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세기 39:3)

요셉은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한순간에 형들에게 미움을 당하고 구덩이에 빠지고 또 애굽으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어요. 종이 된 거예요. 근데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말이죠. 세상적인 형통은 출세 잘하고 잘나가고 건강하고 고난이 없는 것을 형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말이 됩니까. 그렇게 보면 요셉의 인생은 완전히 불통의 삶 아닙니까. 미움을 당하는 것과 쫓김을 당하는 것, 팔려가는 것이 어떻게 형통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적인 형통과 세상적인 형통은 다른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느냐, 하나님과 교제하느냐, 하나님과 동행하느냐에 따라서 그가 형통한지 아닌지 판가름 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물질이 많고 돈이 많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면 그것은 형통이 아닌 것입니다. 내 인생 가운데 힘들고 어렵고 답답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사람, 주님을 찬송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을 바로 형통한 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하고 계십니까. 세상에서의 출세를 위해서만 기도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우리 자녀가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형통을 축복할 수 있는 부모의 기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요셉이 주님과 함께하는 모습, 형통하는 모습을 그의 주인 보디발이 보았습니다. 수많은 종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도망가려고 눈치 보고 시간 때우려고 게으르고 나태하는 모습이 있었지만 요셉은 달랐던 것이에요. 보디발에게는 권력이 있지 않습니까. 물질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요셉에게는 본인이 갖고 있지 않은 무엇인가 있는 거예요. 그가 종인데도 불구하고 종처럼 살지 않고, 그가 종인에도 불구하고 주인처럼 살아가는 자유함, 성실함, 겸손함, 믿음, 그가 팔려갔음에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일할 수 있는,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요셉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래서 보디발은 그에게 가정 총무로 삼았지 않습니까. 그가 가정 총무가 된 순간부터 보디발의 집에 복이 임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의 소출과 열매가 그의 지방 가운데 차고 넘치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형통의 결과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 이웃들이 복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도 요셉처럼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으로, ‘형통한 사람’으로 쓰임 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복덩이입니다. 가정과 이웃과 직장과 교회를 살리는 거룩한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형통의 결과입니다.
글ㅣ최규명 목사(충정교회)
감사합니다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