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기를 들고
예전에 집안을 청소할 때에는
빗자루로 쓸고 걸레로 닦으며 살았는데
빗자루와 걸레가 쉬 보이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걸레와 빗자루의 자리를 소리 없이 청소기가 장악하여
그 위력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하던 일을 잠시 내려두고
청소기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왜앵 ……
커다란 입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
투명의 뱃속에 담아낸다
왜앵 ……
끌어들일 수 있는 위대함
천 갈래로 떠도는 생각들을 먹는다
채워야 비울 수 있고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죽어야 산다.
살려고 죽는다.
–
죽으려고 오신 분
살려고 죽음의 길을 선택하셨던 분은
인류의 죄로 허기진 배를 채워
십자가에서
보혈의 피로 씻으셨습니다.
예수의 생명이 우리에게 흐르게 되면
청소기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되고 더러운 것들을 끌어안고
왜앵 ……
울어줄 수 있는 마음이 있을까?
그런 마음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내 마음이지만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마음을
다독이며 살아갈 수 있을까?
빌립보서 2장 5-8절의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입술의 언어보다
마음의 울림에 더 귀 기울이시는 분과 함께
길을 걸으며
창조의 목적을 다시 되새길 수 있다면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해어화(解語花)처럼
창조주의 마음을 알아
세상의 더러운 것으로
허기를 채우는 청소기처럼
자기를 낮추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자리에서
왜앵 ……
누군가의 연약함을 안고 울어줄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