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집 서재 방문 위에는 미독만권지실(未讀萬卷之室)이란 글자가 새겨진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사반세기 전에 외삼촌이 손수 김아무개의 글씨를 본떠 서각작품으로  만든 것을 조카인 제가 울산교회 담임으로 임직할 때 선물했기 때문입니다. 미독만권지실(未讀萬卷之室)이란, 직역하면 ‘읽지 못한 책이 만권이나 있는 방’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때는 의역이 제격일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읽고 싶은 책이 수 없이 있는 방’이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얼마전 한 주간 봄방학을 맞이해서 울산을 다녀오면서 그 방에 들어가서 서가(書架)를 둘러보다가 눈에 띈 읽고 싶은 책을 하나를 골랐습니다. 

그 책이 바로 <미션디모데> -’지금 여기, 초대교회를 살아가는 위그노의 후예들’이란 부제가 달린 책입니다. 1년 반 전에 두란노에서 나온 책이고, 저자 가운데 한 분 방선기 목사가 친구이니 아마 선물로 두란노에서 보냈을 것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그 때는 은퇴를 막 하던 때였으니 받은 기억도 분명하지 않고, 한 해를 놀며 쉬며 보내면서도 그동안 눈에 띈 적이 없는 책이었습니다. 

<미션디모데> “우리는 복음과 함께 삽니다”란 표어가 제시하는 대로 프랑스의 작은 마을 앙뒤즈에 복음과 함께 살아가는 개신교 공동체의 이야기를 읽은 것은 은퇴 1년 6개월만에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선물 같습니다.

@출처= 도서 '미션디모데' 중

왜 그 책이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졌느냐고요? 1972년 합천 청덕교회에서 전도사로서 사역을 시작해서 2019년 말 목회사역을 끝내기까지 약 50년 가까운 세월동안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면서 소원하고 기도하며 추구했던 믿음의 공동체의 모습을 <미션디모데>에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참된 교회의 모습, 그 조각들을 가끔씩 목도하기도 했지만, <미션디모데>를 통해서 온전한 그림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공동체는 옛날에만 존재했고,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우리의 불신앙을 산산조각 내었기 때문에 읽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프롤로그 “미션디모데로 향하는 여정”으로 시작해서 11가지 주제를 하나씩 잘 설명해 주고, 에필로그 “미션디모데를 나오며”까지, 여기 저기에 포함된 삽화처럼 아름답게 잘 구성되어 즐길 수 있었습니다.

@출처= 도서 '미션디모데' 중

백년 전만해도 우리나라 어떤 교회도 건물을 두고 교회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그렇게 현판을 써서 걸지도 않았습니다. <영락교회 예배당>, <새문안교회 예배당>, <안동교회 예배당>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건물을 두고 반드시 붙이던 <예배당>이란 말은 사라지고, <무슨교회>라고 현판을 달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건물이 마치 교회인양 조금씩, 천천히 생각속에 자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다가 교회당 건축 붐이 일면서 <예배당>은 아예 <성전>이라고 불리고, <성전건축 헌금> 봉투가 등장하고, 신앙생활의 표어 중 하나인 <교회중심>이란 표현은 건물중심의 교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길 원한다면 <미션디모데>를 정독(精讀)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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