 친척집에 가서 이삭의 신부를 찾으라고 말하자 종은 만약 그 여인이 자신을 따라오지 않겠다고 하면 이삭을 데리고 가서 직접 대면하게 해도 좋을지를 묻죠. 그에 대한 아브라함의 대답이 24장 7절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미래가 곧 자신의 과거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던 모든 사건들의 연장선에 있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모든 시간 동안 자신을 이끌어주셨던 하나님이 이삭의 미래 또한 인도해 주실 것임을 믿었던 것이죠. 이것이 아브라함 믿음의 실체입니다. 그는 언제나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줄 알았습니다. 하란을 떠날 때, 롯을 구하러 전쟁에 뛰어들 때, 백세가 되어서 자기 몸에 할례를 받을 때, 하나님 앞에서 소돔을 살려달라 간청할 때,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을 향할 때, 아브라함은 언제나 믿음의 걸음을 내딛었고 그때마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말씀하신 하나님, 약속을 주신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는 그의 믿음은 마침내 그를 하늘로 날아오르게 했습니다.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하나님이 아브라함만큼 친근하고 가깝게 대하신 사람을 보기 힘듭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친구 같았고, 피조물이면서도 동역자처럼 여겨졌죠. 그는 혼자 날아올랐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 사라, 하갈, 이스마엘, 이삭, 그두라와 그녀의 여섯 아들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함께 날아오를 수 있는 믿음의 유산을 남겨 주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유산은 다음 세대의 과제가 되었죠. 이제 이삭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펼치려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