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던 학창시절, 신앙으로 버텨
기도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은혜 놀라워
불신자에게도 마음의 감동을 전하는 교회가 되길 소망해

대부분의 교회처럼 주택가가 아닌 남다른 곳에 예배당을 설립하는 교회가 있다. 현재 울산시 중구의 한 상업지부에 건축 중인 이 교회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건물을 사용하고자 한다. 교인들과 함께 ‘죽으면 죽으리라’ 는 각오와 결단을 하며, 새 예배당을 짓고 있는 높은뜻교회(침례) 김온유 목사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김온유 목사가 사전 인터뷰에 답하고 있다.
김온유 목사가 사전 인터뷰에 답하고 있다.

Q. 목회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다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목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특히 초등학교 4학년 때 전신 4도 화상을 입게 된 이후 더욱더 소망했다. 당시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교회 인근 공원에 불법으로 적재되어 있던 시너(thinner) 드럼통이 갑자기 폭발하며 사고를 당했다. 구급차에 실린 채 울산의 규모 있는 여러 병원을 들렀지만, 치료가 어려워 결국 부산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야 했다. 1986년 당시 내가 받을 수 있는 치료는 소독뿐이었고 나와 어머니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소독제로 가득 찬 욕조에 들어가는 것은 말도 못 할 큰 고통이었다. 몸 안에 장기들도 다 손상되어서 온몸이 부어있었고, 생존 가능성은 2%에 불과했다. 담당 의사조차 어머니께 '일주일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라고 말했지만, 하나님께서 기적같은 은혜로 나를 살리셨다.
기쁨은 잠시, 치료 기간은 생각보다 길었고, 그 후로도 외롭고 힘든 시간이 시작되었다. 학창시절 내내 온몸에 감긴 붕대로 화장실을 편하게 갈 수 없었고, 소풍이나 수학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몸에 바른 연고 냄새로 내 자리는 당연히 교실 맨 뒤였다. 점심시간이면 얼굴에 감았던 붕대를 풀고 밥을 먹어야 했는데 반 친구들 중 나와 같이 식사하는 친구는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피해 화장실로 갔고, 거기서 어머니께서 싸주신 도시락을 풀어야 했다. 어머니께서는 매일 도시락 젓가락에 성경 구절을 적어서 돌돌 말아주셨다. 비록 힘든 시절을 보냈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목회적인 사명을 주셨기에 나를 살리셨을 것’ 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내 편이라고 생각하며, 신앙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리고 ‘목회자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며 열심히 노력했고, 지금은 높은뜻교회(침례)를 개척해 목회를 하고 있다.

김온유 목사와 높은뜻교회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출처=높은뜻교회)
김온유 목사와 높은뜻교회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출처=높은뜻교회)

Q. 높은뜻교회는 어떻게 출발하게 되었나?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침례신학대학교에 진학했고, 21세에 교육 전도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로 13년간의 부교역자 생활을 거쳐 2006년 포항침례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그곳에서 1년간 부목사로 섬겼다. 2007년 1월 6일, 울산 공업탑 로터리 부근에 있는 상가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처음에는 생활비와 교회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근처 아파트 출장 세차를 하며 사역을 했다. 출장 세차 업무의 특성상 새벽부터 일을 해야 했고, 종종 새벽 기도를 드릴 수 없었다. 대신 밤에 교회로 돌아와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20개월 정도 지나니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보내주시기 시작했다. 개척 당시 송출해오던 방송 설교를 듣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리고 매일 밤 9시부터 12시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심야 기도회’를 열었다. 감사하게도 매 기도회마다 간증이 넘쳐났다. 예배를 통해 다양한 병이 치료되었다. 그렇게 성령의 역사와 기적이 끊이지 않았고, 교회가 점점 부흥됐다.

