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성경에서 창세기를 통해서 믿음의 조상이요, 축복의 조상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믿음의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이야기가 꽤나 어려운 것 같이 다가온다. 믿음도, 믿음을 통한 구원도, 그리고 복을 받는 삶도 나와는 상관이 먼 이야기 같이 느껴질 때도 많다. 그래서 믿음 반, 인간의 수단 반을 가지고 자기 편 한 대로 이해하고, 하나님을 이용하며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설명을 한다.

그렇다면 요셉을 어떻게 이해할까? 요셉의 이야기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꾸게 하신 사실 밖에는 어디에서도 하나님께서 구원했느니, 보호했느니, 인도했느니 라는 말씀은 한군데도 나와 있지 않다. 오직 요셉이 하나님을 믿고 나아갈 뿐이다. 그리고 견디면서, 이기면서, 버티어 낸 이야기뿐이다. 그래서 종살이 때에도,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힐 때에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승리하고서 형들에 자신들의 잘 못을 깨닫고 자신들이 죽을 것 같아서 꾸며내는 이야기 할 때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믿고 말하였다. 사람은 어떤 야기치 않은 일을 당하거나 사고를 당하면 두 가지 방향으로 반응을 보인다. 체념하던지, 포기하던지 아니면 기회로 삼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든지 하는 것이다.

오래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어느 축구선수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당시 그 선수는 한창 떠오르는 신인이었고, 장래는 누구보다 밝았던 골키퍼였다. 그런데 단 한 번의 사고 때문에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는 더는 축구화를 신고 동료들과 함께 푸른 잔디를 마음껏 내달릴 수 없었다. 그는 절망한 채 병상에 누워 있었다. 누구도 그를 위로할 수 없다고 주변 사람들은 생각했다. 역시 그는 어떤 말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한창 뻗어 나가야 할 시기에 꺾여버린 자신의 꿈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때 그가 누워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한탄만 하고 있을 때 그를 간호하던 한 간호사가 그를 위로하기 위해서 기타를 가져다주었다. 그는 간호사가 건네는 기타를 받아 들었고, 이날부터 그는 전혀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되는 계기다 된다. 예상치 못한 부상 때문에 축구 영웅이 되는 꿈을 접어야 했던 이 젊은이는 대신에 아름다운 음성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사로잡게 되는 역전을 맞이한다. 병상에 누워 있었을 때 건네진 기타라는 위로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로 사람들은 그를 유망한 축구 선수가 아닌 스페인을 대표하는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로 기억하게 되었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가 좌절감을 딛고 다시 일어서서 부른 그의 노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레코드 판매 수가 3억 개나 되었다. 이글레시아스가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이유는 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토마스 카알라일은 “길을 가다가 돌을 만나면 약자는 걸림돌이라 하고, 강자는 디딤돌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할 수 없는 것’을 찾고 있다면 할 수 없는 걸림돌만 쌓인다.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있다면 할 수 있는 디딤돌이 놓인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몇 번씩 수많은 삶의 돌을 만난다. 그때마다 그 돌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똑같은 길을 가다가 만나는 돌인데 누구는 걸림돌이라고 생각하고, 누구는 디딤돌이라고 생각한다.

시냇물도 걸림돌이 많아야 노래를 한다. 걸림돌 없이 평탄한 시내를 흐르는 물은 노래하지 않는다. 삶도 마찬가지 이다. 삶의 여정에 걸림돌과 장벽이 없다면 이야기 거리가 없어진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숱한 이야기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생을 100으로 보면 슬픔, 고통, 아픔 등의 이야기가 80은 될 것이다. 그러기에 이야기가 풍성해 지는 것이다. ‘역경’을 뒤집으면 ‘경력’이 된다. 걸림돌에 걸려 넘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딤돌로 바꿔 다시 일어선 사람만이 자신만의 스토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자기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기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언제나 남의 이야기를 듣고 말 할 뿐이다.

존 맥스웰의 저서 “태도”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젊은 여성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삶은 문제투성이라고 불평을 했다. 아버지는 딸을 부엌으로 데리고 가더니 냄비 세 개에 물을 부은 다음, 불 위에 올려놓았다. 첫 번째 냄비에는 당근을 썰어 넣었고, 두 번째 냄비에는 달걀 두 개를, 세 번째 냄비에는 커피 가루를 약간 넣었다. 몇 분 후 당근을 꺼내 그릇에 담고, 삶은 계란 역시 껍질을 벗겨 그릇에 담고, 커피는 컵에 따랐다.’아빠, 뭘 하시려는 거예요?’ ‘자, 보렴, 처음에 딱딱했던 당근은 흐물흐물해졌어, 반면 깨지기 쉬운 달걀은 더욱 단단해졌단다. 커피는 어떠니? 커피는 물을 더 값진 것으로 바꾸었단다.’ 지금 네게 닥친 문제는 온전히 너 자신에게 달린 문제란다. 흐물흐물해진 당근처럼 문제 때문에 더 약해질 수도 있고, 삶은 달걀처럼 문제로 말미암아 더 강한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단다. 아니면 커피처럼 문제를 아예 자신에게 유익한 기회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선택은 바로 너 자신이 하는 거란다.”

요셉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투정이나, 불평하지 않았다.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으로 이겨내고, 견디어 내고, 버티어내었다. 하나님께서 무든 일을 선하게 만들 것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가던 길이 막히면 또 다른 길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바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믿음” “그리하지 아니하실 지라도의 믿음” 인 것이다. 요셉의 두려움에 떠는 형들에게 하는 말이 얼마나 확실한 믿음의 고백인가? 들어보자.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가?” 요셉의 인생에 간섭하여 요셉의 인생을 이렇게 했다는 말은 없지만 요셉은 두려움에 찬 형들에게 분명하게 고백한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위기를 또 다른 길을 여는 기회로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나의 태도를 바로 세우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면 열심히 앞만 보고 전진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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