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총회장이 된 바닷가 소년
어릴 적 부르던 찬양 부르다 믿음 회복
비닐하우스 교회에서부터 현재 교회까지
분열 극복하고 하나된 교단 만들기 위해 최선

믿음이 힘들어져 교회를 떠났다. 그때 다시 예수님께로 나를 데려간 건 어릴 적 즐겨 부르던 찬양이었다. 비닐하우스 교회로 시작해 교단 총회장이 되기까지. 이상재 목사의 인생 뒤안길에는 하나님의 어떤 역사하심들이 숨겨져 있을까. 이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총회장 이상재 목사(함께하는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총회장 이상재 목사(함께하는교회)

I 삶의 시선

군대에서 인격적으로 주님 만나 신학의 길로
군에서 신학 할 수 있었던 건 전적인 하나님의 예비하심
첫 목회지 비닐하우스 교회, 힘들었지만 가장 행복했던 시간

Q. 어린 시절 어떤 아이였는지.

저는 바닷가에서 태어났어요. 어렸을 적 고향 시골에는 교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미국에서 온 선교사님들이 초콜릿과 사탕을 주면서 복음을 전할 때 졸졸 쫓아다녔고요. 그렇게 하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출석하게 됐죠. 그 시골교회가 벌써 60주년이 됐어요.

Q.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때에 대해 얘기해주신다면.

고등학교 때는 좀 방황했어요. 자연스럽게 교회와 멀어졌지요. 그러다가 군대에서 세례를 받고,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났어요. 그 계기로 신학까지 하게 됐죠.

(좌)군대 훈련소에서 세례받는 모습 (우)군 시절 이상재 목사
(좌)군대 훈련소에서 세례받는 모습 (우)군 시절 이상재 목사

Q. 군대에서 어떻게 주님을 만나셨는지.

당시에 공군에 지원해서 갔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보니 현실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군에 입대했죠. 삶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가 제대를 하고 난 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까. 고민이 심해지다 보니 원형 탈모증에 걸릴 정도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부대 내에서 길을 걷는데 우연히 어렸을 때 불렀던 찬양이 생각나는거에요. 그러다 보니, 부대 내에 있는 교회로 바로 가서 기도를 시작했고요. 그때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뵜어요. 제가 목회자가 될 생각은 꿈에도 없었는데 그때 그렇게 결단을 하고 신학의 길을 가게 됐죠.

Q. 어떤 찬양이었나요? 한번 불러주실 수 있으신지.

"고무신 신고. 
아장 아장. 
느린 걸음 걸을 지라도. 
해바라기 해 따라가듯. 
나도 예수님 따라갈테야." 아, 기자님 앞에서 부르려니 좀 부끄럽네요(웃음).

Q. 군대에서 신학하기 쉽지 않으셨을텐데?

군 복무에 임하면서 야간 신학을 했어요. 사실 그때 정말 힘들었거든요. 야간 신학을 하다 보니 근무서랴, 공부하랴 잠도 제대로 못 잤고, 먹는 것도 부실했고요. 너무 힘들어서 3학년 올라갈 때 신학교를 그만두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때 저하고 같이 신학 공부했던 분 중에 한 연세가 있으신 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해군본부에서 오셨어요. 오흥년 목사님이라고.  하루는 그분이 저녁에 학교 옥상에 가자고 하시더니, 도시락을 두 개를 들고 오시더니 그 중 한 개를 건네시면서 그러시는 거에요. 우리 죽어도 학교 계단에 죽자고. 그 말씀에 감동받아 다시 한번 힘을 내 신학에 매진했어요. 덕분에 졸업할 수 있었죠.

군대 내 기지교회 여름성경학교 진행 후 아이들과 함께
군대 내 기지교회 여름성경학교 진행 후 아이들과 함께

Q.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일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군대에 있을 때 신학을 할 수 있었던 사건이 아닐까. 원래 공군 규정에 보면, 부대에 와서 2년 이상 있어야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1년이 채 안 돼서 나왔거든요. 그때, 정훈실장님이 소령 계급이셨는데, 그분이 장로님이셨어요. 그분께서 진짜 많이 도와주셨어요. 덕분에 저는 정식으로 공군 참모총장 허가를 받아서 신학교에 갈 수 있게 됐죠. 모든 게 하나님의 정확하신 예비하심이었습니다. 여호와 이레.

Q. 인생의 과정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목사 안수를 받고 난 후, 비닐하우스 교회에서 단독 목회했을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첫 단독 목회였고, 그 교회에서 지금 제 집사람을 만났거든요. 

