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마태복음 11:16-17)

오늘 예수님은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이렇게 탄식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하고 싶으신가요? 오늘 말씀 17절에 보니까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대를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그리고 슬피 울어도 가슴 치지 않는 세대라고 주님은 탄식하고 계십니다.
이 표현은 어린아이들이 친구들을 만나서 노는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지금은 어린아이들이 장난감이 참 많습니다. 옛날에는 장난감이 없다 보니까 엄마, 아빠 흉내를 내면서 많이 놀았습니다. 그런 어린아이들이 모여서 가장 흉내 내기 쉬운 것이 뭐냐 하면 당시 사람들이 많이 행했던 결혼식, 그리고 장례식이었습니다.
결혼식은 잘 아시는 것처럼 즐거운 시간입니다. “너는 신부해. 나는 신랑 할게.” 그리고 서로 이제 노래를 부르면서 결혼식 잔치를 합니다. 이때 피리를 부는 겁니다. 그러면 옆에 있는 친구들이 춤을 춰야 되겠죠. 피리를 불면 춤을 춰줘야 하는데 피리를 부는 데도 춤을 추지 않으면 놀이가 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반응이 없는 겁니다. 무감각한 시대의 무반응의 시대를 주님이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반대로 이제 장례식 놀이를 합니다. 옆에 있는 친구가 “우리 아버지가 죽었어.” 또는 “우리 할아버지가 죽었어.” 그러면서 슬피 울면 옆에 있는 친구들이 가슴을 치면서 “아이고, 아이고.” 따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놀이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그 시대를 공감하는 사람들의 모습인 겁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이 시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사람들이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 세대”라고 탄식하고 계십니다.
공감이 없고 무감각, 무관심에 대해 그리고 무반응한 시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와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외치면 사람들이 가슴을 치면서 회개하고 돌아와야 하는데 세례 요한이 귀신 들렸다 하면서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우리의 감정은 살아있는지요? 그리고 이 세대에 대해 반응하고 계신지요? 아픈 것을 볼 때 아파하고 좋은 것을 볼 때 즐거워하고 계시는지요?
감성은 바로 예수님의 감성처럼 살아 움직이는 감성, 거룩한 감성, 깊이가 있는 감성이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교훈합니다. 참으로 세상이 팍팍하고 어두운 이때에 우리 모두가 감성을 회복해서 즐거워하는 것을 함께 즐거워하고 슬픔과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볼 때 함께 아파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은혜가 충만하고 감성이 충만한 그런 믿음의 가족들로 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글ㅣ 순천예찬교회 이성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