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9)

세상에는 평화를 이루는 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있고, 불화와 분쟁을 만드는 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디든 들어가서 화합시키고, 모든 관계를 좋게 만들고, 공동체를 평화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로 반목하여 다투게 만들고, 분쟁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평화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삿6:24절을 보면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고 불렀습니다. ‘평강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평화를 주시는 분이시고, 화평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에 반해 마귀는 분쟁의 조성자입니다. 가장 먼저는 인간을 타락시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좋은 관계를 깨뜨렸고, 서로 원수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깨뜨렸습니다.
성경이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에 대해 뭐라고 말씀합니까?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요일3:12절).” 가인은 악한 자 마귀에게 속하여 그 아우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처럼 마귀는 서로 시기하게 만들고, 다투게 만들고, 죽이게 만듭니다. 악한 자에게 속하면 그와 같은 일을 하게 됩니다. 습관적으로 공동체 안에 분쟁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마귀에게 속했거나 혹은 그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그대로 적용해본다면 서로 분쟁하게 하고 다투게 하는 사람은 마귀의 자녀인 것이고,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들인 것입니다.
한편 본문의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된다”라는 말씀의 의미는, 화평하게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답다고 인정받게 되리라는 의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아들답다고 인정받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화평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지요. 화평을 히브리어로는 ‘샬롬’이라고 그럽니다. 즉 모든 것에 완전하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행복의 상태가 샬롬이고, 모든 악한 것들과 사악한 자들의 손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가 샬롬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복을 흡족히 누리는 상태가 샬롬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행복된 상태가 샬롬(롬14:17)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로 ‘샬롬’하고 인사합니다. 성경에 보면 “평안이뇨?”라는 질문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샬롬하냐?”라는 질문입니다. 그 인사는 우리나라의 ‘안녕하십니까?’ 정도의 형식적인,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의미의 인사말이 아닙니다. 그 인사는 보다 적극적으로 상대방에게 하나님의 복이 주어져서 모든 일이 잘 되고, 그래서 그 사람이 샬롬, 즉 최고의 평안의 상태에 이르기를 기원하는, 아주 많은 축복의 의미를 담고 있는 축원의 인사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와 같은 축복으로 서로 인사해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또 샬롬, 즉 화평의 문제는 관계적 상황에서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본문의 화평하게 하는 자란 세상을 샬롬의 상황으로 이끌어 가는 자. 이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어내고 그 하나님 나라의 복을 가져오는 자. 특히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그런 일을 이루어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롬12:18절입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이 말씀이 옛날 개역성경에는 그렇게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주님은 이 평화하는 일이 제단에 예물을 드리는 일보다 더 시급한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형제와 불화한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평화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와 불화하고 있는 사람은 예물을 드리기에, 즉 하나님을 예배하기에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의 모든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형제와 평화해야 합니다.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샬롬을 선포하면서, 샬롬으로 인사할 뿐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모든 관계 속에서 “샬롬”을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글 | 김성원 목사(중흥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