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모자 쓴 파란색 곰돌이 모양의 빙수기계가 있었다. 밥공기에 물이나 우유를 넣어 냉동실에 얼린 후 얼음을 빼내어 이 빙수기계에 넣고 돌리면 아래에 놓인 그릇에 새하얀 얼음가루가 쌓이고 그 위에 시럽과 팥을 올려서 팥빙수를 만들어 먹었다. 지금은 얼마든지 쉽게 빙수를 사먹을 수 있어서 옛날처럼 빙수를 만들어 먹는 가정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어린 시절 빙수기계는 왜 곰돌이모양이었을까? 빙수기계를 만든 사람이 곰을 좋아해서였을까? 이유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팥빙수는 일제강점기때 가고시마(鹿児島県)의 빙수 “시로쿠마(白熊)”가 전해져서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본에서는 빙수를 잘게 갈은 얼음이라는 뜻으로 ‘카키고리(かき氷)“라는 말을 쓴다. 1895년에 카키고리가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 도심의 거리를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설탕시럽뿐만 아니라 딸기맛, 레몬맛, 그리고 설탕에 졸인 팥을 올린 카키고리도 등장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알려진 지방의 카키고리로 가고시마의 ’시로쿠마(白熊, しろくま)‘가 유명하다. ‘시로쿠마’는 한자 그대로 ‘백곰’을 말한다. 하얀 빙수의 모습에서 백곰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지금도 시로쿠마 가게 앞에서는 큰 백곰 인형이 있다.

시로쿠마에서는 하얀 빙수에 키위로 귀를 만들고 건포도로 눈, 코를 만들어서 영락없는 곰 모양의 빙수를 만들어서 내준다. 안을 살짝 들쳐보면 하얀 얼음 안에 콩, 팥, 다양한 과일의 재료들이 한가득 들어있다. 우리나라의 팥빙수와는 다른 빙수이다. 연유를 살짝 뿌렸기 때문에 달달함이 있다. 안에는 키위, 메론, 귤, 복숭아, 바나나, 양갱 등이 들어간 과일 빙수이다. 곰모양의 빙수기계는 일본의 빙수 카키고리로 유명한 가고시마의 시로쿠마, 즉 백곰모양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추정해본다.

우리나라는 빙수를 언제부터 먹었을까?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1900년도에 애신(김태리)이 자신의 몸종(이정은)과 대패로 간 얼음 빙수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드라마속에 나오는 빙수는 파리바케트의 PPL로 등장한 빙수이다. 불란서 제빵소라는 빵집 앞에는 “꽃빙슈~빛깔 고흔(고운) 얼음을 갈아 꽃처럼 맹근(만든) 여름 별미”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게다가 빵집 주인이 직접 대패로 두 가지 색상의 얼음을 갈고 있는 시연까지 나온다. 하지만 1900년도에 망고와 딸기의 조합이 예쁜 과일빙수가 나올리 만무하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먹었던 빙수는 지금 우리가 먹는 것처럼 얼음위에 단팥을 얹어 먹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단팥은 가장 일본스러운 재료이다. 팥을 달달하게 끓여낸 단팥죽은 일본의 팥죽문화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팥죽은 달지 않게 소금 간을 해 김치를 곁들어 식사대용으로 먹었다.

1920년대 기록들을 보면 빙수가게에 대한 풍습들이 나온다. 서울 평양, 개성, 부산 이런 지역에 여름이 되면 빙(冰)자를 붙여놓았다. 여름이 되면 평양의 거리에서 빙수가게가 열리는데 만국기가 쫙 걸렸다. 만국기는 일본이 전 세계에 식민지를 두고 있는 대제국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상징이다. 어린 시절 운동회 때 만국기 걸리는 것은 일제강점기때부터 시작한 문화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3000년경 중국에서 얼음에 꿀, 과일즙을 넣어 먹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원나라 시대 쓰여진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을 보면 원나라 때 북경에서도 귀족들 왕족들이 얼음을 보관했다가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에서부터 얼음을 보관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7호선 서빙고역은 조선시대 얼음을 채취, 보존, 출납을 맡아보던 관아인 서빙고(西氷庫)에서 유래된 동명의 동에 위치한 역이다. 조선시대 왕이 신하들에게 서빙고의 얼음을 지푸라기 같은 것에 싸서 하사했고 관원들이 그것을 가지고 화채 등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팥빙수를 먹을 때 먹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얼음을 파서 먹는 방법과 모두 섞어서 떠먹는 방법이 있다. 얼음을 파서 먹는 방법은 일본의 방식이다. 팥과 얼음을 섞지 않고 파서 먹는다. 그러나 한국 사람은 대부분 얼음과 팥을 모두 섞어서 먹는다. 나는 한국식인가? 일본식인가?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즈음에 우리나라로 들어온 여름의 대표간식 빙수는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재료로 변모하며 이제는 일본으로 역수출하게 되는 음식이 되었다. 설빙은 일본에서 대박이 났단다. 같은 한국사람으로서 기분 좋은 소식이다.

너무 무덥고 습해서 빙수가 먹고 싶은 때이다. 우리 교회에도 두 가정이 카페를 운영하는데 한곳은 전통적 방식의 팥빙수를, 한 곳은 팥빙수를 포함한 다양한 과일빙수를 판매한다. 두 군데 모두 맛이 있다. 조만간 한 번씩 방문해서 빙수를 즐기려고 한다. 무더위에 지칠 때 빙수 한 그릇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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