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간 어려운 교회 수습, 한국교회와 성도의 회복 위해 헌신
이철 감독회장, "환경에 분노하지 말고, 하나님만 신뢰할 때 소망 생겨"
코로나 상황, 우리의 잘못과 부족함 깨달을 때 신앙의 본질 회복할 수 있어

한국교회의 주요 교단 중 하나인 기독교대한감리회를 이끌어가는 이철 감독회장은 목회자의 자녀로 성장, 지금까지 40여 년 목회 여정을 어려운 교회에 부임해 수습하고 회복하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감당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라고 고백하는 이철 감독회장. 영적인 통찰력으로 교단을 화합과 회복으로 이끌어가는 감독회장의 리더십과 비전을 만나보자.

기독교대한감리회 이철 감독회장
기독교대한감리회 이철 감독회장

| 삶의 시선

시골 목회하는 아버지, 불만이 가득한 힘든 유년시절
고등학교 시절 뜨거운 성령 체험 후 목회의 길 결단
성령체험 후, 인생에서 가장 귀한 일은 '목회'라고 생각

Q.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계기는?

아버지가 목회를 하셨기 때문에 나는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시골에서 힘들게 목회하시다 보니 우리 가족은 극심한 가난을 경험하면서 컸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예수 믿으면 축복받는다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였고, 부모님의 고생하시는 모습과 나의 처지를 볼 때 이해가 되지 않아서 늘 불만이 가득한 생활을 했다. 

고등학교를 대전에 있는 미션스쿨을 다녔는데 2학년 때 학교에서 열린 가을 영성수련회에 참석을 했다. 하지만 늘 마음에 불만이 있다 보니 집회에서 은혜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집회가 끝나고 토요일 저녁 교회에서 기도하는 중에 강력한 성령체험을 했다. 내 인생의 결정적인 터닝포인트였다. 성령체험 후에 아버지에 대한 이해가 180도 달라지고 신앙생활이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신학교를 가기로 결심하게 됐다.

Q. 어떤 성령체험을 했나?

학교 영성수련회에서 탐스 선교사님이 강사로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셨는데 자신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친구와 교회에 가서 기도하기로 했다. 나와 같이 목회자 자녀였고 어려운 형편에 불만이 많은 친구였다. 열심히 회개하고 기도했는데 자정이 돼도 아무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하자고 했고 기도하던 중에 성령의 불을 받는 일이 있어났다. 방언도 받게 됐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도하다가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성도님들이 새벽기도를 드리러 들어오시고 계셨다. 성령에 사로잡혀서 기도한 그날 밤의 신비한 체험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문을 열고 나왔는데, 오물들로 냄새나던 작은 하천에서 올라오는 수증기에 나무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다. 산들이 박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직접 경험했다. 지금도 잊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한다. 세상을 보는 눈이 새로워졌다. 아버지를 보는 시각도 변했다. 숱한 어려움 가운데 목회자로 살아가시는 게 위대해 보이게 됐다. 그날부터 내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Q. 목회자의 길을 걷겠다고 결단한 계기는?

성령체험을 하기 전까지는 힘들게 사역하시는 아버지를 무능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할 일이 없어 이걸 하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런데 은혜를 받고 보니까 우리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귀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리고 ‘나는 평생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야겠다’하는 단순한 생각이 내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아버지의 힘든 목회 모습을 보며 불만이 많은 성장기를 거쳤지만, 성령체험 후 복음 전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했다는 이철 감독회장
아버지의 힘든 목회 모습을 보며 불만이 많은 성장기를 거쳤지만, 성령체험 후 복음 전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했다는 이철 감독회장

| 사역의 시선

목회 여정의 2/3를 어려운 교회 수습하는데 헌신
한국교회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 확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소통하는 달란트 받아

Q. 지금까지 목회 중에 보람을 느낀 순간이나 특별히 기억나는 순간은?

나는 40년이 넘는 목회 여정 중에 2/3 정도의 기간을 어려운 교회를 수습하는 데 보냈다. 고생스러운 시간도 많았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님이 나의 성품이나 삶을 통해 수습하는 데 사용하셨구나 생각한다. 교회가 건강하게 회복되고 성도들이 건강하게 회복되는 것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고, 숱한 고생에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나를 사용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Q. 내 삶을 돌아볼 때 어떤 삶이었다고 생각하나?

나는 목회자의 자녀로 자랐기 때문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다. 목사님 가정에서 자라면서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얘기도 못하고 학교를 가도, 집에 와도 뭐든지 목회자의 자녀로 흠이 없어야 된다는 부담감 때문에 규제에 얽매이는 생활을 했다. 평생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못했다. 넥타이도 좀 풀고 조금 자유롭게 설교하고 싶어도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생각할 수가 없고 교인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평생 내 자유 보다 교인들이 상처입지 않도록 하는데 맞추며 살았다. 규격에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아오는 것으로 평생을 맞추어 온 것이다.