Q. 그 비닐하우스 교회 이야기도 좀 해 주세요. 

단독 목회를 하고 싶었어요. 어디가 됐든, 첫 번째 단독 목회할 수 있는 부임지가 나오면 나는 무조건 가겠다 이렇게 하나님께 약속드리고 기도했어요. 과천 경마장 앞에 보면 비닐하우스 화원 단지가 있어요. 거기 비닐하우스 교회에 단독 목회할 수 있는 임지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무작정 왔어요. 비닐하우스 안에 무작정 강대상 놓고 예배드리는 거죠. 그리고, 한구석에 침대 하나 갖다 놓고 거기서 먹고 자고 하면서 목회를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경기도 의왕시에 연세드신 전도사님이 임기를 마치신 교회가 있어 그 교회와 합병한 후, 교회를 다른 분께 인계해드리고 지금의 교회로 청빙을 오게 된 거죠. 비닐하우스 교회가 많이 생각나요. 정말 행복했거든요. 비 오면 비닐하우스를 뚫고 비가 들어오고 했지만, 그곳에서 비전을 품고 여기까지 온 거니까. 

비닐하우스 교회 설립 예배 모습
비닐하우스 교회 설립 예배 모습

Q. 개척과 다름이 없었는데 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다.

아무래도 경제적인 여건들이죠. 집이 시골이고, 또 가난하다 보니 지원은 꿈도 못 꿨죠. 등록금 낼 돈이 없어서 신학교 4학년 시절엔 실제로 시험을 보지 못했던 경험도 했어요. 결국, 형님의 도움으로 졸업은 했지만. 결혼 때도 재정이 없어서 처갓집 신세를 좀 졌어요. 아내에게 고마운 부분이죠. 함께 이 고난을 이겨내줘서.

Q. 목사님 가정 이야기가 궁금하다.

저희 가정에 형제들이 많아요. 이 형제들이 가정에서 신앙의 1세대죠. 지금 울산에서 목회하셨던 둘째 형님이 제일 먼저 예수님을 믿으셨고요, 그 후에 다른 형제들과 우리 부모님까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어요. 형제들 4명이 목회자에요. 신앙의 1세대에서 목사 4명이 배출된다는 것, 주변 분들이 이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남편으로는 제가 몇 점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다복한 공무원 가정에서 자라온 아내에 비해 저는 어렵게만 살았다 보니 약간의 갈등도 있었는데, 지금은 제가 많이 바뀌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이들과는 여행을 자주 가려고 하고,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같은 가족의 기념일들을 챙기려고 노력해요. 달력에 미리 적어놓고 늘 체크해요. 자꾸 잊어버리니까(웃음). 

함께하는교회 위임식에서 아내와 함께
함께하는교회 위임식에서 아내와 함께

I 사역의 시선

목회에 있어 한가지 원칙, '출근시간 엄수'
회복의
가장 좋은 방법은 '새벽기도'
60주년 총회, 분열 극복하고 노회 중심‧선교 중심의 방향 추구

요양원 사역과 교회가 교회를 세우는 일에 힘쓰고파

Q. 삶과 사역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시는지.

저에게는 한 가지 원칙이 있어요. 바로 출근 시간 엄수. 출근 시간을 지켜야 하루 시간 활용이 정확해져요. 목회를 하다 보면 시간 배분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늦게 퇴근하더라도 출근 시간은 꼭 지키려고 해요. 정 피곤하면 교회에서 의자에 잠깐 눕든지 해요. 자더라도 교회에서 잔다는 원칙. 내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삶과 사역에 맞춰서 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총회장으로 섬기고 계신 대신 교단에 소개해주신다면?

우리 교단은 자생교단이에요. 1948년 신학교가 처음 시작이 돼, 김치선 목사님이 교회 교단을 설립하셨죠. 올해가 이제 60주년이 되는 해에요. 우리 교단은 전통적으로 개혁주의 신앙을 추구하고 있고, 보수신학이기 때문에 합신 및 고신교단과 열심히 교류를 하고 있는 정통 교단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총회 총무 조강신 목사(우)와 함께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총회 총무 조강신 목사(우)와 함께

