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울의 회심

탈무드의 전하는 바에 의하면 위대한 랍비 가말리엘의 제자들 가운 데 '학생'이라고만 언급되어 있을 뿐인데 브루스(F. F. Bruce)는 그 가 후에 사도바울이 된 사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베냐민 지파였던 그는 고대 이스라엘의 초대왕의 이름을 따서 사울이라 명칭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여 해설하고 있다. 그는 로마의 시민권 소유자로서 유대적 전통에 입각한 철저한 종교훈련과 헬라적 지성의 연마에도 출중한 학자이며 바리새 열심당원 이었다. 

스데반의 순교 시 그는 박해를 지도하는 자이었다. 스데반의 처형이 계기가 되어서 산헤드린 공회는 대중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채 나사렛 당을 박해할 수 있는 찬스를 얻게 되었다. 대부분의 나사렛 당 즉 예루살렘 성도들은 박해를 피하여 이주하였다. 유대의 다른 지방이나 심지어는 팔레스틴을 아예 떠나 시리아, 페니키아, 기타 인근 국가들로 흩어졌다. 

바울이 도망치는 신자들 중에서 지도자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수리아로 향하여 떠났다. 그 여행길에서 그는 회심하였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경이에 찬 사울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에 “나는 나사렛의 예수니, 네가 핍박하는 바로 그이니라”(행 22:8)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 다메섹 사건은 그의 생애를 완전히 뒤바꾼 전환점이 되었다. 그가 지금까지 추구했던 율법은 한갓 외면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완전한 율법의 성취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이외에 어느 누구도 이를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가 되었다. 지금까지 바울이 훈련받은 모든 것들이 복음전파의 효과적인 도구로서 총체적으로 활용되었다. 

2. 바울 사도의 선교전략

기독교 2천년 역사상 바울만큼 영향을 끼친 인물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는 뛰어난 신학자로서 계시 기록의 임무뿐만 아니라 탁월한 선교전략가이며 실천적인 목회자이었고 교회개척의 선구자이었다. 그의 선교사역에는 오늘날의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이 본받아야 할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 그는 전통적인 기독교문화를 활용하여 복음을 증거하였다. 바울이 선교하기 위하여 새로운 사역지에 도착하면 우선 회당과 유대인 들의 신앙 공동체를 찾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당시 유대 종파는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집단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익숙한 것은 구약이었다. 바울 사도는 구약의 율법에 익숙한 유대인들에게 부활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 메시야 시대의 여명이 왔음을 전파하였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증거하는 진리는 신흥종교의 가르침이 아닌 구약종교의 완성임을 논증하였다. 

두 번째, 바울사역의 독특성은 선교의 복음적 토착화에 있다. 그가 증거하고 가르치는 진리는 구약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좀 더 분명하고 자세하게 전달함에 있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복음을 듣는 청중들의 문화구조를 충분하게 활용하였다. 그들의 문화를 복음전파의 매개체요, 도구로서 활용하였다.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로마인에게는 로마인처럼”의 접근방식이 그의 선교방법론의 독특성이었다. 그렇다고 피선교문화의 기존 사상에다가 복음을 상대화 시키는 일은 하지 않았다. 

세 번째, 바울 사도의 설교의 핵심은 십자가의 도(길)와 부활이었으 며(고전 1:18-25, 고전 15장)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갈 1:8)라고 천명하면서 선명한 복음전파의 사역에 그의 일생을 헌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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