그래서 나의 자녀들에게는 집에 얽매이지 말고 밖으로 나가서 자유롭게 살라고 했다. 그런데 결국 자녀 둘이 목회자가 됐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에 하나님께서 일하셨다. 내 마음대로 내가 선택하며 살아온 것 같은데 뒤돌아보니 내 마음대로 한 것이 아닌 것 같다. 하나님이 이끄셨다. 돌이켜 보니 모두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다.

Q.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으로 섬기고 있는데 특별한 사명이 있을 것 같다.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보이는 외적인 상황의 어려움보다 한국교회 내적 타락이 세상에 드러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신앙 회복이다. 진짜 예수님을 잘 믿는 신앙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신앙 회복의 첫째는 ‘자기 부족’을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분노해야 될 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가 잘못했다는 것과 부족했다는 걸 깨닫고 인정해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실 것이다. 이런 시대적 상황 가운데 부족함이 많은 나를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감독회장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나의 부족을 깊이 절감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를 위해 쓰시려고 하나님께서 부르셨다고 생각한다.

Q.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신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지금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겪고 있고 또 한국 교회가 지탄을 받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젊은 세대들을 많이 잃어버리고 있다. 어른들은 어려움이나 박해가 있어도 대체로 잘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지금 교회는 젊은 사람들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교회가 가지고 있는 건물이나 조직으로는 젊은 사람들이 신앙의 진정성을 못 느낀다. 그들이 보는 것은 기독교인의 성숙과 진정성이다. 그래서 자신들 보다 더 높은 인격이나 영성을 가진 신앙인을 기대하는데, 기독교인들이 상식 이하거나 수준이 낮다면 더 이상 교회를 향한 매력이 생길 수 없다.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지금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가 이토록 비판받게 하시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돌이키지 않으면 세워놓은 건물도 조직도 아무 쓸모가 없다. 이전에는 교회가 퍼포먼스를 많이 했지만 이제는 그런 외적인 행사로는 어렵다. ‘개신교는 교인들이 이중적인 것 같다’거나 더 심하게 말하면 ‘사기성을 가진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겨나는 것 같다. 기독교인들이 아는 것은 많고 말은 잘하는데 하는 짓은 이권에 눈이 멀어 있는 모습을 지적하는 시선일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성도의 삶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것이지 말을 통해서가 아니다. 이제는 마지막 신앙 회복을 하고 인격과 삶에서의 공공성도 수준 높게 살아서 다음 세대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우리는 전도를 하거나 선교를 할 때 ‘몇 명이 모이냐, 어디에 했냐’ 이런 것을 따졌지만,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신앙이 아니라 사업으로 보일 것이다. 숫자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신앙만이 답이 된다. 다음 세대에 신앙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어야 교회가 살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Q.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어려움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모임도 풍요롭게 할 수 있었던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기 어렵다. 앞으로 더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대안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안이 되는 방법은 혼자 있든지, 여럿이 있든지, 소그룹으로 가든지 간에 진실한 신앙인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예수님을 진짜 따르는 것이다. 예배가 삶이라는 사실을 삶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는 세대가 왔다. 가정예배를 드리든 아니면 소그룹으로 모이든, 혼자 떨어져 있어도 예배는 드려야 되는 거니까. 사마리아 여자를 보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이곳에서도 말고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드리는 사람을 찾으신다’고 하셨다. 장소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개인적인 만남과 교제와 예배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다. 

Q.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달란트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하나님은 나에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잘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을 주셨다. 누구든지 틀린 이야기를 해도 ‘아 그건 틀렸다’고 바로 말하지 않고 듣고 나서 생각해 보고,  가능하면 서로 소통해서 맞는 것부터 맞춰 가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갖도록 해주셨다. 수용성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최고의 달란트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중인 이철 감독회장
인터뷰 중인 이철 감독회장

| 생각의 시선

복음 전파의 가장 큰 장애물은 탐욕, 교회를 무너지게 만들 수 있어
힘을 드러내기 보다 복음을 아낌없이 주는 본질로 돌아가야
아버지의 흔들리지 않는 목회와 기도 모습에 가장 큰 영향 받아

Q. 요즘 많이 생각하는 주제는?

마태복음 16장 이야기를 마음에 많이 두고 있다. 예수님께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해 말씀하시니까 베드로가 그런 소리 하지 마시라고 항변하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하셨다. 바로 전에 신앙고백을 하던 베드로와 지금 예수님을 막고 있는 베드로 사이에는 딱 하나의 차이가 있다. 바로 이권이다. 예수님의 사역을 자기 이권과 개입시킨 것이다. 예수님은 그 사역을 하나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셨다. 인간의 탐욕을 마귀가 공격해서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는 교회를 탐욕의 교회로 바꾸면서 교회가 무너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권이라는 것이 선교에 동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이권이 선교의 가장 큰 방해물 중의 하나가 됐다. 재산도 많이 있고 무엇인가 많이 있으면 그전에는 많이 모아서 선교하자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덫이 된 것이다. ‘아, 마귀는 인간을 너무 잘 알고 있구나’ 일단 이권에 개입이 되면 입은 살아 있지만 탐욕으로 모든 상식을 뛰어넘게 되어 있다. 그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라고 생각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일을 해 왔는가? 복지, 교육, 예술 등 수많은 분야에 교회만큼 한 데가 없다. 그런데 지난날의 그 많은 것들을 세상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언제부터 일까? 교회가 정치그룹에 동참하면서부터 교회도 하나의 세력처럼 바뀐 것이다. 우리가 진짜 하지 말아야 될 일이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세력화되면 힘이 생기는 게 아니고 무너졌다. 교회가 힘을 나타낼 때는 오히려 소멸했고, 십자가를 지고 희생하고 순교했을 때는 교회가 살아났다. 신앙생활은 신앙생활로 끝나야 된다. 교회를 정치 세력으로 끌고 가서는 안된다. 영향력을 행사해서 아주 좋을 것 같지만, 결국은 그것 때문에 한국 교회가 무너지는데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신앙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이제는 여러 가지 이권에 개입되는 것을 놓아야 한다.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지만 지금부터라도 이 본질을 알고 실천해야 한다. 힘을 드러내려 하지 말고 사랑하려고 하고 복음을 아낌없이 주는 본질로 돌아가 한다.

