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마태복음 26:52-54)

사람들은 누군가와의 경쟁 또는 싸움에서 이기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 그리고 모든 힘을 동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경쟁과 싸움에는 이기는 경우도 있지만 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는 경우를 생각해 볼 때 두 종류의 성격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정말 이기고 싶은데 이길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지는 경우가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일부러 져주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후자의 경우처럼 얼마든지 상대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일부러 져주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끝내 십자가에서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을 내어 놓으시고 피를 흘리고 죽으심으로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처형을 앞에 둔 예수님께서는 제자인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 즉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결단의 기도를 하십니다.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가롯 유다의 배신과 대제장들과 장로들의 음모로 인하여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큰 무리를 만나게 됩니다. 이때에 의협심이 강한 베드로가 칼로 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떨어뜨리자 예수님은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이 꼭 가슴에 새겨야할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마태복음 26:53)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여서 열 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하여 칼과 몽치를 가지고 자신을 체포하러 온 군인들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들에게 순수히 체포를 당해 주십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져주시는 예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들에게 져주십니까?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마태복음26:54)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말씀, 즉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게 하려고 일부러 군인들에게 져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일부러 져주신 장면 또 하나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손과 발에 못이 박혀서 십자가에 달려 큰 고통 중에 있을 때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기 머리를 흔들며 모욕하면서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마태복음 27:40)
또한 대제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도 예수님을 희롱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마태복음27:41)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십니다. 때문에 얼마든지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자신을 조롱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내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시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성도와 교회는 하나님의 뜻 즉 영혼구원을 위해서 권리와 주장을 내려놓고 겸손과 말씀실천으로 이웃에게 져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체포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끝내 내려오지 않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가슴속에 깊이 새기고 더 큰 가치를 위하여 져주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글 | 김광중 목사(장호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