Q. 사역 가운데 중점을 두고 있는 점은 무엇인가요

우리 교단은 자생교단이고 개혁 중심의 신앙을 추구하는 교단인데, 지금 교단 내 분열의 아픔을 겪고 있어요. 너무 가슴 아픈 일이죠. 제가 총회장으로 섬기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려고 독려하고 있어요. 아울러, 노회가 중심이 되야 교단이 살아나겠다는 생각에 노회 중심, 선교 중심으로 방향을 추구하고 있고요. 그리고, 오는 6월 20일에는 교단 60주년 기념대회도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Q. 목회 사역 중 기억에 남는 간증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목사는 24시간 긴장하며 살아요. 성도님들 급한 일 생길까 봐 핸드폰을 늘 머리맡에 두고 자는데, 하루는 심방 전도사님이 새벽 2시에 전화를 하셨어요. 성도님 중 한 분이 지금 잠을 못 주무시고 벌벌 떨고 계시다고. 목사님이 오셔야 할 것 같다고요. 장로님 한 분과 함께 현장으로 가보니 남자 성도님께서 속옷만 입으시고 계속 떨고 계신거에요. 그런데, 제 마음에 걱정이 되는거에요. 조금 있으면 새벽기도회 인도해야 되는데 이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이동하면서 계속 기도했죠. 하나님 해결해 주세요 하고. 도착해서 그 성도님과 그냥 눈을 마주치고 얘기하니까 금방 회복에 되셨어요. 그러시고는 목사님 이제 제가 살았어요. 진작에 오시지 그러셨어요 하면서 편안해지셨어요. 또 한번은, 교회 권사님께서 주일 예배를 마치고 목양실에 오셨는데, 들어오시면서 계속 살려달라고 하시는거에요. 통풍 때문에 걷기도 힘들고, 병원에 가도 낫질 않는다고. 그래서 권사님 같이 기도하자고 말씀드리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고쳐주셨어요. 그 권사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통풍 때문에 고생하시는 일은 없었어요.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종과 함께하시고 영적 권위를 세워주시더군요. 할렐루야.

Q. 영적으로 힘드실 때는 어떻게 회복하시는지.

목사들이 뭐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웃음). 다시 말씀 보고, 기도하고. 가장 좋은 회복은 새벽기도 같아요. 힘들어도 새벽에 나와서 하루의 첫 시간을 주님께 드리고 기도하면, 또 힘을 얻게 되고, 그날 하루도 형통하게 인도해 주시는 것 같아요. 

Q. 목사님의 달란트는 무엇인가요?

주변 분들이 들려주시는 말씀으로는 리더쉽인 것 같아요. 어렸을 적 동네 친구들 모아놓고 뭘 하는 걸 좋아했고, 학교에서도 그랬고요. 리더쉽이 있는 것 같긴 해요. 그리고, 또 한가지는 배려하고 사랑을 베푸려는 마음. 이 부분은 우리 아버지께 많이 배웠어요. 시간을 가리지 않고 이웃을 도와주시곤 하셨어요. 저에게도 그런 영향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나눠 주세요.

요양원을 운영하고 싶어요. 앞으로 사회는 더 고령화가 될 텐데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의지하기는 더 어려워지니 이제 교회에서 어르신들을 좀 책임져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생계부터 장례까지 전부 다요. 그래서 지금 580개의 납골당을 준비해놨어요. 이 부분이 우리 교회가 해야 될 일이라 생각해요. 교회에는 이미 다 얘기를 해놨어요. 꼭 필요한 사역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교회를 세우는 일에 동참하고 싶어요. 매해 많은 신학생들이 배출되지만, 개척하는 후배들이 없어요. 총신대 같은 사례도 개척율이 1% 밖에 안된다더군요. 앞으로 우리교회는 3년 주기로 하나씩 교회를 세웠으면 좋겠다.. 이룰 수 있는 꿈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부교역자분들이 사역할 수 있는 언덕은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게 제 꿈이고 목표입니다.

현재 섬기고 있는 함께하는교회(경기도 광명시) 전경
현재 섬기고 있는 함께하는교회(경기도 광명시) 전경

I 생각의 시선

포스트 코로나 시대 예배에 대한 고민
학장시절 은사들과 故 옥한흠 목사에게 큰 영향받아

Q. 요즘 많이하는 생각은?

목회에 대한 생각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현재의 상황은 물론이지만 코로나가 끝난 이후에 목회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많은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게 됩니다.  지금 현재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좌석수 10% 일 때는 힘들지만 5부로 나누어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지금 약  20%의 성도님들만 모여서 예배드리고 있는데, 영상예배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도 하고 있고요. 그냥 저는 예배에 목숨을 걸자는 주의거든요. 코로나가 끝나면 영상 예배는 중단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Q. 갖고 있는 가치관에 가장 영향을 끼친 것은 무엇인가요?