Q. 특별히 선교에 힘을 쏟고 있다고 들었다.
선교가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든지 선교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목표다. 그래서 교회의 상황이 여유롭지 못해도 항상 해외 선교에 힘써 왔다. 우리 교회를 확장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선교 현장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정의 60% 이상을 모두 선교에 사용한다. 대표적으로 2013년 필리핀 타클로반에서 했던 사역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 '하이옌'이라는 태풍이 타클로반 지역을 강타했고, 그로 인해 12,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우리 교회는 우물을 파서 식수를 제공하고, 선교 헌금을 보내 교회를 건축하기도 했다.

김온유 목사가 안수기도를 하고 있다.(@출처=높은뜻교회)
김온유 목사가 안수기도를 하고 있다.(@출처=높은뜻교회)

Q. 이와 동시에 교회도 점진적으로 성장한 것처럼 보인다.
해를 지나며 교육관과 성전을 확장. 이전할 수 있었다. 재작년, 중구에서 교회 건축을 허가를 받아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울산 120만 인구 중 기독교 인구가 10%에 못 미친다. 그중에서 개신교, 특히 침례교단은 더욱 열세인 현실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개척한 지 14년 즈음에 예당을 위한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이고, 은혜이다.

Q. 현재 교회 건축이 진행 중인데, 여러 어려움이 있다고?
2019년, 성도들과 함께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와 결단으로 교회의 토지를 구입하고, 건축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건축을 위해 시공사를 선정하고, 착공하면서 큰 위기가 찾아왔다. 시공사의 채무로 건축공사가 중단된 것이다. 이로 인해 법적인 절차도 밟아야 했다. 은행 이자 등으로 재정적인 압박에 시달렸고, 시공사 대표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예배당 공사를 멈출 수 없었기에 시공사 업체와 화해를 하며 문제를 마무리 짓고, 6개월 만에 공사가 재개됐지만 이번에는 골조 하도급업체에서 문제를 일으켜 교회가 큰 금전적 손해를 입게 되었다.
이 시련들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또 다른 연단이라 여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감당하고 있다. 이 위기 또한 더 큰 신앙으로 설 수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교회가 풍전풍화의 위기 앞에 놓여 있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 교회를 통해 이 땅 곳곳의 어려운 이들을 살려내는 데 사용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Q. 건축이 마무리되면, 어떤 사역을 펼칠 예정인가?
‘목회자'라는 소명의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늘 꿈꾸던 교회가 있다. 성령의 역사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교회, 십자가 중심으로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며 죽어가는 영혼이 살아나는 교회, 혼탁해져가는 이 시대의 모양에 요동치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경외하는 교회, 순종함으로 전진하며 승리하는 교회, 그리스도의 향기와 열매가 나타나는 교회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특별히 울산을 섬기는 교회, 불신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최근에는 교회에 대한 인식이 정말 부정적이다. ‘이기적’ 이라는 평가를 많이 듣는다. 그래서 ‘아, 요즘 시대에 저런 교회도 있구나.’라며 마음의 감동을 줄 수 있는 교회가 되길 꿈꾸고 있다. 현재 짓고 있는 건물은 총 12층인데, 그중 절반은 교회에서 사용한다. 그리고 교회 4층에는 노유자(老幼者) 시설을 마련하고자 한다. 지역 주민들 가운데 연로하신 분들이 낮 시간 동안 지내실 수 있는 ‘노인 유치원’이나 ‘노인 주간복지센터’도 운영할 예정이다. 이를 시작으로 가정과 지역사회가 여건이 되지 않아 돕지 못하는 구석구석을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밝혀 나가고자 한다.

높은뜻교회 건축 완공 시안(@출처=높은뜻교회)
높은뜻교회 건축 완공 시안(@출처=높은뜻교회)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교회와 나는 그동안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가장 먼저 기도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고, 그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정말로 놀라웠다. 지금도 하나님께 “내 생명을 가져가셔도 좋으니 이 교회를 세워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교회가 세워지는 궁극적인 목표는 '영혼 구원'이다. 독자분들도 우리 교회가 건축 중에 어려움을 당한 것만 생각하지 마시고, 이 교회가 세워져 울산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살릴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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