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복과 기만 2
창27:1~27:46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창27:13, 개역개정)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하였다. “아들아, 저주는 이 어미가 받으마.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가서, 두 마리를 끌고 오너라.”(창27:13, 새번역)
리브가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에만 온 신경이 가 있었고 에서가 돌아오기 전에 야곱이 이 중요한 일을 완수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일이 잘못되면 저주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야곱이 말했을 때, 리브가는 “저주는 내게 돌리고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녀는 자신이 하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일이 실패할 경우를 생각할 여유가 없기도 했겠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저주받는다는 것의 무게를 고려할 틈도 없었을 테니까요.
경솔했던 리브가의 말은 그대로 자기 자신에게 돌아왔습니다. 이 일 후 야곱은 쫓겨나듯 밧단아람으로 떠났고 싫든 좋든 장자의 역할은 에서에게 돌아가게 되었죠. 그리고는 리브가가 죽는 그 날까지 야곱은 그녀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야곱의 인생을 위해 장자의 축복을 주려고 했던 그녀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야곱을 지독한 불행으로 몰아넣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자기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다는 자책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리브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녀의 남은 인생은 후회와 번민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은 야곱을 장자로 세우셨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미 태중에 있을 때부터 야곱과 에서의 인생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계셨던 하나님이 그 계획을 이루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리기만 하면 되는데, 리브가는 자신의 의지로 결과를 만들어내려다가 결국 아무도 원치 않는 저주를 끌어안은 채 인생을 마감해야 했던 것이죠.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섭리를 이루시고야 말지만, 사람이 그것을 앞서가려 한다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리브가처럼 말이에요.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창27:22, 개역개정)
야곱이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아들을 만져 보고서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로구나.”(창27:22, 새번역)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살게 되면 작은 판단은 할 수 있지만 중요한 판단은 내릴 수 없습니다. 시각은 사람을 속이기도 하니까요. 이삭의 불행은 그가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을 넘어서는 판단을 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삭이 축복을 내리기 전에 눈앞에 있는 아들과 마음을 나누며 대화를 했다면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목소리와 털로 판단하기 전에 아들의 가슴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진심을 느꼈다면 그가 자신을 속이려 한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어쩌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실컷 먹고 장자의 축복을 해 주리라 마음먹었던 순간에 그의 판단력은 이미 사라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삭은 평소 자녀들과 속 깊은 대화를 제대로 나눠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음의 교감 없이 오로지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만으로 판단하려다 보니 실패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빗나간 이삭의 판단력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섭리를 이루시게 됩니다. 바로 에서와 야곱이 리브가의 배 속에 있을 때 주셨던 예언의 말씀 말이에요.

…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창27:27~28, 개역개정)
… “나의 아들에게서 나는 냄새는 주님께 복받은 밭의 냄새로구나. 하나님은 하늘에서 이슬을 내려 주시고, 땅을 기름지게 하시고, 곡식과 새 포도주가 너에게 넉넉하게 하실 것이다.(창27:“27~28, 새번역)
야곱에게 보낸 이삭의 축복에는 농사일에 매진하던 이삭의 상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유목생활을 하던 아브라함이었다면 축복의 내용이 매우 달랐겠죠. 흥미로운 것은 이삭은 야곱이 아닌 에서를 생각하며 축복을 준 것인데, 에서는 사냥을 하는 사람이었고 야곱은 훗날 목축을 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이삭은 두 아들의 상황과 성향과는 전혀 관련 없는 복을 내린 셈이었습니다. 물론 축복 기도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겠지만 이삭이 평소 아들과 전혀 소통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또 한 번 드네요. 어쨌든 이렇게 해서 야곱은 평화롭게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뒤늦게 에서가 도착하자 심각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창27:31, 개역개정)
에서도 역시 별미를 만들어서, 그것을 들고 자기 아버지 앞에 가서 말하였다. “아버지, 일어나셔서, 이 아들이 사냥하여 온 고기를 잡수시고, 저에게 마음껏 축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창27:31, 새번역)
에서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창세기가이 영상이 아닌 문자로만 쓰였기 때문에 이 장면에서는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에서는 자신감과 기쁨, 환희로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를 향해 세상에서 가장 정겨운 목소리로 외쳤을 겁니다. “아버지 얼른 일어나서 이것 좀 보세요! 정말 좋은 사냥감을 찾아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는 별미를 만들었어요! 이제 제게 마음껏 축복을 주세요!” 장자권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던 에서였지만 그것은 장자권이 자신의 소유일 때에만 그렇습니다. 야곱이 장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는 에서 또한 전혀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죠. 이제 아버지로부터 그간의 모든 불안감을 씻은 듯 날려버릴 수 있는 축복을 받는다는 생각에 그는 즐겁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죠.
목사님 고맙습니다
더운 여름이 시작되었네요
건강하세요
감사드려요 – 함께 활기찬 여름 맞이하고 생명가득하게 보내요^^