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여주미술관, <만첩산중 서용선> 전시
  • 서용선 작가, 도시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인간의 모습
  •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 100여점의 그림 속을 헤매는 경험
도시의 좁은 골목길을 걷는 듯한 전시
도시의 좁은 골목길을 걷는 듯한 전시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미술관에 간다면, 보너스처럼 얻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미술관의 멋스러운 건물과 풍경이 만들어 내는 색다른 아름다움. 그리고 이런 풍광 속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괜찮은 카페가 미술관에 함께 있다. 경기 여주미술관은 여기에 하나를 더했다. 일상의 나른함을 깨워주는 '독특한 경험'을 준비해 두었다. 거침없는 선과 색의 에너지를 분출하는 서용선 작가의 전시, <만첩산중>이다.

여러 나라의 도시인들의 모습을 담았다
여러 나라의 도시인들의 모습을 담았다

관람객은 좁은 통로를 지나 그림이 빼곡히 겹쳐선 골목길에 들어선다. 전시장에 가벽을 세워 골목처럼 좁은 길을 따라 걷는 관람객은 "회화의 산중을 헤매는“ 경험에 맞딱들인다. 서용선 작가의 그림이었기에 이 길은 여유로운 산책로가 아닌 치열한 삶이 부딪히는 도심의 골목이 되었다. 거친 붓글씨를 닮은 검은 라인, 붉고, 파랗고 노란 원색의 물감, 경직된 표정의 도시인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그림은 도시의 약육강식의 잔인한, 그러나 생존력을 가진 힘을 뿜어낸다. 그 에너지는 미술관 한쪽 벽을 가득 채우는 300호 사이즈의 거대한 캔버스 위에서 절정에 달한다. 기계음과 북소리가 뒤섞인 낯선 사운드 속에서 강렬한 힘을 내뱉는 100여 점의 그림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경험은 생경하고 새롭다.

서용선 작가의 꿈틀거리는 붓질과 색채는 민중 미술을 떠오르게 하며, 독일의 표현주의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확실한 사실은, 그러한 표현이 가진 힘은 독특한 목소리를 만들어 냈다. 허스키하고 거친 목소리 그러나 복부에서부터 끌어오르는 우렁찬 소리로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

자화상은 서용선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자화상은 서용선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그의 그림이 담고 있는 풍경은 흔히 보는 도시의 일상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지하철 안의 무심한 얼굴들.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어두운 표정의 남자. 이들과 상관없이 도심을 돌고 도는 자동차들. 무심히 지나치던 도시의 풍경이 서용선 작가의 붓 끝에서 소리가 된다. 일상의 나른함과 안일함을 깨우는 외침이 된다.  도시에서 견디며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삶에 대한 외침. 

하지만 외치기만 하는 전시는 보는 이를 피로하게 만든다. 강렬한 색채로 진지하게 지금, 이곳의 현실만을 전하지 않는다. 전시의 도입과 말미에 놓인 우리네 산의 풍경과 한옥집과 머리에 갓을 쓴 남자와 쪽진 여인이 등장하는 그림은 팍팍한 현재를 벗어나 다른 시공간으로 다녀올 수 있는 길을 열어둔다. 관람객에게 상상의 공간을 내어준다.

큰 사이즈의 캔버스에 담긴 원색의 힘은 강렬하다
큰 사이즈의 캔버스에 담긴 원색의 힘은 강렬하다

선명한 방향을 갖고 걷는 길에서는 반대편에 선 이들도 만나듯이, <만첩산중 서용선> 전시도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하는 요란하고 낯선 사운드와 강한 에너지를 내뿜는 작품들은 일부 관람객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 특히 미술관에서 고요한 쉼과 잔잔한 아름다움을 기대하는 관람객에게는 더욱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일상의 나른함을 깨고 안일함에서 벗어나는 외침을 찾는 관람객에게는 색다른 "쾌"를 경험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전시장과 연결되어 있는 산이 바라보이는 미술관 카페.
전시장과 연결되어 있는 산이 바라보이는 미술관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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