학교를 다니면서는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이영하 선생님, 중학교 때에는 황수원 선생님, 고등학교 때에는 조수상 선생님, 신학교 때에는 조석만 목사님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신학교 때에는 조직신학을 가르치셨던 고 조석만 목사님의 가르침이 목회의 가치관을 갖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늘 하셨던 말씀 중에 목회를 하면서 도깨비 장난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기억하며 바르게 목회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설교에 있어서는 사랑의 교회를 시무하셨던 고 옥한흠 목사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설교를 하는데 원문에 충실하면서 주로 강해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집무실에서 설교 준비에 한창인 이상재 목사
집무실에서 설교 준비에 한창인 이상재 목사

Q. 나의 고정관념을 깼던 사건이나 문구는?

군대 생활 중에 큰 사건들이 몇 개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특전사들이 낙하를 하기 위해서 태운 수송기가 기상 악화로 비행기가 산꼭대기에 추락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탑승했던 55명 전원이 사망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새벽 2시에 기상하여 시체를 수습하러 산에 가게 되었는데 55구의 시신을 보면서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지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죽음 하면 먼저 무서움이 있었고 장례식에 가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놀랍게도 그 사건 이후에는 죽음이 무섭지가 않고 장례식장에 가서도 밥도 먹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이 나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는 계기가 되습니다. 특히 목회를 하면서 수시로 장례식에 참여해야 되고 때로는 시체를 직접 만지기도 하는데 지금은 아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Q. 내 인생을 책으로 쓴다면 머리말에 남길말은?

충청도 태안의 바닷가 끝자락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렵게 살았고, 가장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목회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따라서 주어진 사명 끝까지 잘 감당하여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

Q.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사도행전 16:31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유는 우리 집안에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시골이었기 때문에 교회도 없었습니다. 미국의 선교사님들이 와서 먹을 것을 주면서 복음을 전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때에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예수를 믿은 사람이 바로 울산에서 목회를 했던 둘째 형님이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최초로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 후에 형제들과 부모님들이 모두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더 감사한 것은 형제들 중에 큰 형님은 장로님으로, 누님은 권사님으로, 그리고 둘째 형님을 비롯해서 그 밑에 형제 4명이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신앙 1세대임에도 한 집안에서 4명이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는 것은 그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 16:31절 말씀은 우리 집에 딱 맞는 말씀이고 그대로 이루어진 말씀입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성경구절입니다. 

 I 세상의 시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정의와 공의가 강같이 흐르는 세상 됐으면..
크리스천, 이웃에게 먼저 선한 영향력 끼쳐야
위기는 기회! 승리하는 모두가 되길

Q. 요즘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

지금 이 코로나도 결국은 인간의 탐욕 때문에 온 결과라고 생각해요. 자연의 질서가 파괴되면서 그 역효과로 팬데믹 현상이 일어났다고 봐요. 그리고, 우리는 공의와 정의가 없는 불공정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교단도 그렇고, 총회도 그렇고, 교회에도 그렇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되는 것이 우리 크리스천들의 사명이 아닐까.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 총회장 이상재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 총회장 이상재 목사

Q. 변화했으면 하는 세상의 방향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정의와 공의가 강같이 흐르는 세상이 되어 모든 사람들이 공평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크리스천들이 해야 할 일은?

교회들이 지역 사회의 작은 일부터 찾아갈 수 있는 마음과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경의 가르침대로 진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되는데, 그렇게 못하고 교회들이 너무 교회 중심이 돼버린 거예요. 자기 집단화가 돼버리고. 교회는 소외된 사람들을 도와주고 손잡아 주는 따뜻한 곳이 되야해요. 목회자들은 좀 더 복음적인 소신을 갖고 영향력을 끼쳐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정치할 것도 아니잖아요. 내 주변, 가까운 지역부터 선한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Q. 목사님께서는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싶으신지.

하나님께서 가장 부족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선택하신 목적이 어디에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족한 나를 선택해서 귀한 사명자로 세워주심에 무조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 잘 감당하여 인정받는 목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한국교회 성도님들과 독자들한테 권면과 도전의 한 말씀해 주신다면. 

코로나 때문에 지금 전 세계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인데 우리 모두 힘을 모아서 잘 이겨나갔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뜻하지 않은 위기를 계속 만날 수밖에 없는데, 그 위기가 오히려 우리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위기를 잘 대처하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모두가 다 이 코로나 시대를 끝까지 잘 이겨나갔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모두 행복한 날을 기대하면서 모두 승리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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