Q.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에 가장 영향을 기친 것은?

나는 우리 아버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시대 상황이나 정치 등에 영향받기도 하고 어려운 농촌 목회를 감당하다 보면 여지없이 흔들릴 수 있는데, 나의 아버지는 흔들림 없이 평생 목회를 감당하셨다. 아버지는 일관되게 ‘우리 가문은 목회자가 되어야 된다’고 하셨다. 목회자의 위치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고 ‘복음을 전해야 된다, 이게 생명이다’라고 하는 데 대해 전혀 흔들림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유명한 학자의 말이나 훌륭한 목회자도 많지만 나에게는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제일 많이 받았다. 가치관은 복음이고 기도하시는 것이 삶이었다. 지금 나에게 높은 학문이나 신학보다 아버지께서 피를 토하며 하신 기도가 더 깊고 진하게 남아있다.

사람이 의롭고 우월하다는 생각이 가장 큰 위험이라고 지적하는 이철 감독회장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주님을 신뢰하면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이 의롭고 우월하다는 생각이 가장 큰 위험이라고 지적하는 이철 감독회장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주님을 신뢰하면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 세상의 시선

성경에는 절망이 없고, 예수님은 이 세상을 끝까지 사랑하신다
영원한 생명 주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신앙의 본질 회복해야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셔 우리는 믿음으로 바라봐야 승리

Q. 당신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성경에는 절망이 없다. 성경 어느 곳에 ‘안된다’거나 ‘틀렸다’, ‘그만하자’고 하는 데가 있는가? 나는 종종 묻는 것이 ’인간에게 무슨 희망이 있다고 오셔서 구원하겠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까’이다. 나는 조금만 억울해도 속에 북받쳐서 감당을 못하는데, 예수님은 한마디도 안 하셨다. 우리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니고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신 것이다. 성경에는 절망이라는 게 없다. 예수님은 세상을 절망적으로 보시지 않고 이 세상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마태복음 24장에 ‘종말이 언제 오는가’, ‘세상 끝에는 어떤 일이 있어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님의 결론은 ‘이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셨다. 그 말씀은 복음이 전파되고자 하는 희망을 말씀하신 것이지 절망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주님은 우리 인간과 세상에 대해서 궁극적인 영원한 희망이시다. 지금 상황은 어렵지만 기독교인은 ‘여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이 일하신다’라고 말해야 한다. 인간에게 항상 즐거움만 있으면 사람이 변할까? ‘어려움도 즐거움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니까 여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다’라고 믿는 그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의 본질이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 생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영원한 생명이다.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이미 답이 있는 것이다.

Q. 성도들이 앞으로 어떤 시각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코로나 사태가 난 이후로 설교할 때 ‘우리는 절망을 얘기해선 안 된다’고 반복해서 설교했다. 왜냐하면 여기에도 하나님 뜻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교회를 향해서 비난하는 사람들이나 시대의 어려움을 놓고 분노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 분노하게 되면 변화가 없다. 그러니까 주신 상황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이를 통해서도 인도하실 것이라고 신뢰하고 걷는 것이다. 이때에 맞는 새로운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창조적인 생각은 하나님을 신뢰할 때 생기는 것이지 분노하면 생길 수 없다.

Q.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나에게 가장 큰 위험성은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의롭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가치가 없어진다. 우리는 스스로 의로울 수가 없다. 우리는 자신이 의로울 수가 없다는 것만 인정해도 많은 화해가 일어난다. 의롭다고 생각해서 정죄하고 남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월감’이다. 그것이 가장 무서운 적이라는 것을 성도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우리가 왜 서로 대화가 안 되느냐 하면 바로 이 두 가지 때문이다. 자신의 의견을 절대화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화평이라는 것의 결론은 자신을 내려놓으신 것인데 기독교인들이 자꾸 자기를 의롭다고 내면에 벽을 쌓아가는 것 같아서 제일 걱정이다.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하신 말씀이 요즘에 큰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된다. 지금 세상을 보면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는 것이 맞는가, 침묵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데, 아니다. 하나님은 섬세하게 일하고 계시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일하고 계신다. 그것을 믿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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